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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En la costa del sol

by FeelSeoGood 2023. 6. 9.

 

  아침에 눈을 뜨면, 조금 열린 창으로 들어온 미풍이 가볍게 늘어진 하얀 커튼을 흔들고, 그 나풀거림 사이로 눈 부신 햇살이 간간이 부서지는 방을 꿈꾸어 본다. 창 너머로 하얀 모래밭과 투명한 바다가 펼쳐져 있거나, 전나무나 낙엽송 사이 오솔길을 배경으로 산비둘기가 쌍쌍이 날아들지 않아도 좋다. 허나, 어디가 되었든 반드시 일말의 애잔함이 있어야 한다. 화려함을 뒤로 하고 시들어가는 봄꽃이나, 푸르름의 끝자락에서 곧 떨어져 내릴 낙엽이나, 박명(薄明)에도 아직 불을 밝힌 채 외로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가로등이나, 멀리 떼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무리나, 조금은 창백한 얼굴로 걸어가는 소녀 같은. 그러면 나는 부스스한 얼굴로, 아직 눈곱을 그대로 붙인 채로, 죽은 듯 잠든 동안 헝클어진 머리 그대로, 혼자서 나를 안아 주기라도 하듯 겨드랑이 깊이 팔짱을 끼고, 창틀에 몸을 기댄 채 창밖의 그 풍경을 묵묵히 응시하게 될 터이다.

  늘 그런 식으로 시작한다. 잠에서 깨는 데는 순서가 있다. 그 시간이면 언제나 아래층 아이들이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는 소리에 정신이 먼저 희붐하게 밝아오고, 곧이어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기 시작한다. 눈을 뜨는 것은 그러고도 한참 뒤의 일이다. 정신이 어느 정도 머리에서 자리를 잡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순차적으로 정리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나는 늘 하얀 시폰 커튼이 늘어진 밝고 커다란 창을 떠올린다. 천천히 그 환한 빛의 산란에 다가가 만족한 얼굴로 창문을 열어젖히는 내 모습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그건 오직 내가 꾸는 꿈일 뿐이다. 막상 눈을 떠 만나는 현실은 사방의 벽,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나를 가둔 채 단단히 버티고 선 하얀 벽뿐이다. 옆 건물까지의 거리가 채 일 미터도 안 되는 탓에 달랑 하나 있는 창문으로는 손바닥만 한 하늘도 볼 수가 없다. 승강기도 없는 오층 건물의 사층. 딱 한 사람 누워서 잠을 자면 더는 옴짝할 수도 없는 작은 방이다.

  옆 건물, 나와 맞은편 방에 사는 제롬(Gerome)은 케냐 출신이지만 광활한 초원과 사파리 같은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프리카 출신이면서도 살아있는 사자, 기린, 얼룩말 같은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제롬은 가난이 사람을 얼마나 추악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나이로비의 키베라(Kibera)에서 보았고, 역설적이게도 그곳에서, 더 이상 나쁠 수는 없다 할 만큼 처절한 생의 낭떠러지에 선 사람도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도 배웠다고 했다. 거기에 비하면 여기는 천국이라고, 실망스런 표정 짓지 말고 여기를, 아니 지금을 즐기라고 제롬은 말했다. 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 키베라는 그런 곳이야. 나는 언젠가 그곳으로 돌아가겠지. 내 아이들을 그곳에서 키우고 싶진 않지만 말이야, 하는 말로 그는 이야기를 끝내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내 안 어딘가에는 그의 입에 늘 물려 있는 럭키 스트라이크(Lucky Strike) 오리지널 레드의 진한 연기처럼 독하고 아련한 느낌이 피어올랐다.

  제롬의 첫인상은 강렬한 웃음이었다. 잊을 수 없는 웃음. 사람의 얼굴에도 사진처럼 초점이 있는 거라면, 그의 웃는 얼굴에서는 반짝이는 검은 피부에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하얀 이가 그것이지 않았을까? 열어 놓은 내 방 창틀에 아무 양해도 없이, 주렁주렁 빨래를 꿴 나무 막대를 쑥 디밀어 능숙하게 걸치고 난 바로 다음이었다. 다행히도 이 비좁은 천국에는 건물들 사이를 쉼 없이 스치고 지나는 지중해의 시원한 바람이 늘 있어서, 꿈속의 시폰 커튼을 대신할 색색의 빨래를 아쉬움 없이 잘 말려 주는데, 여기 이 천국에서도 끄트머리 계급에나 턱걸이한 우리의 빛바랜 원색 티셔츠와 낡은 청바지는 반나절만 널어놓아도 부서질 듯 바삭거린다. 바람이 실어 온 냄새를 듬뿍 머금은 천국의 유니폼을 걷으며, 바닥에 있긴 해도 정말 천국이기만 하다면 그게 어디냐고, 나는 위로하곤 한다.

 

 

  아침의 게으름을 겨우 밀어내고 거실과 통으로 이어진 공동 부엌으로 나가니, 이제 막 집으로 돌아온 이네즈(Ines)가 곱슬이라 더 풍성해 보이는 검은 머리를 손수건으로 질끈 묶고는 비센테(Vicente)에게 아침을 먹이고 있다. 딱 열 살 만큼 개구지고, 또 그만큼만 철이 든 비센테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으깬 토마토와 올리브유를 얹은 토스트를 먹고 있는데, 그 옆에 앉은 이네즈는 거의 졸면서도 아들에게 때맞춰 잔소리를 던진다. 비센테는 엄마의 날 선 목소리가 꽂힐 때마다 한 번씩 어깨를 움츠리면서도, 눈짓으로 내게, 욕실이 비었으니 빨리 가라는 사인을 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언제나처럼, 내가 이네즈에게 건넨 아침 인사는 별 관심을 끌지 못한다. 나를 무능하고 한심한 이방인 정도로 생각하는 그녀가 일부러 그런다는 걸 알고 있지만, 나는 굳이 그녀와 소득도 없는 신경전을 펼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대단하다 싶은 것은 그녀의 검고 긴 곱슬머리인데, 마흔 중반을 넘기고도 비센테와 이렇게나마 지낼 수 있는 벌이가 가능한 건 반 이상이 그 탐스러운 머리카락 덕분이다. 그녀를 나이보다 훨씬 더 젊고 육감적으로 보이게 하는 그 곱슬머리가 없었다면 오늘도 아침까지 있다 온 살롱의 야릇한 일은 진작 그만두어야 했을 것이다. 아무리 예전보다 아이들을 덜 낳는다 해도, 그런 곳에서 일할 젊은 여자애들은 이 천국 안에서도 모자라지 않을 테니까.

  오른손을 파자마 안으로 넣어 엉덩이를 긁적거리면서 막 욕실 문을 열려는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앙헬라(Angela)가 잽싸게 나를 앞질러 들어가며 쾅, 하고 문을 닫아 버린다. 미에르다(mierda)! 제기랄! 나도 참지 않고 닫힌 문을 향해 소리친다. 대학을 다닌다는 그녀는, 거기서 무슨 공부를 하는지는 모르지만 매일 아침 이 시간이면 누구보다 호들갑을 떨며 바쁘게 뛰쳐나간다. 하지만 그녀가 차를 타고 이 동네를 벗어나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밤 근무를 끝내고 돌아오던 어느 아침 헐레벌떡 삐쏘(piso)를 나서는 그녀와 마주친 적도 있는데, 그때 그녀는 학생 대부분이 이용하는 버스 정류장을 지나쳐 건너편 골목 사이로 총총히 사라졌다. 이름처럼, 숨겨 놓았던 천사의 날개를 펼쳐서 날아간 건지도 모른다. 정말로 학생이 맞는지, 학생은 아니고 어디 다른 데에 일을 나가는 건지, 아니면 아예 이도 저도 아닌지 어떤지는 내가 직접 확인한 바 없으니 알 수 없다 하겠는데, 이 동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할 때는 절반이 거짓말이고,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할 때는 사 분의 삼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면 되기 때문이다. 아, 나 역시 여기 사람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나는 그나마 이 삐쏘에 사는 사람 중 이 동네 거주기간이 가장 짧다. 그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내가 알기로 이 집의 꼼빠녜로(compañero) 중에 그녀가 정말 쎌렉띠비다드(selectividad)를 통과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니, 쎌렉띠비다드의 응시 자격이 되기는 했었는지조차 의심스럽다고 해야 맞다.

  앙헬라 때문에 멈춰선 잠깐 동안 나는 욕실 앞 벽에 기대어 식탁과 창문, 또 그 너머 집들 사이로 멀리 떠 있는 바다를 바라본다, 멍하니. 멀어질수록 짙어지다 나중에는 검푸르게 바뀌어 마침내 하늘과 합쳐지는, 하지만 한순간도 쉬지 않고 언제나 흔들리고 일렁이는, 건널 이유가 없을 때는 마음속 동경의 대상이다가 그 너머 어딘가로 가야 할 때는 무엇보다 완벽히 나를 가로막으며 버티고 눕는, 그 바다 말이다.

  정말, 나는 바다를 넘어 떠날 꿈을 꾼 적이 있었다. 일단은 항구로 나가서 배를 얻어 타고 라스 팔마스(Las Palmas)에 가는 거다. 거기서 조그만 배를 하나 사서 참치든 갑오징어든 그물에 걸리는 건 다 잡아 올리리라. 물론 그물코는 너무 촘촘하지 않아야 한다. 다른 어부들보다 두 배쯤은 코가 넓은 것으로. 너무 늙기 전에 돈을 모을 수 있다면 다시 바다를 건너 카보 베르데(Cabo Verde)에 가서 가수가 되면 어떨까?

  존죠! 멋지네! 뽀르끼노? 못할 게 뭐야? 딱 한 번 내가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제롬은 씽긋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가수가 되어 노래만 부르면서 사는 것도 멋지겠지, 빅또르(Victor). 그런데 왜 아프리카야? 너는 동양인이잖아? 피부가 검지 않으면, 아프리카 노래를 할 수 없어. 땅이 너무 크니까 아프리카 전부가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적어도 아프리카 사람이니까 알아. 아프리카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무언가가 있거든. 턱을 치켜들고 눈을 지그시 내리깔면서 원래도 굵은 목소리를 더 낮추어 말을 하던 제롬은 나와 아프리카 모두를 염려하는 표정이었다.

  못할 것도 없다고! 나는 원래부터 여기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야. 그런데, 봐! 지금 난 완전히 여기 토박이 같잖아? 바다라고는 볼 수 없는 산 너머 올리브 농장에서 지내던 때에도 내 마음은 언제나 여기 코스타 델 솔(Costa del Sol)을 향해 있었어. 사실은 여기에서 아주 오랫동안 살아온 것과 마찬가지야. 그래서 지금 나는 여기 이렇게, 딱 여기 사람으로 있는 거라고! 아프리카도, 많이 생각하고 느끼기만 하면 돼. 왜 안 되겠어? 그렇게만 하면 나는 또 아프리카 사람이 되는 거야. 여기를 떠날 수 있겠느냐고? 이봐, 제롬. 길어야 몇 달, 그저 잠깐 태양을 만끽하는 휴가를 보내려 여기 온 사람들은 아쉬워서 못 떠나겠지. 나는 달라. 나는 여기가 무척이나 좋지만, 또 그만큼 미련 같은 건 없다고. 다른 데 가면 또 완전히 그곳 사람이 되는 거야, 나는.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 그래도 어쩌면 너는 이해할 수 있을 거니까, 잘 들어봐! 너무 좋은 건 가지는 것도 버리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거야. 그저 그 무언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어. 여기도, 카보 베르데도, 노래도!

  정말 바다와 제대로 엮여 있는 사람은 내가 사는 이 삐쏘의 주인인 마누엘(Manuel)이다. 이제 곧 칠십이 되는 그는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꼴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그물을 걷고 다시 친다. 부자랄 순 없어도 여기 사람들이 내는 집세만으로 충분히 먹고살 만할 텐데도 물일을 그만둘 생각이 없어 보인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바다를 떠나 살아본 적 없었던 사람. 더 이상 숨 쉬지 못하는 날이 되어야 바다에 나가기를 그칠까. 그가 정말 바다를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다도 마누엘도 서로를 벗어날 수가 없다는 건 확실하다. 세월의 흔적을 피할 수는 없어서 이마에는 주름이 깊고 두 볼도 움푹 파이긴 했지만, 누가 봐도 전체적으로 꽉 차고 단단한 인상이다.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 정확히 세월이었는지 바다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해도 그를 조금만 지켜보면 누구나 그가 온몸으로 부딪고 지나온 그 두 가지를 쉽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랑하는 마드리드의 약사 아들만 빼고 말이다. 일 년에 한 번도 보기 힘들다는 그 아들은 마누엘이 자신을 자랑스러워한다는 걸 알기는 할까? 혼자서 고깃배를 타고 드나드는 그를 보면 오래전부터도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그는 그저 혼자일 것만 같다. 외롭거나 쓸쓸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혼자인 모습이 가장 평온해 보일 뿐이다.

  그런 마누엘의 풍경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은 이 삐쏘의 꼼빠녜로(compañero)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훌리오(Julio)다. 항구와 부두를 오가며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해내는 그는 가끔 마누엘을 대신해 바다로 나가기도 한다. 오직 마누엘이 아파서 꼼짝할 수 없을 때, 그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다. 마누엘은 그만큼 성실한 어부니까. 그런 인연으로 마누엘이 훌리오의 집세를 받지 않는 건지, 집세 없이 그냥 살게 해 주는 고마움을 훌리오가 그런 식으로 갚는 건지는 몰라도, 덕분에 우리보다 여유가 있는 훌리오는 가끔 모두를 위한 삐에스타(fiesta)를 열어주곤 한다. 싸구려 하몬(jamon) 몇 조각과 빅또리아(Victoria) 맥주 12병이면 충분한 우리의 파티에 꼼빠녜로 전부가 모여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어쨌든 그런 기회가 생길 때마다 우리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조곤조곤 떠들고 웃는다. 우리의 삐에스타는 늘 저녁 아니면 밤이어서, 한창 일할 시간인 이네즈는 정말 가끔 함께 할 수 있고, 미스터리 여인 앙헬라는 방에 있으면서도 내다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내가 불러 제롬이 함께하기도 하고, 훌리오나 이네즈의 친구가 오기도 한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삶의 한 모퉁이를 서로 보여주고 엿본다. 딱히 자랑할 만한 것들은 아니지만 부끄러운 것도 없다. 오히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조금씩 더 기댈만한 사람이 된다. 누구도 능가할 수 없는 훌리오의 모험담들과 세상 모든 것들에 불만인 이네즈의 삐쭉거림을 통해서. 실제로는 서너 살 차이밖에 안 나는 이네즈보다 열 살은 더 들어 보이는 훌리오지만 그럴 때는 정말 이네즈보다 열 배는 더 인생을 잘 아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평생 두 명의 여자를 사랑했지. 결혼은 한 번뿐이었지만, 어쨌든 그 두 명을 다 사랑한 건 사실이야. 내 아내였던 루씨아(Lucia)는 그다지 예쁘지는 않다고들 했어. 물론 그건, 나 아닌 다른 사람들 얘기일 뿐이지. 내게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람이었어. 사진? 그런 거 없어. 갖고 있던 사진은 모두 싼 미겔(San Miguel) 묘지에 누운 그녀 곁에 묻어 버렸어. 나는 사진 따위 없어도 그녀를 언제라도 생생히 기억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은 그녀 사진을 봐도 예쁜 줄을 모르는데 뭘. 빅또르, 너도 똑같이 생각했을 걸? 사실, 그녀는 입이 조금 왼쪽으로 치우친, 그러니까 좀 돌아갔어. 앞니도 좀 튀어나왔고. 굳이 말하자면 안면 장애가 있는 건데, 그리 심했던 건 아니야. 그냥 내가 항상 그녀의 왼쪽으로 키스를 하면 되는 거지. 하나도 이상할 것 없었어. 그녀와의 키스가 얼마나 황홀했는지, 그걸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지. 그래도 웃을 때는 다들 예쁘다고 했어. 안 웃을 때도 사랑스러웠지만, 웃을 때는 정말 다들 그랬어. 물론 나하고 있을 때는 늘 웃었지. 가끔 화를 내거나 야단칠 때를 빼곤 말이야. 그녀는 카탈루냐(Cataluña) 사람이라 뭐라도 내가 함부로 쓰거나 낭비하는 꼴을 못 봤어. 그게 돈이든, 마음이든. 루씨아와 계속 살 수 있었다면 나는 지금 부자가 돼 있을 거야. 정원이 딸린 바닷가 집에서 그녀를 꼭 끌어안고 잠들었다 그녀와 함께 깨겠지.

  여기의 누구나 너나 할 것 없이 여러 곳을 떠돌았지만, 누구도 훌리오만큼은 아니다. 아무리 먼 데를 전전했다 해도 기껏해야 바스크(Vasco)나 갈리시아(Galicia) 정도인데, 훌리오가 머물렀다고 읊어대는 곳 중에는 아프리카, 남미뿐 아니라 아시아도 있었다. 루씨아가 죽고서 그는 먼바다를 오가는 배를 타고 떠다녔기 때문이다.

잊기 위해서? 뭐 그런 건 아니었어. 사랑은 그럴 수 없지. 지금도 이렇게 생생한데 어떻게 잊어?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그건 안 돼. 조금 낯선 데에서 지내려 했던 것뿐이야. 루씨아와 늘 함께였던 곳을 벗어나 있으려던 거. 결국, 혼자인 것에 익숙해질 수는 있었지. 그래서 돌아왔어. 하지만 그저 그뿐이야. 정말, 그냥, 혼자가 된 거. 그걸 인정할 수 있게 된 거…. 또 한 명은 누구냐고? 그건, 꼬모 하 데 세르, 아주 오래전 이야기인데, 이제는 이름도 기억이 안 나. 그렇다고 사랑했던 사실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 사랑은 변하지만, 변한다 해도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 그래, 그래. 이상하지? 사랑은 그런 거야.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고, 간직하려 해도 잊어버리게 되는 거!

  혼자에 익숙해지는 것. 그렇게 되어가는 것. 그건, 나도 뭔지 안다. 하지만 그게 뭐? 나는 지금 앙헬라가 빨리 나와 주기를 바랄 뿐이다. 대충 잠의 흔적을 지우고, 천국의 유니폼을 다시 껴입고서 아타라나사스(Ataranazas) 메르까도(mercado)로 가야 한다. 그날그날 팔려나갈 물건이 담긴 상자를 점포마다 옮겨 놓는 게 내 일이다. 가게 이름과 위치를 외고, 주인들이 짐을 어떻게 부리기를 원하는지 익히고, 손수레 균형 잘 잡고, 부지런하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을 해서 나는 매일의 숙식을 얻고 오래도록 나를 싣고 달려온 낡은 바이크에 기름을 넣는다. 당근, 양파, 파프리카 같은 건 무난하고, 오렌지, 바나나, 파인애플, 체리 같은 과일이야 향기가 좋고, 꽁꽁 언 메를루사(merluza)나 루비나(lubina) 같은 생선들, 베르베레쵸(berberecho) 같은 조개들은 냄새도 비리고 지저분해서 아무래도 좀 고달프다. 굳이 말을 하자니 그런 거지 사실 내게는 별 차이가 없는 짐짝일 뿐이다. 내 일상의 절반을 책임지는 고마운 짐짝들. 나머지 반? 그건 바람이지. 밤낮 구별 없이 쉬지 않고 불어오는 이곳의 바람. 나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조그만 배처럼 살고 있으니까 바람이 나의 돛을 팽팽하게 부풀리지 않으면 어디로든 갈 수 없는 거다. 숨쉬기 위해 늘 움직여야 하는 상어처럼 나는, 오래 멈춰 있을 수는 없다. 잠시라면 몰라도.

  그릇을 비우자마자 포크를 던지고 밖으로 뛰어나가는 비센테의 등에 대고 이네즈가 소리친다. 너무 늦지 마! 위험한 장난 하면 안 돼! 비센테의 발걸음이 멀어질수록 이네즈의 목소리는 높아진다. 채 닫히지 않은 현관 문틈으로 아래층에서 대답하는 비센테의 목소리가 계단 복도를 타고 넘어온다. 씨, 씨! 응, 알았어! 데 아꾸에르도! 알겠다고! 이네즈는 접시를 치우다 말고 비센테가 남긴 빵 바구니를 내게 들어 보인다. 먹는 거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는 데다 그녀가 보여주는 모처럼의 호의가 반가웠지만, 지금은 내키지 않는다. 에스따 비엔. 고맙지만 괜찮아. 욕실 너머에서 들리던 물소리가 그쳤으니 샤워를 마친 앙헬라가 이제 곧 나올 거니까. 나는 표정에 과장된 고마움을 담는다.

 

 

  이스크라(и́скра)! 이름이 그렇다고 무어라도 압도할 속도나 힘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 굉음 같은 걸 내는 건 더 우스운 일이다. 그건 실상 그것 말고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다는 증거일 뿐이다. 이제는 낡아버린 내 바이크도 처음에는 그 이름만큼이나 자신감이 넘쳤다. 지금은 노회한 현자처럼 그저 세상을 관조하듯 멈춰 있는 게 더 어울려 보이지만, 죽은 빅또르가 그 이름을 처음으로 불러 주었을 때는 당장 세상 끝까지라도 내달릴 것처럼 용트림했을 것이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여기까지 나와 함께 왔으니 얼추 그 넘치던 열정은 다 불태웠다고 봐도 좋다.

  우리 두 빅또르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뒷골목 술집에서 처음 만났다. 우연히도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우리는, 몇 마디 나누어 보는 것만으로 거울 속 자신을 보듯 서로의 상처를 알아봤다. 빅또르의 어머니는 아들에게서 나에 관한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거다. 내가 아는 그는 그런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어머니와 주고받는 아들이 아니었다. 아니면, 모르지. 일 년을 넘게 만나고도 우리는 그런 것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만 친했던 것인지도.

  상트 페테르부르크 외곽의 공동묘지, 아들의 장례식에서 나를 처음 봤을 빅또르의 어머니는 내게 아들이 남긴 물건을 가져가라고 했다. 빅또르의 뜻이라고, 아들이 아닌, 살아남은 빅또르에게 말했다. 며칠 뒤 집으로 찾아간 나를 그녀는 뒷마당으로 데리고 갔다. 그녀가 가리킨 한쪽 구석, 덮여 있던 방수포를 걷어보니 불꽃 문양이 선명한 바이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스크라, 라고 했다. 왜소하고 연약했던 생전의 빅또르를 생각하면 전혀 어울리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간절하게 들리는 이름. 이제는 땅에 묻은 세상 하나뿐인 아들이 온 도시를 뒤져 부품을 구해 조립하고 색을 입힌 세상 유일의 바이크를 가져갈 사람을, 그녀는 잠시이긴 했지만 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어쨌든 떠나온 곳으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내 처지를 알고 있던 빅또르가, 자신의 절망을 내게 고스란히 내보였던 것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를 두고 있었던 것이라고, 나중에야 나는 짐작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숨어들기 전, 나는 내 진짜 이름을 버리고 흔한 러시아 남자의 이름을 얻었다. 살기 위해, 나와 연결된 많은 사람들, 내가 기억하는 많은 것들로부터 나는 도망쳐야만 했다.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시는 더 부모님이 준 이름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고향이 그리웠고, 나를 나이게 하던 모든 것을 완전히 부정할 자신이 없었다. 어느 쪽도, 나는 두려웠다.

  우리가 공유한 시간은 각자가 짊어진 혼돈과 그 파편들이었다. 결코 깊은 관계였다고는 할 수 없다. 서로에게 온전히 기대거나 상대를 지켜내겠다는 일종의 책임감 같은 건 없었으니까. 빅또르는 오래 앓아온 골수암이 말기에 다다라 있었다. 젊어서 체르노빌 사고 수습에 동원되었던 아버지도 같은 병으로 죽었다고 했지만, 당시의 러시아가 그랬듯,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차피 치료 불능의 상황에 이른 그에게 병의 이유가 무엇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내 절망은 그의 것과 비교할 만한 것이 아니었으나, 어쨌든 그때 우리 둘은 모두 벼랑 끝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나는 살아 있어서 고통이었고 그는 살 수 없어서 고통이었다는 것과, 똑같은 벼랑 끝에서도, 죽은 빅또르는 내게 자신의 여권과 이스크라를 남겨 새로운 삶으로 넘어갈 기회를 주었지만, 나는 그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나를 만나고 헤어진 저녁에서 새벽 사이에 음독했다. 이미 마음이 정해져 있었던 것인지, 그 밤의 어떤 일이 방아쇠 역할을 했는지, 나는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것을 빚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도 갚을 수 없는 빚은 빚이 아니다. 그도 그렇게 여길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날 헤어지면서 빅또르는, 이미 러시아어에 익숙한 내게 일부러 또박또박 인사를 했다. 쓰바씨바! 고마워! 드 쓰비다니야! 잘 있어! 귀먹은 이에게 입술이라도 읽히기를 바라듯 경직된 발음을 만들어 내느라, 발음보다 더 딱딱해진 그의 얼굴이 저녁 어스름을 배경으로 멀어졌다.

  부에노스 디아스, 앙헬라! 젖은 머리로 욕실을 나오는 앙헬라에게 건네는 나의 인사에는 못마땅함이 잔뜩 묻어있다.

  올라! 역시 빠르고 냉랭한 앙헬라의 대답. 공격적이진 않지만 움츠림 같은 것도 전혀 없는 목소리.

천사가 거쳐 간 천국의 욕실은 지저분하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갈한 곳이 천국일 리 없다. 천사도 천국도, 그저 조화로울 뿐이지 않을까? 빛과 어둠, 선과 악, 깨끗함과 더러움까지도 서로 적당히 버무려져 질서인 듯 아닌 듯 돌아가는 곳. 천국도 그저 그런 곳일 뿐이리라.

  떨어지는 물줄기를 맞으면서, 사람이 삶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샤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순간순간 몰려오는 통증이 아무리 절망적이었을지라도, 이제는 어디서도 샤워 같은 걸 할 수 없게 된 빅또르의 선택은 잘못이라 할 밖에. 어디에서라도, 이렇게 쏟아지는 물줄기에 온몸을 내맡기고 있으면 어떤 안심 같은 걸 느끼게 되고, 그런 안정감 속에서 새로운 생각이나 대책 같은 것이 불쑥 떠오르기도 한다. 이미 무언가를 치열하게 쫓는 삶과는 멀어졌어도, 낮잠을 자는 동안 뜻밖의 꿈을 꾸듯, 의도한 게 아닌데도 의미 있는 어떤 것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되거나 적어도 일말의 기분 좋은 감정이 차오르게 된다. 짜릿하거나 강렬한 종류는 아니다. 그저 은근한 편안함이다. 하지만 오래 만끽하고 있을 수는 없다. 당장 누가 재촉하지 않더라도 나 말고도 이 안식처를 기다리는 이가 또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들이 모두 나와 같은 안락을 꿈꾸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천국에서 오래 머물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소한 것들에 만족하고 감탄할 줄 알아야 하며, 다른 이에게 허락된 그 만족과 감탄의 기회 역시 존중해야 한다는 것. 천국은 결국, 좀 까다로운 곳이다.

  거울 위 뽀얀 습기를 손으로 대충 닦아낸 자리에 어색한 금발의 남자가 비친다. 머리카락 뿌리와 눈썹은 벌써 검다. 염색은 이제 더 하지 않기로 한다. 훌리오도 제롬도, 모두 같은 말이었다. 너는 어쩔 수 없어. 네가 아무리 러시아 사람이라고 우겨도 넌 그냥 ‘치노(chino)’일 뿐이야. 머리 색깔 바꾼다고 너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는 거야! 어쨌든 난 이제 더 이상 러시아 사람이 아닌 에스빠뇰이다. 러시아도, 그 이전에 내가 떠나온 어떤 곳도, 기억은 하지만 추억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머무는 곳의 모습 그대로를 살아야 어디에서든 머물 수 있고 홀가분히 떠날 수도 있다. 그래야 어디든 쉽게 옮기고 또 쉽게 뿌리를 내린다. 굵고 튼튼하지 않아도 충분히 단단하기만 하면 된다. 여간한 흔들림에는 어지럽지도 않고, 메마르고 거친 땅에서도 고사하지 않고 견뎌낼 수 있게, 나는 진화되었으니까.

  머리를 대충 털어 말리고, 널어놓은 천국의 유니폼 중 하나를 걷어 입는다. 빠른 걸음으로 날듯이 계단을 내려간다. 아침은 일부러라도 경쾌하게 시작하는 게 좋다. 어차피 천국의 바람과 천국의 집, 천국의 햇살과 천국의 커튼이 없는 바에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것뿐이다. 3층을 지날 때 재빨리 몸을 틀어 커다란 상자를 들고 올라오는 훌리오를 아슬아슬하게 피한다. 부딪혔더라면 상자에 가득 든, 뭔지 모를 것들로 계단은 난장판이 되었으리라. 상자에 시야가 반쯤 가린 훌리오는 내가 뛰어 내려오는 소리를 듣고서 저 아래에서부터 외쳤다. 꾸이다도! 조심해! 꾸이다도!

  훌리오는 도시 전체가 들뜬 페리아(feria) 동안 특별한 부업으로 바쁘다. 그러니 그 상자 안에는 뭐라도 들어 있을 수 있다. 풍선이나 휴대용 소형 선풍기, 색색의 형광 막대 들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되었든 천국의 축제를 즐기러 몰려든 관광객들이 고민 없이 샀다가 버리고 갈 싸구려들. 그들은 언제나 웃는 얼굴이다. 관광객들은 저마다의 손에 술잔을 들고서 거리 곳곳에서 춤추고 떠들고 웃는다. 그럴수록 여기의 주민들은 더 스스로를 다독여야 한다. 이 천국은 그들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니까. 천국이라고 모두가 그러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모두의 천국은 누구의 천국도 아닐 테니까.

  벌써 햇살이 뜨겁다. 이스크라에 앉아 선글라스를 꺼내 쓴다. 몇 번의 쿨럭임 뒤에 엔진음이 일정하게 가라앉고 천천히 움직임을 시작한다. 잠보, 빅또르! 골목 끝에서 짙은 연기를 내뱉고 있던 제롬이 예의 낮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올라, 아미고! 그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작열하는 태양 속으로 나와 이스크라는 미끄러져 들어간다.

  골목을 몇 번 꺾어 나오니 해안도로다. 해변에는 벌써 사람들이 띄엄띄엄 보인다. 수평선 너머 어딘가를 바라보며 서 있는 사람, 서로 손을 잡고서 밀려오던 파도가 끝내 물거품이 되며 적셔놓은 모래 위를 천천히 걷는 사람, 해맑게 웃으며 뛰어다니는 아이들, 그 아이들을 사진에 담는 어른들. 나는 속도를 줄여 그들을 바라본다. 더 빠른 길을 두고서 아침마다 이쪽으로 돌아가는 이유다. 먼 곳은 아련하고, 가까이는 시끌벅적한 이 풍경을 구경하는 것. 살아있으되 지나치게 활기찬 것도 아니고, 차분하되 어딘가에는 꼭 사소한 이벤트가 숨어 있는, 화려하지도 쓸쓸하지도 않은 이 시간의 해변. 신이 시기하여 심판할 거리도 없고, 특별히 은총을 내려 돌봐야 할 만큼 안타까운 것도 없는 곳. 내가 지나온 스물아홉 해를 깨끗이 묻어 버리고, 얼마가 될지 모를 앞으로의 시간을 생각할 수 있게 해 주는 곳. 나를 새로운 세계로 밀어낸 빅또르도 멀리 두고 온 가족들도, 나는 이곳에 와서야 무덤덤히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돌이킬 수 없어 괴로운 일은 애써 외면하지 말고 그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만 삶을 한 발짝 앞으로 내디딜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쉼 없는 바다로부터 쉼 없는 바람이 불어와 차와 사람 들 사이를 스쳐 지난다. 나 역시 그렇게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하리라. 여기로 흘러왔듯, 한동안 머물다 또 어딘가로 흘러가야 하리라.

 

 

  메르까도는 아침부터 분주하다. 아직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은 많지 않지만, 점포마다 물건을 들이고 정리하느라 바쁘다. 서둘러 일을 시작할 채비를 한다. 오늘 첫 물건은 생선이다. 방수 앞치마를 두르고 장갑을 낀다. 페리아 기간에는 시장 구경하는 사람도 늘어서 평소보다 상자 수가 많다. 사람들을 피해 가며 적어도 대여섯 번은 옮겨야 할 것 같다.

  빅또르, 로꼬, 이봐, 빅또르! 한 짐 부려놓고 빈 수레를 끌고 오는데, 과일 가게의 에스메랄다 아줌마가 손짓해 나를 부른다. 배낭을 멘 젊은 동양 여자 둘이 그녀 앞에서 곤란한 표정을 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외국인 손님들을 상대하지만, 간단한 영어밖에 할 줄 모르는 에스메랄다는 낯선 손님들에게 커다란 몸짓을 섞어가며 쉴 새 없이 스페인어로 떠들고 있다. 무언가 간단치 않은 걸 물어본 모양이다. 열정적인 스페인어를 알아듣지 못한 두 사람이 서로 상의를 하는데 한국말이다. 아, 그래서 나를 불렀군.

  내가 다가가자 에스메랄다는 나를 가리키며 한국 관광객들에게 말한다.

  “이 사람이 한국말로 얘기해 줄 거야. 그러니까, 이 사람은 한국에서 왔거든.”

  에스메랄다의 빠른 스페인어에서 ‘꼬레아’를 알아들은 두 사람이 밝아진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함께 나를 보는 에스메랄다도 안심한 표정이다.

  “그런데 빅또르, 너 한국에서 온 거 맞지?”

  씨. 네. 나는 잠시 에스메랄다를 바라보다가, 재빨리 대답을 고친다. 노, 노. 쏘이 데 꼬레아 델(soy de Corea del)……, 노르테(norte).

  “쏘이 데 꼬레아 델, 노르테!

  , 아니에요. , 북한에서 왔어요.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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