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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2

안경을 닦다 딩동!  두 시가 다 되어 가는 새벽, 매일 같이 듣는 엘리베이터 소리가 유난히 신경 쓰인다. 정적을 깨는, 가볍지만 삭막한 소리. 보통은, 가벼우면 경쾌하기 마련인데 외려 건조하고 어둡다. 기분 탓이겠지. 누구에게나 똑같은 소리일 터인데, 아이들 귀에도 이리 들리면 어쩌나 싶다. 정말 그렇다면, 이사라도 가야 하는 게 아닐까? 아이들에게는 달리 들릴 수도 있겠지. 출발선의 육상선수처럼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나가는 아이들을 보면, 녀석들에게는 이 소리가 출발신호처럼 설레고 긴장되는 느낌인지도 모른다. 나의 달리기는 이미 익숙한 만큼 지겹기도 한 반환점 근처, 이제 막 출발선상에 있는 아이들과 나를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쩌면 아이들은, 그런 소리 따위 있는지 없는지 아예 관심 밖일지도 모르.. 2024. 10. 29.
안개 아무래도 비가 올 것 같았다. 역 광장에 뜬 그믐달 위로 지나는 구름 빛이 짙었다.  마지막 승객이 빠져나가자 역무원은 서둘러 쇠문을 닫아걸었다. 사람들은 채 깨지 못한 밤 기차의 피곤을 안고 각자의 걸음을 서둘렀다.  신평(新平)에 서는 그날의 막차였다. 고향 이름을 내건 식당들도 하나둘씩 불을 끄고 하루를 마감하고 있었다. 인근 도시 아침 장으로 시골 아낙들을 실어 갈 첫 전철이 새벽을 깨울 때까지 역은 잠들 것이다. 굼뜬 장꾼만 남은 파장 무렵처럼 쓸쓸한, 자정 가까운 시골 역. 처음은 아니지만 초행 보다 낯선 곳. 어중간한 술기운 때문인가? 분명 그 속인데도 녹화된 화면이나 사진을 보는 것처럼, 선우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손을 뻗어 만지려 하면 눈앞의 모든 게 스르르 흩어져버릴 것 같은, 신기루.. 2023. 7.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