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3 여섯 잔의 커피도 아닌데 “여보, 나 지금 지원이 학원 때문에 같은 반 애들 엄마들이랑 밖인데, 자기 아직 집에 안 왔지? 혹시 나 집에 없다고 전화할까 봐. 내가 핸드폰을 집에 두고 왔거든…….” 낯선 번호의 전화 너머에서 들리는 아내의 목소리에 대해 가졌던 의문이 풀린다. 아내의 목소리가 그리 밝지 않다. 무언가 피곤한 일인 게 분명하다. 저녁도 다 지난 시간에 애들 둘을 데리고 다른 엄마들과 만나야 하는 일이라면 좋은 일일 건 없는 것이다. 세상사 그렇듯, 갑자기 일어나는 일과 예상 못한 일들의 구십 퍼센트는 나쁜 일이다. 사람들도 그걸 알기에, 철이 들어갈수록 새롭게 만나는 사람을 우선 경계부터 하고 보는 것 아닌가? 결국 진정한 열린 마음의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집에 와보니 아홉 시가 넘었는데도 불이 .. 2023. 7. 4. Sink Condition 두 손으로 얼굴에 거푸 찬물을 끼얹으며, 그는 전날의 탐탁지 않았던 술자리와 한 해 한 해 다른 숙취의 무게감을 생각했다. 회사일도 차질을 빚겠지만 그보다 더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자신을 향해 날아들 아내의 날카로운 말들과 차가운 시선이었다. 실망이나 염려와는 거리가 먼, 낮고 건조해서 더 마음을 헤집는 목소리. 이미 출근했을 터이니 당장은 아니겠지만, 언젠가는 맞닥뜨려야 할 것이었다. 바로 오늘 저녁이든 내일, 아니면 조금 더 묵혀둔 며칠 뒤가 되었든, 아내가 이런 꼬투리를 지나칠 리 없었다. 아내의 질책이 실망의 표현이라면 아직도 자신을 향한 기대가 남아 있다는 것에, 염려해 주는 것이라면 아내의 어디 한 조각 정도는 여전히 그가 사랑했던 바로 그 사람이라는 사실에 일말의 위안을 삼을 수 있겠다 .. 2023. 6. 12. 배꼽 이건 그저 우리 집, 뭐 하나 특별한 것 없는 세 식구에 관한 소박한 이야기다. 굳이 얘기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세상에 있는지조차 모르고 궁금해하지도 않을 가족. 별의별 자질구레한 사연이 다 나오는 한낮의 라디오 같은 데서도 좀처럼 들을 수 없을 이야기. 그래서 나는 쓴다, 내 말을 믿을 이가 몇이나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사실, 나 역시 바로 어제의 일들조차 아주 오래된 기억처럼 아련하기도 하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대도 아쉬울 건 없다. 적어도 이 이야기를 읽는 동안 가져 줄 관심,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낙원 인공위성 궤도처럼 똑같은 코스를 순환하는 마을버스의 출발점은 어디일까? 어디라도 시작이고 어디라도 끝이 되는, 그래서 참 안정적이지만 그만큼 밋밋하고 갑갑한. 어쨌거나 사람들이 가장 많이 타고.. 2023. 2. 15.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