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편소설

종소리

by FeelSeoGood 2023. 6. 18.

 

  갑자기 소나기가 뿌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비를 피해 나무 밑, 처마 밑으로 바쁘게 뛰어들었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공깃돌이 비에 젖었다. 아이들이 놀이를 위해 운동장에 그렸던 오징어나 뼈다귀 모양의 금도 빗줄기에 지워졌다. 그래도 별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젖은 돌은 마를 테고 지워진 금은 다시 그리면 그만이었다. 옷이 젖는 것도 문제될 것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감기 걸린다고 목사님께 혼이 날 게 분명하기 때문에 비를 피하는 것뿐이다.

  “야 광수, 마지막에 넣은 거 골인이다. 딴 말 하지 마라.”

  빗물에 젖지 않게 하려고 축구공을 감싸 안은 채 뛰어가며 창호가 광수에게 다짐하듯 이야기했다. 한 눈에 봐도 족히 몇 년은 차댔을 낡은 공이었지만 창호는 보물이라도 다루듯 처마 밑으로 들어오자마자 공에 묻은 물기를 옷으로 닦아 냈다.

  “그기 와 꼴인이고? 비와가 다 뛰 들어올 때 차 넌 거 아이가. 꼴끼파도 없는데 꼴 누가 못 넣노, 안 글나?”

  광수보다 명우가 먼저 발끈해서 한 마디 했다.

  “그래도 골인은 골인이다. 니네 편에서 공 안 막고 나간 거지 내가 막지 말라고 했냐?”

  “에이 씨팔, 저 새끼는 뭐 할 때 마다 꼭 하나씩은 우겨. 공 하나 있다고 유세떨기는…….”

  광수가 한 마디 내질렀다. 그 소리에 창호는 금방이라도 싸울 것처럼 씩씩거렸고 광수도 지지 않고 맞섰다.

  “챠뿌라. 골 하라캐라. 그래도 우리가 안 이깄나? 또 싸와가 목사님한테 머라캐이지 말고 가마 있어라.”

  결국 명우가 광수를 말리는데, 창호는 명우가 같은 편인 광수를 편든다고 생각했는지 내게 다시 확인을 했다.

  “문규 너 얘기해봐. 마! 너도 같이 축구 했으니까 알 거 아냐? 골인이지, 그렇지?”

  “……”

  “야, 골인이잖아. 너 인마, 우리 편이잖아!”

  “……”

  나는 뭐라고 말을 꺼내려다가 흥분한 창호 뒤편에 서서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나를 을러대고 있는 광수를 보고는 그대로 입을 닫았다.

  “씨팔, 저 자식은 같은 편 해 봐야 도움이 안 돼, 도움이.”

  들으라고 하는 소린지, 혼자 소리인지, 창호는 화가 치밀어서 빗속을 뚫고 교회 건물 안으로 뛰어가며 한 마디를 더 내질렀다.

  소나기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비가 잦아들면서 아이들은 다시 처마 밖으로 나왔다. 하늘은 아직 찌푸려 있었지만 굵은 모래로 된 운동장은 언제 비가 왔었나 싶게 잘 말라있었다. 맨발로 땅을 밟으면 좋은 볕에 잘 마른 이불 홑청처럼 사각사각 기분 좋은 까끌함이 묻어날 것 같았다. 아무리 뛰놀아도 먼지 하나 나지 않는, 이런 때가 가장 좋은 때다. 다시, 공기, 뼈다귀, 고무줄놀이가 시작되었다.

  “집에 갈끼가?”

  “응.”

  “엄마도 없는 빈 집에 말라꼬 일찍 가노? 우리캉 같이 또랑에 고기나 잡으러 가자. 비도 오고 캐가 고기 많을 낀데.”

  “그래도 혹시나, 할배 오실 수도 있고…….”

  명우에게 적당히 얼버무린 나는 집을 향해 걸었다. 흘낏 돌아보니 광수와 명우는 정말로 고기를 잡으러 갈 모양인지 개울 쪽으로 뛰어 가고 있었다. 말랐던 풀이 소나기 덕분에 다시 생기가 넘쳤고, 풀잎에 달려 있던 물방울로 발목을 적셨다. 나는 언제나처럼 손때로 꾀죄죄한 반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고개를 숙여 땅을 보고 걸었다. 가끔 마주 오는 마을 어른들을 제때 알아보지 못해서 야단을 듣기도 했지만 그게 편했다. 정말 아무도 없을 집을 생각하니 광수와 명우를 따라갈 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문규야! 어머니 오셨니?”

  발부리에 걸리는 차돌 하나를 걷어차려다 말고 나를 부르는 쪽을 돌아봤다. 교회 뒤뜰 종탑 옆에 선 인숙이 누나가 나를 보고 서 있었다. 나는 누나를 향해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어 보였다.

  “할아버지는? 오늘 오시니?”

  “어데, 모린다. 할배가 언제 온다꼬 안캐줬다. 올 오실지 낼 돼야 오실지…….”

  “저런……. 이따가 저녁은 교회에 와서 같이 먹어. 혼자 자기 무서우면 교회에서 애들이랑 같이 자든가. 광수, 창호하고 같이.”

  “아이다, 내 혼자 자도 개안타, 누나!”

  나는 딴에는 용감하게 보이려고 일부러 목소리에 힘을 넣었다.

  매 놓았던 종 줄을 풀면서 인숙이 누나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잠시 나를 바라보고 섰다. 누나가 옆에 내려놓은 광주리에는 소나기에 걷었다가 채 다시 널지 못한 빨래가 한 가득 담겨 있었다. 엄마 생각이 났다. 꼭 저런 광주리를 이고 빨래터에 가던, 머리에 수건을 둘러쓰고 정지에서 밥을 짓던, 밥 때가 됐는데도 안 들어온다고 야단을 치던, 엄마…….

  마을 교회라 보잘 것 없지만, 고아원이 아닌데도 아이들을 다섯이나 식구처럼 데리고 있어서 인숙이 누나가 해야 할 잔일이 많았다. 그냥 보기에는 이제 막 스무 살이 되었을까 싶지만, 누나는 인천인가 어디에서 대학까지 다니고 왔다고들 했다. 가끔 어느 집 문간방에 아주머니들만 모여 술추렴이라도 벌이게 되면 누나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나오곤 했는데, 언젠가 그런 때 엄마를 따라 갔다가, 개울 건너 길안댁 아주머니가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풀어놓듯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주머니들 이야기란 것이 그렇고 그런 것이어서 칭찬은 없고 확실치도 않은 험담만 고구마 줄기처럼 이어져 나오기 일쑤였는데, 인숙이 누나에 대한 이야기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야들야들하게 생겨서 도시에서 남자 여럿 홀렸을 거라는 둥, 뭐 하는 집안인데 과년한 처자가 시골에 내려와 소득도 없는 일을 하고 있는데 가족들은 얼굴 한 번 보이지 않느냐는 둥, 원래가 고아라는 둥, 목사를 마음에 두고 있지 않고서는 저렇게 억척스레 교회 일을 봐줄 수 없을 거라는 둥 따위였다. 그렇지만 인숙이 누나의 착하고 깔끔한 행동거지를 겪어서 아는 동네 사람들은 다른 이들을 입에 올릴 때처럼 실없는 맞장구를 이어가지 않았기에 분위기가 곧 시들해져서 다른 얘깃거리를 찾아 넘어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엄마도 인숙이 누나 험담도 하고 시아버지 흉도 봤다면, 길안댁 아줌마처럼 술도 먹고 노래도 하면서, 정말로 기뻐서 그러는 것 같지는 않았어도 깔깔대고 웃고 떠들 수 있었다면 지금처럼 내가 빈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일은 없었을까? 내가 더 엄마 말을 잘 듣고 할아버지가 술도 덜 마셨으면 지금과는 달랐을까?

  하루 종일 생각해 봐도 알 수 없는 궁금증이 마음속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디잉뎅, 디잉뎅, 디잉뎅…….

  인숙이 누나가 치는 종소리가 마을 쪽으로 퍼졌다. 종소리는 집에 거의 다 와서도 계속되었다. 저녁 예배 시간이었다.

 

  교회 종은 꼭 인숙이 누나가 쳤다. 목사님이나 가끔 들리는 전도사님이 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런 때의 종소리는 왠지 교회에 어울리는 것 같지가 않고, 아이들을 꼬드겨서 집에 있는 성한 요강까지 찌그러뜨려 가져오게 하는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나 해마다 뒷산 곰바위에 마을 제를 올릴 때 온종일 쳐대는 징소리 같기만 했다. 이러나저러나 아무 상관없이 시끄럽기만 한 소리 말이다. 인숙이 누나가 하얀 블라우스위로 등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머리를 반듯하게 묶어 매고서, 조금 버겁게 잡아당기는 묵직한 종줄의 움직임을 따라 비로소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다른 사람들이 무턱대고 울려대는 소리와는 분명히 달랐다. 마을에 교회가 있어서 좋은 이유는 창호나 광수 같은 애들이 먹고 잘 곳이 돼 주어서도 아니고,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에 과자나 사탕을 나눠주기 때문도 아니었다. 인숙이 누나가 치는 종소리를 하루에 두 번씩은 꼬박꼬박 들을 수 있는 것, 그거면 충분했다. 나는 그 종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해졌다. 다니다 말다 한 주일학교에서 배운 느낌으로 말하자면,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면 아마 인숙이 누나의 종소리 같을 거라고, 나는 믿었다.

  싸리울을 돌아 집으로 가는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는데 뒷집 명우네 바우가 컹컹댔다. 바우는 나인 줄 알고는 곧 짖기를 그쳤지만, 집안은 차라리 개 짖는 소리라도 있었으면 싶을 만큼 조용했다. 마당 구석 펌프 옆에 늘 세워져 있는 할아버지의 자전거가 보이지 않았고 마루로 올라가는 댓돌 위에도 고무신 한 짝 놓여있지 않았다. 나는 안 오신 걸 알면서도 마당에 들어서면서 할아버지를 불렀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서서히 어둠이 내리는 마당에는 벌써 산 그림자가 들어찼다. 한데보다 훨씬 어둑한 마루로 올라서면서 나는 아무도 듣지 못하게 또 웅얼거렸다, 엄마……. 입에서 맴돌던 소리가 채 말이 되어 나오기도 전에 손은 벌써 때 묻은 셔츠 소매를 잡아 올려 눈물을 쓱쓱 닦아내고 있었다.

  뒤란에 어지럽게 부려진 엄마의 옷가지와 조그마한 경대는 소나기를 피하지 못해 마당에서 튀어 오른 흙탕물이 범벅되어 있었다. 마당을 들어설 때 애써 눈길을 주지 않으려 했지만, 내던져질 때 서랍이 벌어져 쏟아진 엄마의 물건들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낡았지만 다 해봐야 몇 개 안되는 엄마만의 물건들. 엄마가 오면 다시 써야 할 텐데……. 비에 젖어 나무가 벌어지고 틀어져 버리면 엄마가 온대도 정말 버릴 수밖에 없을지도 몰랐지만 그 물건들을 손수 싸안고 나와 뒤란에 던져놓던 할아버지의 무서운 표정이 생각나서 감히 손을 댈 수는 없었다.

돈 많이 벌어 오겠다며 월남으로 갔던 아빠의 사망통지를 받고 일 년이 다 되도록 할아버지는 두 홉 들이 금복주와 눈물추렴으로 잠이 들었다. 그런 할아버지가 엄마가 떠난 다음날부터 한 번도 술을 드시지 않았다. 그 대신 할아버지의 얼굴은 그간의 넋 나간 모습이 사라지고 아주 가끔 나를 혼낼 때처럼 무섭게 변했다. 보름쯤을 그랬을까? 그저께, 할아버지는 내게 사흘을 혼자 지내라 이르고 엄마를 찾아보겠다며 나섰다. 그 보름동안, 할아버지 대신 내가 밤마다 울었다. 할아버지가 알면 무슨 경을 칠지 몰라 이불 속에서 몰래몰래 울었다.

  “문규야, 문규야!”

  눈을 떴는데도 어두웠다. 잠이 들었던가 보다. 방안은 벌써 캄캄해졌고, 창호지 너머의 달빛이 앙상한 나무 문살 그림자를 방바닥에 만들어 놓고 있었다. 달빛이, 휑한 방안 공기를 더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것 같았다. 엉덩이 아래쪽에서 오금까지가 저리고, 허리께가 뻐근했다.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꽤나 오래, 벽에 기대 무릎을 감싸 안은 불편한 자세로 잠이 든 것 같았다.

  “문규야, 방에 없니?”

  인숙이 누나였다. 누나의 목소리를 뒤따라 바우가 짖었다.

  “으응, 아니. 내… 여 있다.”

  채 잠이 깨지 않은 목소리를 못 들었는지 누나는 와락, 방문을 열어젖혔다.

  “너 집에 있었구나. 밥은 먹었니? 왜 불도 안 켰어? 잤니?”

  굳이 내게 묻기는 했지만, 누나는 내가 밥을 먹지 않았고 엄마라는 단어를 입안에서 웅얼거리다가 눈물을 찔끔거리다가 잠이 들었다는 걸 다 알고 있는 표정이었다. 아무 대답도 필요 없었다. 누나는 아예 방으로 들어와 방바닥을 한 번 쓸어보더니 내 손을 잡아끌었다.

  “방이 썰렁하구나. 할아버지도 내일에나 오신대고, 너 오늘은 아무래도 교회에 가서 자는 게 낫겠다. 가서 저녁도 먹고.”

  나는 방에서 나오면서 누나가 눈치 채지 못하게 얼굴에 남아있던 눈물자국을 손으로 쓱쓱 문질렀다. 누나가 먼저 신발을 신고는 가지고 손에 든 전등으로 내 신발이 놓인 댓돌 위를 비추었다. 내가 못 이기는 척 신발을 꿰신자 누나는 내 등을 떠밀어 나를 앞세웠다.

  귀뚜라미가 울고 있었다. 낮으로는 아직도 볕이 따가웠지만 이제 여름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새벽 기온이 서늘해졌다 싶더니 며칠 새 아침, 저녁으로 느껴지는 기운도 달라졌다. 그제는 코스모스 꽃잎에 달린 이슬을 떨어내며 등교했고, 그 많던 잠자리도 이제는 잘 보이지 않았다.

  길옆에 멋대로 자라난 풀잎에는 벌써 밤이슬이 내려앉았다. 인숙이 누나가 신고 온 고무신에 물기가 묻어서 누나의 맨발과 만날 때마다 뽀도독 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내일 할아버지 오실 때 엄마도 같이 오신다고 했니, 문규야?”

  “……”

  나는 아마도, 들키지 않으려 애쓰긴 했지만, 걸음이 흔들리고 있었나 보다. 누나의 입에서 조심스럽게 미끄러져 나오는 엄마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내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한 발, 또 한 발. 하도 많이 다녀서 눈 감고도 갈 수 있는 길이 아지랑이처럼 아른 거려 어지러웠다. 차라리, 눈을 감아버렸다면 넘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고인 눈물이 흘러내릴까봐 그러지 못했다. 한 번 울음이 터지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도 그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정말, 누나가 보는 데서는 울고 싶지 않았다.

  “아!”

  내디딘 발이 짐작한 것보다 깊이 내려간다 싶더니, 잠시 허공에 떠있던 한쪽 다리가 균형을 잡지 못하고 넘어지며 땅에 무릎을 짓찧었다. 논두렁을 가로지르는 작은 물길을 헛디딘 것이다. 발목을 삐었는지, 돌덩이에 부딪힌 무릎보다 발목이 더 시큰거렸다.

  내가 흘린 첫 눈물은 아마도 집에서부터 담고 있었던 엄마 생각이 누나의 목소리를 타고 털썩 흘러내린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곧, 무섭게 시큰거리는 발목이 아파서 울었고, 누나 앞에서 울고 만 것이 부끄러워 더 울었다.

  “문규야! 문규야, 괜찮니?”

  바로 뒤에서 손전등을 들고 따라오던 인숙이 누나가 다급히 내게 다가와 앉았다. 나는 우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렸다. 인숙이 누나가 까진 무릎께를 확인하고 나를 일으켜 세우는데 발목에 힘을 주지 못하고 다시 넘어졌다.

  “저런, 발목을 삐었나 보…….”

  “아아!”

  다친 걸 확인하려는 누나의 손이 발목에 닿자 나도 모르게 비명이 튀어나왔다. 그 소리에 놀란 누나의 손전등 불빛이 내 얼굴로 확 달려들었다. 눈물자국으로 번지르르한 얼굴과 부어오른 눈이 불빛에 더 도드라져 보였을 것이다. 잠시 나를 살핀 누나가 나를 살포시 끌어안았다. 눈물범벅인 내 볼이 인숙이 누나의 온기 속에 가득 담겼다. 나는 울음을 들킨 부끄러움에 더 큰 소리로 울먹였다.

  “괜찮아, 문규야. 너, 지금 다친 발목도 금세 나을 거고, 이 발목이 다 나을 때쯤이면 할아버지도 엄마도 다 돌아오셔서 너 하고 같이 계실 거야.”

  나를 꼭 안은 인숙이 누나에게서 엄마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분을 바르지 않아도 엄마한테서 나던 냄새. 아주 어릴 때부터 맡아 생생한, 엄마……. 내 가슴께 어디쯤에서 다시 서글픔이 울컥울컥 차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조금 더 울고 나서야 나는 누나의 등에 업혀 교회까지 갔다. 내가 울음을 그치자 누나는 나를 다독여 업었다. 나는 무어 그리 서러운 것이 많은지 평소에도 한 번 울기 시작하면 울음을 그쳐내기가 쉽지 않았지만, 이미 저녁때쯤 많이 울어서인지 울음을 참아내야 한다는 억지스런 주문도 필요 없이 눈물이 저절로 그쳤다. 교회에 있는 창호나 광수에게 놀림을 당하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다 싶었다. 누나가 발을 내딛을 때마다 길옆의 나무와 먼데 산허리가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누나의 온기에 편안해지는 만큼 두근거리기도 하는 내 마음처럼 일렁였다.

  누나는 나를 업은 채 걸으며 혼잣말인지 들으라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얘기를 했다.

  “문규야, 나중에 너에게도, 조금만 더 있으면, 엄마나 아빠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이 생기게 될 거야. 그때가 되면 이렇게 그냥 막 서럽지도 아프지도 않게 돼. 더 울지 않게 될지도 모르지. 그런데 문규야. 더 울지 않는 게 좋을까? 서러우면 아프고, 아프면 또 울고, 그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아프면 아프다고 하고, 좋으면 좋다고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말이야…….”

  누나의 말은 이어지고 있었지만, 뜻 모르는 외국 노래를 듣는 것처럼 그냥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으로만 위안이 될 뿐, 왜 그런 말을 하는지는 알 수는 없었다. 나도 누나만큼 크면 알게 되는 이야기일까? 누나만큼 어른이 되면 엄마가 보고 싶지 않을까? 누나가 말을 할 때마다 누나의 등에 얼굴을 꼭 붙인 내 귀에 옹옹거리는 얕은 진동이 느껴졌다. 고샅 양쪽에서는 풀벌레 소리가 쏟아져 내렸다. 나를 업고 가는 사람이 엄마라면, 얼마나 좋을까?

  교회에서 이틀을 지내고 집으로 왔다. 돌아오는 길도 인숙이 누나와 함께였다. 할아버지가 혼자 오셨다고, 인숙이 누나는 미안한 표정으로 내게 일러주었다. 누나가 살뜰히 돌봐주었지만 발목은 가라앉지 않고 디딜 때마다 아팠다.

  “밥 잘 챙기무꼬 있었드나? 아 본다고 니가 고생했구마. 고맙대이. 다 내 죄가 커서 그런 기라. 우엣끼나 니가 욕 봤대이.”

  할아버지가 간간히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마당에 들어서는 인숙이 누나에게 말했다. 할아버지가 타고 나갔던 자전거는 늘 있던 펌프 옆 그 자리에 놓여 있었고, 할아버지도 늘 계시던 마루 끝에 앉아 청자를 태우고 계셨지만, 엄마는 없었다. 누나에게 벌써 들어 알고 있었지만, 두리번거리며 엄마를 찾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언제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표정의 엄마가 정지 문을 열고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만 같았다.

  “제가 뭘 한 게 있나요. 그저 동생 같아서…….”

  “마카 다 그냥 그래 사는 기다. 너무 맘 쓰지 말그라. 괜히 니 맘도 애로워질 꺼 읍다.”

  할아버지는 재떨이에 꽁초를 비벼 끄며 인숙이 누나를 먼 눈길로 잠시 바라보며 말했다.

  “문규가 발을 삐었어요. 좀 낫기는 했는데 그래도 아직 많이 아픈가 봐요.”

  “그기야 좀 지나믄 낫긋지. 맘 쓰린 거카믄 몸 아픈 기 나을끼다.”

  나는 댓돌에 앉아 성한 발끝으로 실없이 마당을 헤집으며 할아버지와 누나의 얼굴을 할끔거렸다.

  누나는 한동안 내 손을 꼭 잡아주고는 돌아갔다. 무슨 말이라도 하려 했던지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결국 그냥 돌아섰다. 고샅으로 접어들어 한 번 돌아봤던 것 같은데, 나는 돌아봐 주는 것이 그저 고마웠다. 나는, 마을에서나 교회에서 마주치고 헤어질 때처럼 잘 가라는 말 밖에 못했다. 딱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무슨 말이라도 더 해야만 할 것 같았는데도 말이다. 고맙다거나 앞으로는 씩씩해지겠다거나 하는, 평소라면 익숙하지 않은 그런 말말이다. 누나는 두어 번 더 나를 돌아보고는 총총히 사라졌다. 교회에 바쁜 일이라도 남았는지 조금 서두르는 걸음이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별 다를 것 없는 아침이었다. 수탉은 새벽부터 울었고, 뒷집 바우는 참새를 쫓으며 짖어 댔다. 나는 할아버지가 깨우지 않아도 일어나 세수를 하고 마당을 쓸었다. 주인 없는 정지, 깨끔하지 못한 살림이 어지러운 부뚜막 가마솥에서 지어 낸 보리밥을 꾸역꾸역 씹으면서도 한 번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아서 밉고 불안하기도 했지만, 할아버지를 똑바로 마주 볼 자신이 없기도 했다. 혹시나 할아버지가 뭐라고 이야기를 할까봐, 내가 듣고 싶지 않은 어떤 이야기를 할까봐서……. 엄마를 찾으러 갔다 오고부터 할아버지의 표정은 또 좀 바뀌었다. 꼭 꼬집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차갑게 굳어있던 지난 며칠과는 분명히 달랐다. 예전, 그러니까 아빠가 죽기 전의 할아버지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무어라 먼저 물어볼 수 없어서, 할아버지와 마주 앉은 내내 억울함이 명치 어디쯤에 맺혀 생목을 죄는 답답함을 참아가며 꾸역꾸역 밥알을 씹어 삼켰다.

  “문규 할배요, 문규 할배 계시니껴?”

  뒷집 명우 엄마의 새된 소리가 할아버지와 나의 정적을 깨고 끼어들었다. 떠 넣은 밥을 채 못 삼킨 채 절뚝이며 문을 열어 내다 봤더니, 명우 엄마는 하얀 뚜껑이 덮인 보시기를 툇마루에 올려두고는 방 쪽으로 고개를 빼고 앉아 있다 아는 체를 했다.

  “할배 기시나? 아침은 뭇나?”

  나는 입에 든 밥을 씹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안의 할아버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할아버지는 헛기침을 한 번 하시더니 툇마루로 나가 앉았다.

  “어서 오소. 내 없는 동안 야 신경 쓴다고 욕 봤지러?”

  “어데요. 내보다 교회 인숙이가 먼저 다 챙기조가꼬, 인숙이 가도 참…. 맘은 그래 착한 기…. 우얫든, 지는 한 개도 애쓴 거 업다 카이요. 진지는 자셨니껴?”

  “인자 막 묵고 일날라 카던 참이구마. 어제 논일이 반나절이믄 될끼라 봤디만 하루 점도록 걸리뿌가, 오늘은 쪼매라도 일찍 밭으로 나가 봐야할 낀데, 마음이 영 바쁘구마.”

  “새로 뜯은 걸로, 식구들 물라꼬 콩잎 쪼매 무쳐봤는데, 함 자셔 보이소.”

  겸연쩍은 표정으로 가져온 종지를 밀어놓더니 돌아가려다 말고 명우 엄마는 할아버지에게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할배요, 나갔던 일은……. 만나는 봤니껴?”

  할아버지는 대답 없이 청자를 입에 물고, 성냥 통을 끌어 와 불을 붙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명우 엄마는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더니, 다시 새된 호들갑을 이었다.

  “그 얘기는 들었니껴? 안죽 못 들으셨지예? 교회 목사하고 인숙이가 도망을 갔다 캅디더. 그저께 한나절 지나가 둘이 장에 간다꼬 나가가 안 돌아와가 그날 밤은 교회에 있는 아들끼리 우째우째 해가 잤는데, 어제 전도사가 와가, 아주 간다꼬 편지 써가꼬 나뚠 걸 찾았다 캅디다. 첨부터 그카지를 말든동, 아아들을 다섯이나 나뚜고 둘이 그래뿌마 우짜라는 건지. 가기는 말라꼬 가노? 그냥 여서 살아도 누가 뭐라 칸다꼬. 그래도 돈은 쫌 나뚜고 가가 우선 쟈들 굶지는 않는다 카데예.”

  밥상 앞으로 돌아와 밖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고 있던 나는 인숙이 누나 이야기에 화들짝 놀라서 문에 바싹 다가가 앉았다.

  명우 엄마는 어젯밤에 명우가 창호에게 들어온 이야기라고, 어디로 간다는 말은 당연히 없고, 아마도 고향이라고 알려진 인천이나 큰 도시로 가지 않았겠느냐고도 했다. 누가 듣든 말든 혼자 신나서 이야기를 이어가려는 명우 엄마를 할아버지는 큰 헛기침 두 번으로 무질렀다.

  “나무 얘기 그래 신나서 하지 마소. 아도 듣는구마는….”

  명우 엄마가 돌아가는 소리에 나는 급하게 문을 열어젖혔다. 뭘 물어야 할지도 몰랐지만 명우 엄마를 붙잡아야겠다 싶었다. 누나 이야기를 더 들어야겠다 싶었다. 아니 명우 엄마가 잘 못 알았다고, 다 거짓말이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누나가 왜, 인숙이 누나까지 왜!

  하지만 문지방을 넘어 마루로 발을 내딛는 순간 발목이 꺾이며 나는 쓰러졌다. 명우 엄마를 부르려던 소리는 아픈 발목 때문에 얕은 비명으로 바뀌어 나왔다. 고개를 들었을 때는 타이르는 듯 근엄한 표정의 할아버지만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제야 며칠 동안 교회 종소리를 듣지 못한 것이 떠올랐다.

 

 

 

  다시 교회 종이 울리기 시작한 것은 내 발목이 낫고도 한 참 더 지나서, 이미 겨울에 들어서고 나서였다. 마을은 바쁜 가을걷이를 마치고 집집마다 한겨울 지낼 장작을 해 나르고 있었다. 새 목사님은 부인과 같이 왔는데, 교회에 계속 살게 된 창호 말로는 아버지처럼 잘 해주는 분이고 전에 있던 목사님과 다르게 야단도 많이 치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들도 목사님 말씀 더 잘 듣고 착해졌지만 왠지 전만큼 재미는 없다고도 했다. 예전부터 교회에 다녔던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다시 교회에 나갔고, 인숙이 누나와 목사에 대한 사람들의 수군거림도 계절이 바뀌듯 자연스레 시들해졌다. 그래도 어른들이 몇몇 모이면 간혹, 나나 할아버지가 없는 데서 우리 엄마에 대해 수군거리듯, 여전히 그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한 동안 학교만 마치면 개천에 나가 팔매질을 했다. 매끈하고 둥글든, 거칠고 모나든 손에 잡히는 돌은 지천이었다. 내 손을 떠난 돌이 수면에 만들어내는 흔적은 물살에 쓸려 금세 없어졌지만 누구를 향한 것인지도 모를 내 안에 있던 미움은 그렇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천변에 이는 바람이 매워져 가는 만큼 내 팔매질도 점차 줄었다. 내가 어째본대도 무언들 달라질 것이 없었으니까…. 가끔 명우와 둘이서 삭정이나 갈비를 끌어 모으러 뒷산에 오르면 옹기종기 모여 앉은 마을을 보면서 생각했다. 저 집들 중에 엄마 없는 우리 집과 인숙이 누나가 없는 교회만 묘하게 닮은 것 같다고. 온 마을에 눈이 내려 쌓이면 그 둘이 다른 집들보다 훨씬 더 추울 것 같다고.

  우체부가 내 이름이 적힌 편지를 할아버지에게 전해주고 간 것은 마을 가득 내려앉은 잿빛 구름이 금방이라도 눈을 쏟아낼 것 같은 날이었다. 어디라고 편지를 보내올 데가 없기도 했지만, 아빠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던 우체부 아저씨가 통 반갑지가 않아서 나는 좀 불안한 마음이었다. 할아버지는 누가 보냈는지도 모르는 편지를 몇 번을 반복해서 읽고는 원래 접힌 모양대로 조심스레 되접어 봉투에 넣었다. 분명 내 이름이 적힌, 내 앞으로 온 것이었지만 할아버지는 편지를 내게 보여주지 않은 채 그저 한참을, 나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진작부터 궁금해 죽을 것 같았던 나는 뭐라고 물어봐야 하는지는 모르겠는데도 할아버지가 분명 뭐라고 이야기를 해줘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 오후 내내 뭐라도 있을까 조바심치다가 이불 속에 들어서는 억울함을 한 가득 안고 겨우 잠이 들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도 여러 번 고쳐 누우며 쉽게 주무시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다음날 나는 익숙하지 않은 인기척에 잠이 깼다. 쪽창을 열고 소리가 나는 뒤란을 내다보니 아침 한기 속에서 할아버지가 엄마의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제 정말 버리려고 그러나보다 싶어 마음이 급해진 나는 얼른 바지를 껴입고 뒤란으로 뛰어나갔다.

  “그라이라도 깨울라 캤디만 일났구나. 문규야! 니도 여서 성한 것들 골라가 안에 들따놔라. 마이 상해가 쓸만한 기 을매나 될지 몰따만 그래도 쫌 챙기봐라.”

  나는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어쩌면, 이제부터는 할아버지 앞에서 엄마 이야기를 해도 괜찮은 걸까? 할아버지는 이제 엄마를 미워하지 않는 걸까? 그러니까 내쳤던 엄마의 물건들을 다시 들이는 게 아닐까? 나는 그 속에서 엄마의 경대를 제일 먼저 안아 올려 소맷자락으로 바쁘게 닦아냈다. 내던져지면서 거울이 깨졌고 귀퉁이가 성치 않게 되었지만 그 안에 들었던 몇 가지는 그래도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빗이나 분 같은, 엄마와 가장 가까운, 우리 집에 있는 몇 개 되지 않는 엄마만의 물건들이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입을 땠다.

  “할배요! 엄마는…….”

  할아버지는 편지를 다 읽고 났을 때처럼 다시 한 번 나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을 뿐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그 후로도 나는 여전히 교회 아이들과 같이 뛰놀았다. 날이 추워졌어도 놀 거리는 여전히 지천이었다. 교회 아이들도 인숙이 누나가 떠난 뒤 한동안 풀이 죽어 있었지만 곧 전과 다를 바 없이 지냈다. 우리는 전처럼 교회 마당에서 창호의 보물을 차대다가 다투다가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어울렸다.

  “예전 목사님하고는 다르게 새로 온 목사님은 진짜 아버지 같은 느낌이다. 만약 아버지가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다.”

  축구를 이기고 기분이 좋았던 날 교회 담벼락 밑에 앉아서 창호가 그랬다.

  “사모님도 인숙이 누나보다 잘 해 준다. 반찬도 훨씬 맛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게 꼭 좋다는 말인 것 같지는 않았다. 어쩌다가 창호가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을 하는 창호는 더 이상 예전의 우기기 대장처럼 보이지 않았다. 딱 적당한 설명은 아니겠지만 굳이 말하자면, 맨날 천방지축으로 어울려 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의젓하게 중학교 교복을 입고 나타난 동네 형들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엄마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내게 철 좀 들라고 했는데, 정작 엄마도 없는 창호가 먼저 그렇게 되었나 싶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창호의 표정이나 말투가 썩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는 것이다. 다시 돌봐주는 사람이 생겨서 다행이고 좋아야 할 텐데 말이다. 나만큼은 아니라도 어쩌면, 창호도 인숙이 누나가 보고 싶은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니다 어쩌면, 저를 버리고 가버린 인숙이 누나가 많이 미운 것인지도 몰랐다. 그것도 나만큼은 아니겠지만…….

  “문규야! 어서 일나라! 퍼뜩 일나가 여 뜨신 물 떠가 깨끗이 세수하고 학교 갈 준비 하그라! 눈이 올라카나…. 카고 보이 올개는 눈이 늦네. 그래도 오늘은, 와도 마이 오지 말아야 될 낀데…….”

  할아버지 목소리에 눈을 떠 보니 창밖은 아직 날이 제대로 밝지 않고 희끄무레했다. 벌써 해가 많이 늦어지긴 했지만 다른 날보다 훨씬 더 일찍 깨운 것이 틀림없었다. 차가운 툇마루에 발을 내딛기가 싫어 아랫목에서 이불을 감싸 안고 꾸물댔더니 금세 할아버지의 재촉이 날아들었다. 그런데, 평소와는 좀 달랐다. 분명히 거역하기 어려운 느낌이었지만 그 속에 따뜻함이 느껴진다고 할까? 나를 살갑게 챙기는 엄함이었다. 나가보니 마당도 벌써 깨끗이 쓸어 놓으셨다. 원래는 세수 전에 내가 하던 것이었는데 말이다.

  “할배요, 오늘 어데 가니껴? 아침부터 와 이케 서두르니껴?”

  “오늘은 특별히 단디 씨꺼라. 목뒤에 하고 빠닥빠닥 문질러 가미. 윗목에 꺼내 논 새 옷으로 갈아입고, 핵교 마치마 딴 데 들따보지 말고 똑바로 집에 오니라.”

  할아버지도 벌써, 며칠을 입었던 낡은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계셨다. 나는 무슨 특별한 날인가 하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평범하지 않은 일들에 내심 긴장이 되었다. 엄마가 없었어도 그동안 할아버지와 나 둘이서만 지내는 것이 이제 좀 익숙해졌는데, 또 무슨 일이라도 생기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그래도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게 더 무엇이 있을까 싶었다. 이제는 더 나를 떠날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생각해 버리고 나니 어쩌면 좋은 일이 아닐까 싶어서 조금 설레기도 했다. 포근하면서도 칼칼한 날씨는 정말로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것 같았다.

  새 옷을 입고 등교하는 길에 생각해 봤다. 할아버지는 언제 이 옷을 사 오신 걸까? 지난 번 나가셨을 때였나? 가끔씩 장에 나가더라도 할아버지가 내 옷이나 신발 같은 걸 사오는 법은 없었다. 그런 건 꼭 엄마가 사줬다. 그럼, 혹시 그때 할아버지가 엄마를 만난 건가? 이 옷도 엄마가 사서 보낸 건가? 그러고 보니 옷에서 엄마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확실한 건 아무 것도 없는데도 나는 기분이 들떴다.

  교회를 지날 때 종탑위에 앉았던 까치 두 마리가 계속 나를 따라 이리 저리 옮겨 날았다. 오늘 좋은 손님이라도 오려는 걸까? 이제는 떠나보내는 것 말고 반가이 맞는 걸 하면 되는 것일까? 할아버지가 저리 준비를 하는 것으로 봐서는 우리 집에 누가 와도 오는 것인 것 같은데…. 우리 집에 올 사람이 누구일까? 어쩌면, 정말 어쩌면…….

  등 뒤로 교회에서 아침 종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한껏 숨을 들이마시고 학교를 향해 뛰었다. 차가운 겨울 공기는 머리가 저릿할 만큼 상쾌했다. 정말 오랜만에, 아주 조금이지만, 마음속에 있던 무언가가 비워진 것 같았다. 까치는 계속 나를 따라 울며 날았다. 내 귀에는 그 울음이 우는 것 같지가 않고, 신나서 웃는 것 같기도 했다. 하늘에는 어느새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2018 약사문예)

'단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심인 씨의 버스 타기  (0) 2023.06.24
명견  (0) 2023.06.21
Sink Condition  (0) 2023.06.12
En la costa del sol  (0) 2023.06.09
가을 저녁  (0) 2023.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