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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2

베이더와 나의 눈길 지금도 눈이 내린다. 벌써 삼 일째다. 오려면 에서처럼 엄청 와서 쌓이면 좋겠는데, 고작 이렇게 내려서는 눈 장난 같은 건 못한다. 길이 질척해져서 걷기만 더 힘들다. 걸으면서 나는 자꾸만 고개를 숙인다. 눈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나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빠를 따라가겠다고 한 건 나 혼자다. 이모와 할머니가 같이 살자고 했을 때, 처음에는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아빠까지 그러는 게 좋겠다고 하니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바로, 아빠 다리를 꼭 붙들어 안고 펑펑 울어버렸다. 내가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른다. 분명한 건 아빠가 좀 미웠다는 거다. 아빠는, 같이 살자고, 적어도 한 번은 내게 말해줘야 하는 거였다. 아빠라면. 아빠니까! 겨우 처음 만난 아빠를 영영 다시 볼.. 2023. 6. 30.
거울 봄볕이 눈부신 오후였다. 아버지는 일부러 그렇게 아늑한 날을 골랐을 것이다.  내가 대문을 들어서는 기척에도 아버지는 한동안 정성 들여 거울만 닦으셨다. ‘다녀왔습니다’ 하고도 들어가지 못하고 당신을 지켜보던 내게 잠시 눈길을 주셨지만 이내 손에 쥔 걸레를 깨끗이 빨아 한 번 더 꼼꼼히 닦고서야 마무리하셨다. 아버지가 거울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신 뒤, 텅 빈 마당은 어느 한옥의 고즈넉한 오후 풍경처럼 조금 쓸쓸해졌다. 나는 왠지 그 일련의 과정에서 아버지의 온 생애를 본 것만 같았다. 짧고도 긴 시간이었다. 천성이 조심스러운 아내는 내가 보지 못한 그 오후의 일을 전해주며 염려와 곤혹이 섞인 표정으로 치매라는 말을 꺼냈다. 작정하고 닦는다면 십 분이면 충분할 일을 한 시간이 넘도록 붙잡고 계셨으니 아내가.. 2023. 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