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탕! 탕!
버스 차체는 생각보다 튼튼한 편이 못되어서 그리 힘을 주지 않았음에도 찌그러질 듯한 양철판 소리를 토해냈다. 하지만 심인 씨에게 그런 정도의 공공의 안전성을 고려할 여유가 있을 리 없었다. 그는 꼭 끼지 않아 헐렁한 구두가 발에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발가락을 잔뜩 구부려 힘을 넣은 채로 이미 십여 미터를 허둥지둥 뛰어왔다. 그의 오른손에는 세일즈용 팸플릿을 가득 담아 배가 부른 낡은 가방이 들려 있었고, 목에는 엘니뇨 탓에 한 달은 빨리 온 무더위로 흘러내린 땀을 닦느라 느슨하게 풀어놓은 넥타이가 급히 뛰어오는 통에 한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눅눅한 습기 탓인지 심인 씨의 적당히 살이 붙은 몸체에서 흘러내리는 땀은 심인 씨를 옥죄는 열기를 제대로 식혀주지 못하고 있었다. 심인 씨의 생각에 버스는 심인 씨가 버스를 타도록 기다려 줄 것만 같았다.
심인 씨가 타려던 404번 버스가 시커먼 매연을 뿜으며 심인 씨의 곁을 터덜터덜 지나갈 때, 심인 씨는 버스정류장 십여 미터 앞 신도시의 거리, 아직 작아서 제대로 된 그늘도 못 만드는 가로수가 늘어선 인도의 땡볕 아래를 걷고 있었다. 바쁜 걸음 가운데에서도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훔치기도 했다. 약속 시간을 향해 바쁘게 달려가는 시계의 분침과 버스가 올 뒤편의 네거리를 번갈아 힐끔거리던 심인 씨는, 다행히도 버스가 가까이 오기 전에 미리 버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버스를 본 그는 정류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첫발을 내딛기 전, 왼손에 들었던 배불뚝이 낡은 가방을 오른손에 넘겨 들어 본격적인 달리기를 준비하면서 심인 씨는 엊그제 횡단보도에서 있었던 황당한 경험을 떠올렸다.
여름만 되면 도지는 무좀 때문에, 꽉 끼는 신발 대신 일부러 한 치수 크게 신고 다니는 그는 어제 초록 불이 요란한 경보음과 함께 깜빡거리는 횡단보도를 뛰어 건너다 오른쪽 발에서 구두가 빠져 버렸다. 엄밀히 말해서, 벗겨진 게 아니고 놓쳐버린 것이다. 발이 신발을 쥐고 있기라도 했던 듯, 발가락에 힘을 빼자마자 발에서 이탈해 버렸으니까 말이다. 왕복 팔 차선의 대로에서 이제 막 신호를 받아 출발하는 자동차들 사이에서 곡예하듯, 심인 씨는 한 발로 뛰어 신발을 찾으러 되돌아갔었다. 교통사고 위험보다 심인 씨를 당황스럽게 한 건 양쪽 인도를 지나가는 사람들, 방금 그 긴 횡단보도를 함께 지날 뻔했던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는 갑자기 벌어진 해프닝을 놓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것이었다. 중앙선 깨에 떨어져 있던 구두에 발을 집어넣는데도 차들은 쌩쌩, 심인 씨 옆을 스치고 나갔다. 아슬아슬하게, 신나게.
심인 씨는 그때 발을 집어넣고 있는 구두 아가리가 다시는 헤어나지 못할 수렁으로 느껴졌다. 그들에게는 얼마나 재미있는 구경이었을 것인가? 하지만 심인 씨는 남의 유쾌함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시키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심인 씨는 그런 웃음거리가 되기에는 자신이 무척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억울했고, 더 큰 모멸감을 느꼈다. 그의 생각에 그런 일은 세상에 애착 없이, 특별한 목적의식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지나가는 그런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이었다.
심인 씨는 버스를 향해 뛰는 양쪽 발가락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떠오르는 잡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던 심인 씨는 갑자기 벌어진 뜀박질 상황에 자기 몸이 적잖이 당황하며 뻑뻑하게 반응하는 걸 느끼고는, 내일부터 아침에 조깅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면 이름만 약수인 정체 모를 물이 일 년 내내 나오는 약수터까지 산책이라도 하든가. 심인 씨는 중얼거렸다. 허헛, 나도 이제 사십에 가까워지는 건가…….
심인 씨가 막 버스의 뒷문을 지나쳤을 때, 심인 씨보다 길어야 십 초 먼저 정류장에 도착했을 버스가, 정류장에 서 있던 여학생 하나를 태웠고, 잠시 심인 씨를 기다리는 것 같더니 몸을 부르르 떨며 검은 매연을 토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심인 씨는 타는 문까지 고작 두세 걸음을 남겨놓고 있었다. 하나 버스는 심인 씨를 놀리기라도 하듯이 유유히 속도를 더해가기 시작했다. 성급한 마음에 심인 씨는 왼손을 들어 버스의 오른쪽 옆구리를 쳐댔지만, 그 정도의 시위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듯, 버스는 심인 씨의 옆을 스쳐 가버렸다. 심인 씨의 얼굴에는 머리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고 시선은 황망히, 토해내는 매연을 줄이며 점차 속도를 올려 맵시 있게 앞으로 나아가는 버스의 뒤꽁무니를 바라보았다. 곧, 심인 씨의 입술이 한쪽으로 찌그러지는가 싶더니 아무 소용도 없는 한 마디가 새 나왔다. 씨이팔.
버스는 심인 씨를 무시하고서 놀리듯 출발하고서도 그리 많이 가지 못했다. 버스정류장에서 팔십 미터쯤-심인 씨는 분명히 팔십 미터라고 확신했는데, 그는 맨눈으로 거리를 정확히 가늠하는 남다른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떨어져 있는 횡단보도 신호등의 빨간 불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씨이팔, 어차피 저기서 설 거면서 태우고 갈 것이지. 안 태울 거면서 기다리는 척은 왜 한 거야? 똥개 훈련 시키는 것도 아니고, 니미럴…….
심인 씨는 신호에 걸린 버스를 향해 다시 팔십 미터를 뛰어가는 것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미 더위에 지친 몸으로 질주한 십여 미터가 체력의 한계였다. 길어야 몇 초 되지 않을 신호의 길이와 그가 뛰어갈 수 있는 속도 따위의 계산은 애초에 불필요했다. 그의 눈앞에 멈춰 선 404번 버스는 풍경 속 오브제라면 몰라도 더 이상은 교통수단이 아니었다. 심인 씨에게는 어디 손에 딱 잡히는 돌멩이라도 있으면 버스 뒤창을 향해 팔매질이라도 하고 싶을 만큼의 짜증이 남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심인 씨는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아니 남들보다 월등한 이성의 힘으로 그 짜증스러움을 억눌러 감정의 물리적 시현을 통제했다. 대신 심인 씨는 버스 뒤편에 적힌 운수회사 이름과 노란 번호판 위의 초록색 숫자들을 기억에 담았다. 버스가 다시 출발할 때쯤에는 심인 씨를 희롱한 그 버스의 차량번호와 운수회사, 그리고 ‘사건’이 벌어진 위치와 정확한 시간이 심인 씨의 수첩에 꼼꼼히 기록되고 있었다.
그 404번 버스, 심인 씨의 정확한 기억에 의하면 오후 3시 42분에 우진아파트 앞 버스 정류소를 지나간 서진운수 대구70자1472 버스는, 이제 짜증을 퍼부을 대상이 아니라 선량한 시민의 승차를 거부하고 달아나 버린 ‘불법’ 버스였다. 사회 공공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되도록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굳센 심인 씨는, 투표권을 얻은 후에 있었던 크고 작은 선거를 한 번도 걸러본 적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들이 별 관심도 두지 않는 지방선거 구의원 후보들의 정견, 공약까지도 꼼꼼히 살펴보는 것을 잊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버스, 택시마다 꿔다 논 보릿자루처럼 붙어있는 노란색 교통불편 신고엽서 주머니가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아주 당연한 수순이었다.
“대구, 칠공 자, 일사칠이, 서진운수…….”
심인 씨는 이미 수첩에 적어 두고도, 잊어버리지 않겠다는 듯 한 번 더 되뇌었다. 심인 씨는 그것이야말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합리적인 대응이며, 그의 그런 작은 시민의식이 승객을 무시하는 대중교통의 공공연한 횡포에 조금이라도 경각심을 일으킬 수 있으리란 생각에 뿌듯한 사명감마저 느꼈다.
수첩을 원래 꽂혀 있었던, 겨드랑이가 흥건히 젖은 와이셔츠 앞주머니에 넣은 뒤, 펜을 다시 그 앞섶에 꽂아 넣고서야 심인 씨는 이 갑작스런 질주가 흩트려 놓은 자신의 옷태를 수습했다. 돌아간 넥타이를 턱 아래에 맞추어 조여 매고 불룩 나온 아랫배 밑으로 흘러내린 바지춤을 끌어올렸다. 와이셔츠를 바지 안쪽으로, 되도록 펴서 집어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가방을 열어 흐트러진 영업용 팸플릿을 정리해 놓고서야 심인 씨는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러고는 정류장 의자에 앉아 수첩과 함께 와이셔츠 앞주머니에 들어있던 담배를 꺼내어 물다 말고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었으나 정류장 지붕 아래에서 담배를 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정도의 질서 의식은 심인 씨에게는 당연했다.
몇 걸음 자리를 옮겨 정류장 뒤편의 석축에 기대 긴 첫 모금 연기를 내뿜으면서 심인 씨는 몇 분 전에 남발했던 욕지기-사실, 그가 욕이란 걸 했던가, 하는 것도 의문이다. 그는 남들보다 뛰어난 합리적 이성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그런 것을 입에 담을 사람이 아니었다. 설령, 그가 마음속 한구석으로는 그런 욕지기를 떠올렸다 해도 말이다.-는 싹 잊어버렸다. 승차를 거부하고 달아난 그 버스는 분명히 심인 씨의 엽서에 의해 고발당할 것이고, 그것으로 충분히 대가를 치름은 물론이요, 그 버스를 몰았던 몰지각한 기사는 두 번 다시 그런 잘못된 행위를 하지 않도록 깊이 반성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모든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니 심인 씨는 이제 우쭐한 마음에 조금씩 기분이 좋아지기까지 했다.
심인 씨가 한 개비의 담배를 여유 있게 다 피우자 곧 또 다른 404번 버스가 정류장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그리 오래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앞차와의 간격이 얼마 나지 않아서 그런지 유난히 천천히 정류장으로 진입한 버스는 심인 씨가 서 있는 위치에 타는 문을 정확히 맞추어 세웠으며, 덕분에 심인 씨의 눈에는 어느 버스나 다 똑같은 자동문 열리는 속도조차 매우 느릿느릿 여유가 있어 보였다. 버스는 심인 씨가 타고도 한참을 버스 정류장에 그대로 서 있었는데, 그것은 버스 기사가 계산한 배차간격의 여유 말고도 심인 씨와 관련한 다른 탓도 있었다.
버스 차고지에서 멀지 않은 변두리인지라 버스에는 승객이 많지 않았다. 심인 씨는 버스에 타자마자 곧장 뒷문까지 당당하게 걸어갔고, 그 위에 비치된 노란 주머니에서 때 묻은 엽서를 한 장 빼 들었다. 교통불편 신고엽서 주머니는 얼마나 오랫동안 누구에게도 관심을 끌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었던 것인지, 안에 든 엽서를 보여주는 비닐 창은 먼지가 가득해 더 이상 투명하지 않았다. 그 안에 든 엽서는 몇 장 되지도 않았지만 그나마 있는 거라곤 대부분 찢어지거나 더럽혀졌고, 주머니 밖으로 나온 윗부분은 더 때에 절어 모퉁이가 시커멓게 뭉개져 있었다. 하지만 본연의 기능을 해낼 만한 한 장을 용케 찾아낸 심인 씨는 망설임 없이 그 엽서를 빼 들었다.
심인 씨가 자신을 꼼꼼히 지켜보는 시선을 느낀 것은 그 순간이었다. 그 시선은 이미 심인 씨가 교통불편 신고엽서를 담은 노란 주머니를 향할 때부터 그를 관찰하고 있었지만, 의협심과 시민정신으로 한껏 고무된 심인 씨는 그런 건 전혀 알지 못했다.
“아저씨! 그거 와 뽐능교?”
심인 씨가 자리를 잡고 앉으려 돌아서는 순간 운전석 앞 큰 거울을 통해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고, 기다렸다는 듯 운전기사의 입에서 억센 사투리가 기습적으로 튀어나왔다. 운전기사는 은밀히 관찰하던 대상과 시선이 마주쳤음에도 당황하는 기색 하나 없이, 반 박자 빨리 펀치를 날리는 권투선수처럼, 잽싸게 한마디를 던져왔다.
처음에, 심인 씨는 버스 기사의 질문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자신이 버스 운행에 지장이 될 중요한 어떤 것을 만져 잘못되게 해 놓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승객이 채 차에 다 오르기도 전에 출발을 해대는 통에 승차구의 난간에 부딪히듯 쓰러지게 만들기 일쑤인 버스가 심인 씨가 타고도 한참 동안 출발하지 않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출퇴근 시간처럼 바쁘고 혼잡한 때가 아니라서 그럴 그렇겠지 싶던 판단이, 사회 질서 준수와 타인에 대한 배려에 철저한 습관대로, 자신이 버스의 출발을 지연시킨 건가 하는 반성으로 급선회했다. 해서는 안 되는 어떤 행동을, 정확히 말해서 기사의 고유 권한을 침범하여 안전 운행이나, 버스 운행 자체에 방해가 되는 어떤 잘못을 자신이 저지른 것이 아닌가 되새겨 봤다. 하지만 기사의 말투가 반 시비조에 가까웠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신은 현재 기사와 적대적인 위치에 있음을 분명히 깨달았다.
오호라, 가재는 게 편이라더니…….
하지만, 심인 씨는 존경할 만한 이성의 소유자답게 문득 드는 적대적인 감정을 최대한 자제하고서 아무것도 모를 버스 기사에게 자신이 겪은 황당한 ‘사건’을 차근히 설명해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우선은 교통불편 신고엽서라는 것이 한정된 사람들, 정확히 말하자면 운수업계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고발 또는 신고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므로, 기사에게 무조건적 피해의식이 있을 수도 있고, 같은 직업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동업자적 저항감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조금 전 일을 차근차근 얘기해 주고, ‘지금 핸들을 잡고 있는 기사, 당신을 고발하려는 게 아니’라고 설명한다면 아무런 오해도 없게 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더 나아가 그렇게 하는 것이, 한 명의 기사에게라도 일을 직접 겪은 당사자가 실감 나게 사건을 전해 공감을 얻어내는 것이, 심인 씨가 원래 의도했던 대중교통의 승객에 대한 횡포에 대한 경각심을 유발하는 데 보다 직접적 효과가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심인 씨는 절대 흥분하지 않았다. 낡은 배불뚝이 가방을 자신의 앞 빈 의자에 올려놓고서 오른손에 든 신고엽서가 기사에게 정확히 보이도록 뒤돌아섰다. 그것은 자신의 의도를 정확히 확인시켜 기사의 적대감을 자극할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기사와 자신이 적대관계에 빠지게 된 원인을 정확히 제시하여 문제의 핵심으로 곧바로 들어갈 수 있게 되고, 그 이해와 해결을 위한 자신의 설명에 효율을 높여줄 거라는 계산이 깔려있었다. 그런 뒤 심인 씨는 운전석 거울 너머로 여전히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자신을 넘겨보고 있는 기사의 얼굴을 정확히 마주 보았다.
심인 씨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심호흡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완곡한 표현으로 최대한 운전기사를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쉬운 상대라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말끝마다 힘을 주는 것을 잊지 않았을 뿐이다. 그에게 반말인지, 존댄지 알 수 없는 사투리를 내뱉은, 한눈에 봐도 그와 같은 연배거나 많아 봐야 두세 살쯤 많아 보이는 기사를 향해 예의 바른 존댓말을 쓰면서.
“아, 예, 앞에 간 404번 버스 때문에요.”
“앞에 간 버스가 와요?”
“승차 거부를 하고 가더라구요. 아직도 그렇게 운전하는 기사들이 있어서 친절한 다른 기사님들까지 욕먹게 하네요.”
심인 씨는 불특정 다수의 기사를 추켜세워 자기 앞의 기사에게 직업적 자긍심을 고양함과 동시에 심인 씨가 들고 있는 교통불편 신고엽서의 고발 대상이 될, 누군지도 모를 또 다른 기사와 그 버스 기사의 연대감을 끊고, 공익이라는 대의 아래 정의의 이름으로 심인 씨와 한 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유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이성적일 뿐만 아니라, 멋진 수완도 있었다!
“승차 거부요? 모 우엣는데 승차 거분교? 정류장에 서 있는데 안 태아주고 가입디까?”
기사의 말꼬리가 한풀 꺾였다. 심인 씨의 입장을 찬찬히 들어봐 주겠다는 자세가 엿보인다. 심인 씨를 더 이상 얼토당토않은 적으로 생각하지는 못하겠다는, 일종의 적확한 상황 파악이다. 하지만 여전히 심인 씨를 같은 편으로 생각하지는 않아서 심인 씨에 맞설 일말의 경계심마저 해제하지는 않았다.
“뭐, 꼭 서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버스하고 같이 뛰어와서 앞문 바로 뒤에 버스 차체를 손으로 두드리기까지 했다니까요. 그런데도 그냥 가더라구요. 바로 저 앞에 있는 신호등은 빨간불이었는데 말입니다.”
마지막의 ‘말입니다’는 잘라먹고 싶었지만, 이성적인 판단에 의해 끝까지 설명조로 나가기로 한 심인 씨의 의지가 그런 불손한 욕구를 자제하게 만들 수 있었다.
“에이, 그라믄 승차거부라꼬 볼 수 인능교? 뻐스 딱 슨 다음에 쪼차바리로 뛰 왔다카는 긴데…….”
기사가 이제야 다 알겠다는 듯이 심인 씨를 향해 짐짓 눈을 흘기면서, 이것으로 자신들의 입장은 완전히 합리화된 것처럼 자신 있게 첫마디를 꺼내더니, 그래도 심인 씨가 공손하게 나간 보람은 있었는지 말꼬리를 줄이는 것으로 심인 씨의 동의를 구하려 했다. 그래도 그건, 심인 씨의 편으로 투항 의사를 보이는 것 같던 기사가 완전히 적진으로 되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아니, 그래도 말입니다. 정류장에서 십 미터도 안 떨어진 곳에서 걷다가 버스가 나를 지나치기도 전에 버스를 보고 정류장을 향해 뛰었단 말입니다. 내가 뛰다가 정확히 정류장까지 가지 않고 거기 서서 손을 들어 버스를 세웠더라도 버스를 세워주지 않으면 승차 거부가 될 수 있을 정도였다니까요. 제가 그래도, 기사님이 조금이라도 정류장에 정확하게 설 수 있도록 이 큰 가방을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왔더니, 아 그제야, 기다렸다는 듯이 슬금슬금 출발을 해버리더라고요. 내 참, 이 더운 날 똥개 훈련도 아니고…….”
서둘러 일을 마무리 지으려는 듯한 기사의 행동에 조금 짜증이 오른 심인 씨는 어쩔 수 없이 얼마간의 흥분을 내비치고 말았다. 날씨가 덥다는 것과 땀을 많이 흘린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튀어나온 아랫배를 왼손으로 쓰다듬으며 힘겨운 듯 큰 숨을 몰아쉰 건 안 해도 좋았겠다고 금세 후회했다.
“아, 그래도, 그런 거 가꼬 고발해뿌믄 우리 같은 사람들은 우얍니까? 고대로 불리가가 일방적으로 해명을 하라 카는데……. 이거는 마, 죽을 맛잉기라.”
기사는 거울 너머 심인 씨에게 동의를 구하듯 눈을 마주치며 그만하자는 투로 말했고, 그와 동시에 좌회전 깜빡이를 넣으며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핸들을 힘껏 틀어 정차하고 있던 버스를 버스배이에서 차선 안으로 집어넣었다. 마지막 차선에서 진행해 오던 택시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고 아슬아슬하게 버스 왼쪽 옆구리와 부딪히는 것을 피했다. 운전기사는 하얀 장갑을 낀 왼손을 창밖으로 내밀어 양해의 수신호를 몇 번 하고는 버스를 그대로 출발시켰다.
“아니, 그래도 입장을 한 번 바꿔놓고 생각해 보자구요. 어디 이 날씨에, 땡볕은 따갑기만 하지, 약속 시간은 빠듯하지, 그렇다고 서민 입장에서 쉽게 택시를 탈 수 있는 형편이 되는 것도 아니고, 모두 같이 부담 없고 편하게 이용하는 것이 버스인데, 어떻게 그렇게 갈 수가 있단 말입니까? 출발하고 죽 갔으면 몰라도, 바로 앞에 있는 신호에 걸려서 기다릴 것을, 그 몇 초 못 기다려 준단 말입니까? 아, 내가 버스를 손으로 몇 번이나 두드렸다니까요.”
심인 씨는 마지막, ‘두/드/렸/다/니/까/요’부분에서 직접 왼손을 들어 버스 창문과 창문 사이, 하차벨 아래쪽을 두드려 보이기까지 했다. 조금 더 높아진 심인 씨의 목소리와 차체를 쾅쾅, 하고 두드리는 소리에 버스에 타고 있던 몇 안 되는 승객들이 잠시 기사와 심인 씨의 실랑이에 관심을 보였다. 뭐야? 왜 저런데······.
승객의 수군거림과는 상관없이 기사는 부지런히, 발은 발대로 커다란 브레이크 페달과 액셀러레이터 페달 사이를 옮겨 놓고, 시선은 시선대로 전방과 양쪽 백미러와 심인 씨를 보는 커다란 룸미러에 옮겨놓으며 실랑이를 끝내려는 듯 한 마디 던져 놓았다.
“고마 액땜했다 생각하고 이자뿌소. 다 좋은 게 좋은 기라요!”
심인 씨의 귀에는 기사의 말이 왠지 다짐을 놓는 것처럼 들렸다. 심인 씨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기에게는 좋은 게 없는 것 같았다. 심인 씨가 고발하지 않으면 승차를 거부한 기사는 한 번의 실수에 대한 응분의 처벌을 피해 갈 수 있으니 좋다고 해도, 고발하지 않는다고 자신이 좋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더구나, 그렇게 잘못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대가 없이 피해 갈 수 있다면 또다시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을 것이었다.
“아니 그래도…….”
못다 한 말들을 끄집어내려고 심인 씨가 입을 여는 순간 버스가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조금 전, 버스에 의해 급정거해야 했던 택시가 버스 앞으로 끼어들어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기 때문이었다. 텅 빈 신도시 도로 위에 고의로 버스의 주행을 방해한 게 분명한 택시의 도발로 심인 씨는 하마터면 엉거주춤 쥐고 있던 손잡이를 놓치고 운전석 뒤편에 부딪힐 뻔했다.
“씨이팔! 저기 주글라꼬 환장했나? 차도 코딱지만 항기!”
기사의 표정에 ‘그래, 전쟁이다!’라는 선전포고성 낯빛이 보이더니, 갑자기 버스의 속력이 확 높아졌다. 이번에는 심인 씨의 몸은 아까와 반대로 버스 뒤로 쏠렸다. 버스카드 리더기가 달린 기둥을 단단히 잡고 있지 않았다면 넘어지다 못해 몇 바퀴는 굴렀을 것 같았다. 지극히 이성적인 심인 씨의 입에서도 격앙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아니, 운전을 어떻게 하는 겁니까?”
그 순간 전방과 좌우 백미러를 주시하던 기사가 룸미러를 통해 심인 씨를 노려보았다. 잔뜩 짜증이 베어서 언제라도 퍼부어 댈 수 있는 표정이었다. 심인 씨도 굴하지 않고 맞섰다. 하지만, 치오른 짜증만큼 강인하지 못한 심인 씨의 시선 속에 팔을 걷어붙인 기사의 검고 탄탄한 팔뚝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모습에, 은근히 톤을 깔아 결론을 내듯 내뱉던 ‘좋은 게 좋은 기라요!’라는 기사의 목소리가 겹쳤다. 그때 기사가 애써 화를 삭이며 한마디 했다.
“내가 이라고 싶어가 이라능교? 앞에 가는 차 저거 안보이요? 저따우로 차몰고 댕기는데 내보고 모 우야란 말잉교?”
심인 씨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서둘러 가방을 놓아둔 자리를 향해 돌아섰다. 돌아선 자기 뒤통수를 향해 기사가 계속해서 뚫어져라 쳐다보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버스에 탄 몇 안 되는 사람들의 시선 역시 자신에게 집중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심인 씨가 의자에 앉은 것은 분명히 기사 본연의 임무인 운전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려는 배려였다고, 심인 씨는 생각했다. 기사의 우악스러운 말투와 탄탄한 팔뚝은 심인 씨가 자리로 돌아와 앉은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심인 씨 자신이 자꾸만 기사에게 말을 걸었고, 그래서 충분히 볼 수 있는 앞차의 급정거를 발견하는 것도 백분의 몇 초 내지는 십분의 몇 초 정도 늦었을 것이고, 그래서 버스를 타고 있는 모든 승객을 위험에 빠뜨린 것일 수도 있다 싶었던 것이라고······. 그것은 심인 씨 정도가 되어야 할 수 있는 현명한 선택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심인 씨에게는 또 하나 뿌듯함이 여전히 남아있었는데, 그것은 당장 마주친 기사 한 명을 설득할 수 없었더라도, 승차 거부라는 잘못을 저지른 기사에게 응당한 처분을 줄 수 있는 교통불편신고 엽서는 그대로 가슴 앞섶에 꽂은 채였기 때문이었다.
“야이 개애쌔꺄! 운전 똑바로 안 하나? 그 카다 박히마 니만 죽능기다. 함 죽어볼래?”
두 번의 시끄러운 버스 경적과 함께 기사가 버스 앞문을 열고 고성을 뱉어냈다.
“누가 할 소리! 눈 제대로 뜨고 운전해. 버스 기사라는 새끼가 뒤에서 차가 오는지도 안 보고 몰아?”
버스 오른쪽에 바짝 붙은 택시도 운전석 창문을 내리고 격앙된 목소리로 욕지기가 쏟아냈다.
심인 씨는 갈등했다. 손목시계의 분침도 약속 시간에 거의 다가가고 있었다. 지난 한 달간의 부진한 판매실적을 만회할 수도 있는 중요한 약속이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아니라 해도, 한 명의 시민이자, 승객의 자격으로 버스 기사에게 한마디 권고를 해야 할 이유와 자격이 분명하다고 심인 씨는 생각했다.
자자, 그만하고 갑시다!
심인 씨가 막 그 이야기를 하려던 순간, 기사가 승차문을 닫고 버스를 출발시켰다. 기사는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여전히 숨소리가 거칠었고, 실랑이 때문에 늦어진 배차시간을 맞추려는 듯 버스 운행도 꽤나 거칠었다. 심인 씨는 말을 꺼내려다 말았기 때문에 룸미러 너머로 기사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심인 씨의 시선이 기사와 마주쳤다.
“와요? 아직도 무신 할 말 인능교? 할 말 이쓰마 하소. 오늘 더럽게 꼬이는데 얘기나 함 들어 보입씨다.”
잠시 망설이다가 심인 씨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뭐 상황은 알겠지만, 길 가운데 차 세워두고 그럴 필요까진 없지 않습니까? 그런다고 잘잘못 가려지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와요? 아까 승차 거부 어쩌고 카디만 내도 싱고할라 카능교?”
심인 씨에게 돌아오는 기사의 대답이 사뭇 전투적이었다. 계속 이야기해 봐야 좋게 끝날 것 같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이대로 이야기를 그만두면 제대로 된 해결이라 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택시에 다 못 풀어낸 적대감을 애꿎은 자신이 감당하고 싶지 않았던 심인 씨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심인 씨는 자꾸만 시계를 쳐다보았다. 자신의 약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렇게라도 알리고 싶었다. 안 그래도 거칠게 달리는 버스에 채근을 보탤 수는 없었다.
“하, 참! 갑자기 꿀 무뿟나? 와 대답이 없노?”
기사는 혼잣말로 한마디 던지고는,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오른발에 한껏 힘을 주었다. 순간 심인 씨와 승객들의 몸이 뒤로 젖혀졌다. 기사는 그와 함께 가슴께에서 한 개비의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한 손으로 운전대를 고쳐 잡고서 곧 라이터를 꺼내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 모금, 하얀 연기가 기사의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반쯤은 기사가 미리 열어놓은 왼쪽의 작은 창문 틈으로 빠져나가고, 다른 반쯤은 에어컨이 켜져 있는 시내버스의 실내에 남아 버스 천정을 향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버스 앞 차창 위로 붉은색으로 ‘차내 금연’이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기사 양반, 차 안에서 금연이지 않아요?”
심인 씨의 건너편에 앉아있던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심인 씨가 굳이 금연이라는 글씨를 가리키며 덧붙일 사이도 없이 기사는 거칠게 창문을 더 열어젖히더니 신경질적으로 몇 모금 빨던 담배를 길 위에 던져버렸다. 에이 참! 짜증스러운 한마디를 보태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심인 씨는 생각했다. 이 기사도 앞의 버스 기사와 별다른 게 없구나. 어쩌면 그 기사가 한 것은 단순한 승차 거부였지만, 이 사람은 더 불친절하고 불법적인 게 아닐까? 약속 시간만 아니었으면, 이 기사를 붙잡고 한 시간도 좋고 두 시간도 좋으니 논쟁이든 훈계든 해 보겠는데······.
심인 씨는 와이셔츠 앞주머니에서 다시 수첩과 볼펜을 꺼내 들고서 버스의 오른쪽 앞에 붙어있는 차량번호를 적기 시작했다. 대구···· 70·· 가···· 3849······. 기사가 그 모습을 보면 또 분명 시비조로 나올 것이었으므로, 심인 씨 한껏 등을 웅숭그린 채로 수첩에다 받아 적었다. 이런 운전문화도 분명히 개선되어야 해, 하고 심인 씨는 지극히 정의로운 생각을 하고 있었다.
(1999)
'단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 밖에서 (0) | 2023.07.09 |
---|---|
베이더와 나의 눈길 (0) | 2023.06.30 |
명견 (0) | 2023.06.21 |
종소리 (0) | 2023.06.18 |
Sink Condition (0) | 2023.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