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2 배꼽 이건 그저 우리 집, 뭐 하나 특별한 것 없는 세 식구에 관한 소박한 이야기다. 굳이 얘기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세상에 있는지조차 모르고 궁금해하지도 않을 가족. 별의별 자질구레한 사연이 다 나오는 한낮의 라디오 같은 데서도 좀처럼 들을 수 없을 이야기. 그래서 나는 쓴다, 내 말을 믿을 이가 몇이나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사실, 나 역시 바로 어제의 일들조차 아주 오래된 기억처럼 아련하기도 하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대도 아쉬울 건 없다. 적어도 이 이야기를 읽는 동안 가져 줄 관심,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낙원 인공위성 궤도처럼 똑같은 코스를 순환하는 마을버스의 출발점은 어디일까? 어디라도 시작이고 어디라도 끝이 되는, 그래서 참 안정적이지만 그만큼 밋밋하고 갑갑한. 어쨌거나 사람들이 가장 많이 타고.. 2023. 2. 15. 거울 봄볕이 눈부신 오후였다. 아버지는 일부러 그렇게 아늑한 날을 골랐을 것이다. 내가 대문을 들어서는 기척에도 아버지는 한동안 정성 들여 거울만 닦으셨다. ‘다녀왔습니다’ 하고도 들어가지 못하고 당신을 지켜보던 내게 잠시 눈길을 주셨지만 이내 손에 쥔 걸레를 깨끗이 빨아 한 번 더 꼼꼼히 닦고서야 마무리하셨다. 아버지가 거울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신 뒤, 텅 빈 마당은 어느 한옥의 고즈넉한 오후 풍경처럼 조금 쓸쓸해졌다. 나는 왠지 그 일련의 과정에서 아버지의 온 생애를 본 것만 같았다. 짧고도 긴 시간이었다. 천성이 조심스러운 아내는 내가 보지 못한 그 오후의 일을 전해주며 염려와 곤혹이 섞인 표정으로 치매라는 말을 꺼냈다. 작정하고 닦는다면 십 분이면 충분할 일을 한 시간이 넘도록 붙잡고 계셨으니 아내가.. 2023. 2. 15.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