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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오동꽃 지면

by FeelSeoGood 2023. 2. 15.

 

  이팝나무 가로수에 하얀 꽃이 만개했다. 겨울이 너무 길다 싶던 게 어제 같은데 콧잔등에는 벌써 땀이 맺혔다. 그래도 외근이 일찍 끝난 덕에 바깥 풍경을 향한 은주의 시선에 오랜만의 여유가 묻어 있었다.

  신호를 따라 무심코 좌회전할 때, 보라색 꽃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큰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자주 오가는 길이었지만 기억에 없는 오동나무. 전부터 거기 있기는 했던 건가 하는 의문과 오동이란 원래 모양이 저리 제멋대로인가 하는 생각이 은주의 머릿속에 잇달았다.

  웬만한 크기의 나무라면 저마다 차이는 있어도 어느 정도의 품격 같은 걸 갖추게 마련 아니던가? 흐드러지게 꽃을 달고 있는데도 외롭고 측은해 보이는 나무라니. 처음도 아닌 오동꽃이 새롭고 낯설었다. 때 이른 더위에 열어 둔 차창을 넘는 황사처럼 뜻 모를 안쓰러움이 은주의 가슴께 어딘가에 슬그머니 쌓였다.

  꽃은 슬퍼 보이는 게 당연하다고, 남편은 그랬었다. 7번 국도에서 이어져 태백산맥을 넘는 구불구불한 지방도 어디쯤이었다. 무슨 얘기의 끝이었는지는 몰라도, 남편은 굽이진 길을 따라 운전대를 감았다 풀기를 반복하면서, 누구나 안다는 듯 가볍게 말했다.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들이나 더 이상 변화랄 것 없는 삶만 남은 노인들 눈에나 꽃이 그저 예쁘기만 하지 않겠냐고. 슬프니까 아름다운 거라고, 무엇이든 슬픔 한 자락 배어있지 않은 것을 정녕 아름답다 할 수 있겠냐고.

  그때도 은주는 경사 급한 어느 구비에 드문드문 서 있는 네댓 그루 오동을 보고 있었다. 시집보낼 장롱을 짜겠다고 딸 얻은 아비가 일부러 그 나무를 심었다는 옛 얘기를 떠올렸고, 자신도 어려서 한때나마 그렇게 귀한 존재이긴 했을까 하는 원망 짙은 체념이 머릿속에서 이어지던 참이었다.

  “아름다워서 슬픈 거야. 사랑처럼, 삶처럼. 사랑이나 사람이나 가장 아름다운 그 잠깐, 그 절정이 계속되지 않을 걸 아니까. 꽃도 그래. 잠깐 피고 나면 빠르든 느리든 조락뿐이니, 미리 아리고 서러운 거지.”

  막 피어 반짝이던 시절은 벌써 지났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조락까지는 아직도 한참 남았던 은주는 무심결에 남편의 말에 공감했었다. 남편은 크게 휘어진 산길을 천천히 오르며, 초록이 본격적으로 점령하기 시작하는 더 아래 골짜기 어디쯤을 간간이 바라보았었다.

  차창에 비껴든 햇살이 성가신 정도였으니 다섯 시는 되었다. 은주는 오동나무와 멀지 않은 이면도로에 차를 세우고 왔던 길을 되짚어 내려갔다.

  네거리를 건너 사람들로 붐비는 시장 입구를 지나서야 나무를 다시 볼 수 있었다. 기괴하달 만큼 아무렇게나 뻗어있는 오동의 가지와 그 끝마다 무더기로 달린 보라색 꽃들. 비끼는 오후 햇살을 받으며 단단히 버티고 선 오동은 일견 장엄했다. 버들이나 미루나무가 그러듯 잎을 떨어 만드는 반짝임 같은 것이라도 있었으면 좀 정겨웠을까? 낯선 종교 조형물 앞에 선 것처럼 은주는 이유도 없이 숙연해졌다. 아직은 낮, 밝음 속의 무거움이었다.

  은주는 그 아래에서 고개를 젖히고 가만히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어느 순간, 둘 사이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며 나무가 은주에게 다가왔다. 팔짱을 끼었는지, 가지런히 손을 모았는지, 감탄으로 입을 벌리고 있었는지, 다짐하듯 앙다물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 목소리! 은주의 귀에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시장을 가득 채운 소음이 일순 소거되고 다른 모든 풍경은 초점을 잃어 시야에 그 나무 하나만 가득 들었을 때, 메아리치듯 울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오동으로부터인지, 은주의 안 어딘가에서 터져 나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은주는, 분명히, 들었다.

  놓아요. 그냥 그대로… 둬요.

 

 

  바람에 버티고 선 나무

  가지가 흔들린다.

  가지 끝 무리 진 꽃 함께 따라 어지럽다.

  나부끼는 꽃 한참을 보았더니 이제야

  알겠다, 가지를 흔드는 꽃!

  나무가 몸을 떨고

  바람이 인다.

 

 

  두세 달에 한 번꼴로 친정에서 전화가 왔다. 매번 새롭지도 않은 레퍼토리, 다를 것 없는 남자의 한숨. 그때마다 은주는, 남자가 억지 눈물 시늉 따위 안 하는 것이나마 다행이라 여겼다. 은주는, 건성이긴 해도 적절한 순간에 네, 네 하며 고분고분 듣고만 있는 착한 딸 역할 같은 건 언제라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저쪽도 눈치는 있어서, 과장일 게 뻔한 엄마에 대한 염려나 두 사람 고단한 생활에 대한 낡아빠진 사설만 늘어놓을 뿐 가식적인 연기는 보태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은주는 주위에 누가 있건 말건 그간에 쌓아둔 속엣 것을 다 쏟아 내며 악다구니를 썼을지도 모른다. 남자 역시, 은주 안에 숨은 휴화산을 모르지 않았고, 폭발이라도 하게 되면 얻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은주와 남자 사이에는 증오, 경멸, 긴장, 짜증 같은, 관계를 지속하기 어려운 여러 조건이 서로를 겨눈 권총처럼 버티고 있었지만, 세월의 더께만큼의 신사협정 같은 게 있어서 두 사람 다 방아쇠를 당기는 것만은 용케 피해 가는 형국이었다. 은주는 은주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서로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확실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인데, 남자에게는 돈, 은주에게는 엄마였다.

  엄마와 살림을 합치면서 법으로도 부부의 연을 신고했으니 은주와는 분명 부녀간이었다. 엄마와 남자 사이에 얼마만큼의 애정과 책임감이 있느냐는 은주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 ‘얼마나’의 잣대를 들이대 온전히 당당할 부부 세상에 많지 않다는 정도는 당시 열일곱의 은주도 알고 있었다. 각자 두 번째와 세 번째인 인연의 횟수만큼 사연이 있을 것이었고, 그중 한쪽은 은주도 함께 보고 겪었다. 은주는 단지, 부성애는 진작 포기한 자신에게 단 하나의 애틋함인 엄마가, 살면서 일말의 위안이나마 얻을 여지가 생겼으면 했다. 엄마가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세상 든든한 남편은 못 되어도, 큰 삐걱댐 없이 엄마가 기댈만한 언덕 정도는 되기를. 그것이 독립한 이후로 거듭되는 남자의 전화에 은주가 시의적절한 액수의 응답을 꼬박꼬박 보낸 한 가지 이유였다.

  또 하나는 전적으로 은주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벅차다면 벅차고 아쉽다면 아쉬운 그 돈은 은주가 일군 가정을 지키는 대가였다. 언제고 은주를 흔들 수 있는 지난 기억을 저만치에 떨어뜨려 놓기 위한 경비. 납부 의무를 진 공과금 같은 것. 엄마를 아예 모른 척하고 살 수는 없지만, 엄마를 매개로 불쑥불쑥 고개를 드는 지난 일들은 외면하고 싶은 은주의 보험 같은 것.

  은주는, 엄마의 보금자리를, 자신의 옛날을 그렇게라도 멀찍이 봉인해 두고 싶었다. 그래야 지금의 자신, 남편과 자신, 아이와 자신, 이제야 조금 편안해진 자신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억 깊은 곳에 꾹꾹 눌러둔 무엇 하나라도 되살려낼 어떤 실마리도 빠져나오지 않도록. 그래야만 적어도 이쪽은, 은주가 바라는 모습 그대로의 가족일 수 있었다. 그래야만 은주는, 자신이 그려온 아내가, 엄마가 될 수 있었다. 남편과 아이는 그런 갈등 속에 들어올 필요도 없고 들어오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디까지나 은주의 문제였고 은주 자신도 할 수만 있다면 벗어나고 싶은 기억이었으니까.

  남편은, 평범했다. 은주는 그 평범함에 끌렸다. 아니, 끌렸다기보다 안심했다.

  은주와 같은 구청에서 근무하던 남편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도드라져 보이는 법이 없었다. 노력으로 만든 결과가 아니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가정에서 딱 그만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 맺힌 것도 허황한 꿈 같은 것도 없는 사람. 삶이나 가족에 관한 그의 지향점 역시 그 틀을 벗어나지 않음을 꼼꼼히 확인하고 나서야 은주는 마음을 정했다.

  사랑하는 사람 둘이 만나 아이 하나둘 낳고 주위에 할 도리 하면서 소소한 행복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 누구나 간단히 꿈꾸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 그것만큼 은주에게 간절한 것은 없었다. 홀어미, 그러다 낯선 새 아비. 늘 감정적인 판단은 피하려 했지만 언제나 정보다 애증이 앞섰다. 더 나빠지지만 않았으면 하는 불안이 아끼며 지키고 싶은 애틋함을 앞서는 날들이었다. 일부러 숨기지는 않았어도 드러나서 알려지는 건 싫은 것들투성이였다. 애써 담담하려고 해도 끝내 아무렇지 않을 수 없었고 잘못한 게 없는데도 뭐라도 들킬 것처럼 늘 신경이 곤두서있던 시간. 표정, 말투, 행동, 옷차림, 뭐든지 무던히도 애를 써야 보통이 될 수 있었던 일상의 연속. 자격지심인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은주는 지극히 보통의 가정을 꿈꿨다. 그저 어서 평범해지고 싶어서. 가족은, 애쓰지 않아도 가족이어야 했다. 어떤 식으로든 자연스러워지기 위한 노력을 보태야 한다면 진정한 가족일 수 없었다. 보통의 사람들 사이에 보통의 모습으로 섞여 들고 싶은 마음. 은주가 남편을 사랑한 이유는 그것이었다. 은주는 한 번도 자신의 사랑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자기만큼 사랑에 확실한 이유를 가진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으니까.

  결혼생활은 기대 이상이었다. 남들처럼 유치했고, 남들처럼 위하고 아꼈으며, 남들처럼 싸우고 토라졌다. 남들과 다를 게 없다고, 무엇에든 미리 주눅들 필요가 없다는 자신감이 차곡차곡 생겨났다. 은주는 반성했다. 언제라도 이런 것들을 누릴 수 있었는데 그저 자신의 소심함이 가로막고 있었다고.

  각자 가진 돈에 대출을 보탠 낡고 좁은 전세 아파트가 무엇도 부러운 것 없는 낙원이었다. 심지어 남들과 똑같은 예식공장에서 삼십 분 만에 뚝딱 찍어져 나왔어도, 자신들은 웰메이드라 다른 부부들과 다르다고 자부했다. 남들만큼만, 하고 바라던 게 바로 어제 같은데, 그 남들을 은근히 깔볼 수 있을 만큼 은주는 당당해졌다. 어쩌면 들뜸 혹은 자만. 무엇이 되었든 어제는 없었던 희망이 생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은주는 바지런히 움직였다. 다른 사람 손 빌리지 않고도 집안은 언제나 깔끔했다. 화려한 치장 없이, 본래의 기능에 집중한 단순한 것들로 집을 꾸몄다. 생활처럼 소박했지만 은주에게는 눈이 부셨다. 셔츠나 바지는 늘 잘 다려놓았고, 화장실, 개수대, 어디도 지저분한 채로 두지 않았다. 남편과 분담하긴 했어도 맞벌이 주부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위에서는 유난 떤다고, 그냥 대충 해 놓고 살아도 된다고 했지만, 은주는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의 가정을 대충이라는 말로 얼버무려 방치하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친정으로부터의 크고 작은 일들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렇게 튼튼한 둥지를 만든 덕에 어디까지나 울타리 바깥의 일로 치부할 수 있었다. 은주는 한결 가벼워졌다. 거의 벗어났다고, 완전한 탈출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이듬해 건우를 낳았다. 친정의 바라지는 은주가 극구 마다했다. 어느 한 곳 성한 데가 없는 엄마라도 혼자인 것보다야 분명 나았겠지만, 엄마와 함께 틈입해 올 것들을 감내하고 싶지 않았다. 집이 좁아 마땅히 계실 곳도 없다고, 손주 때문에 엄마가 괜한 고생 할 필요 없다고 에둘렀다. 그게 왜 괜한 고생이냐며 섭섭함 가득한 타박이 돌아왔지만, 은주는 물러서지 않았다.

  힘들지 않았다. 육아휴직 1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몰랐다. 바빠서, 행복해서. 건우는 잘 자고 잘 먹고 잘 웃었다. 여느 아이들처럼 감기도, 수족구도 했고, 예방주사를 맞으며 세상 설움 다 가진 듯 울기도 했다. 돌 즈음에 걸었고, 곧 이런저런 단어들로 어눌한 문장을 만들어 냈다. 아이가 나고 자라는 커다란 신비에 매일, 매 순간 감동했다. 그 또래 아이들 사이에 차이가 있어야 얼마나 있을까마는, 놀이터나 문화센터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특별히 다를 게 없다는 것에 또 안심했다.

 

 

  “보이소, 구루마 쪼매 지나 가입시데이.”

  은주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목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봤다. 신문지와 골판지 박스를 가득 실은 손수레가 번잡한 길 가운데 선 은주 옆에 멈춰 있었다. 작은 수레지만 손잡이를 쥐고 선 노파에게는 버거워 보였다. 굽은 등, 거친 손, 한 눈에도 녹록지 않은 신산함을 담은 얼굴. 길을 열어달라는 모습에도 일말의 비굴함이 묻어 있었다.

  은주는 그 모습에 엄마가 겹쳐 보였다. 겉보기는 더 나을지 몰라도, 드나드는 이도 몇 없는 시골 장터 귀퉁이에 드럼통 테이블 세 개 놓고 시락국밥을 팔던 엄마라고 다를 게 뭐가 있을까. 이제는 그마저 없앴으니, 머지않은 엄마 모습 같았다.

  길을 내주려고 서둘러 한발 물러서던 은주의 발에 무언가 걸렸다. 이내 어린애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고, 급히 발을 빼다가 은주는 균형을 잃었다. 넘어지면서 뭐라도 붙잡으려 반사적으로 휘저은 손길에 수레에 쌓인 폐지가 쏟아져 내렸다. 순식간이었다.

  은주는 아이를 먼저 살폈다. 엄마 손을 꼭 잡고 있던 아이는 옷을 조금 버렸을 뿐 다행히 다친 데는 없어 보였다. 연신 사과했지만, 아이 엄마의 날 선 표정과 목소리는 누그러지지 않았다. 건우만 한, 꽃처럼 어여쁜 여자아이였다. 울고 있어도 그렇게 보였으니, 그 엄마에게는 또 얼마나 귀하고 예쁜 딸일까?

  여전히 울고 있는 아이를 엄마가 달래며 돌아선 뒤에야, 은주는 배 속의 아이가 염려되었다. 넘어지며 짚은 손목이 욱신거리고 무릎에 생채기가 났지만, 그뿐이라면 스타킹 올 사이로 번지는 핏자국마저도 다행이다 싶었다. 품은 생명을 지킬 수만 있다면, 무릎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보소, 개안은교?”

  널브러진 폐지 더미는 두고, 노파는 은주부터 챙겨 물었다. 괜찮다고, 미안하다고, 쏟아진 폐지를 주섬주섬 모으려는데 노파가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홀몸 아이재? 힘쓰지 말고 다친 데나 챙기소. 마이 안 놀랐드나?”

  갈라 터져 굳은 손이 진심으로 은주의 팔을 붙잡고 말렸다. 아직 쉽게 알아볼 만큼은 아니었는데도 노파가 주는 투박한 배려에 은주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손님들이 비우고 간 국그릇 밥그릇을 치우려다 너는 그런 것 하지 말라는 엄마 말에 다시 내려놓던 예전 언젠가처럼, 은주는 쥐고 있던 골판지 뭉치를 순순히 내주었다. 대신, 시원한 음료를 한 병 사다가 노파의 손에 쥐어 드렸다. 역시나 마다하는 손에 이번에는 은주가 힘을 실었다. 고맙다는, 잘 먹겠다는 말에 다시, 언젠가 그렇게 말해주던 엄마가 겹쳤다. 포도 한 알을 엄마 입에 넣어 주던 언젠가, 손톱마다 자줏빛 물이 들도록 제 입에 잔뜩 넣고 난 다음이었지만, ‘잘 먹을게’ 하던 엄마의 말에 하늘을 날 듯 기쁘던 때가 있었다. 이제 전화 너머 엄마의 잘 받았다, 고맙다는 말은 은주를 그저 헛헛하게만 했다.

  고맙다는 말과 놓으라는 말이 환청처럼 은주의 머릿속에서 떠다녔다. 하지만 무얼 더 놓으라고? 지금껏 내내 버리고 벗어나려고만 했는데. 어디로부터의 소리인지 알 수 없으면서도, 은주는 그 말을 되뇌며 한동안 서 있었다. 너무 커서 질서도 없이 어지럽게 보이는 오동나무, 수없이 그 길을 지나는 동안 한 번도 은주의 눈에 띄지 않았던 나무 앞이었다.

 

 

  “그래도 인감 안 갖다 준 기 다행이라 카드라. 그랬으믄 정말 클 났을 끼라 카데.”

  엄마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위로랍시고 해준 말을 변명처럼 은주에게 전했다.

  “니 볼 맨목이 읍따. 내가 우야든동 니 모리게 할라캤는데, 쪼매 모자리가… 당장은 갱찰서로 법원으로 이래저래 쫓아댕기다 보이 어디 품일을 댕길 행핀도 아이고….”

  목소리만 들어도 눈앞에 보는 듯 주눅이 든 엄마. 그래서 더 미운 엄마. 그런 은주의 마음을 아는 듯 말을 할수록 엄마의 목소리는 작아져만 갔다. 전화를 끊고 은주는 피가 나도록 손가락을 뜯었다.

  남자는 자기 명의로 개통한 핸드폰 세 개를 업자에게 넘겼다. 그러고 받은 얼마간의 돈이 노름판에서 사라지는 데는 이틀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한 달쯤 지나 형사가 집으로 찾아왔다. 그 핸드폰이 보이스피싱에 쓰였고, 피해액이 몇억에 이른다, 주범은 아니라도 자진해서 대포폰을 만들어 줬으니 처벌을 피할 수는 없다고.

  사기 방조로 입건된 남자를 구하려고, 엄마는 급하게 식당을 처분해서 변호사비와 합의금을 만들었다. 직접 돈 얘기를 꺼내는 엄마를 몇 번이나 추궁하고서야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지 않고서야 그럴 엄마가 아니었다. 전부터 그건 남자의 역할이었으니까.

  손바닥만 한 가게였어도 전 재산을 통째로 무책임한 남편 밑에 밀어 넣었으니 이제 엄마에게는 남은 게 없었다. 당신과 딸 두 식구의 호구지책이었다가 두 늙은이의 밥줄이 되었던 엄마의 평생 일터. 고단한 엄마의 삶에서 마지막 보루가 사라지고 나니 벗어났다고 믿었던 불안이 순식간에 은주의 발목까지 차올랐다. 그래서 이제 어쩌려고? 원망인지 걱정인지 모를 혼잣말이 왈칵 입에서 튀어나왔을 때, 은주는 외면했던 과거에 가슴까지 잠겼다.

  그럴수록 은주는 마음을 다잡았다. 어디든 실수가 없도록 업무에 집중했다. 어떤 이유로든 자신의 생활에 손톱만큼의 흠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일군 것들은 스스로 튼튼히 지켜내는 수밖에 없다고 자신을 다그쳤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잠시의 짬도 없이 집안일에 매달렸다. 그날그날 빨래를 했고 김치와 젓갈 말고는 매일 다른 반찬으로 저녁을 차렸다. 식기며 개수대, 세면대와 샤워부스에 물 자국 하나 남기지 않았다. 복잡한 마음을 떨치듯 온 힘을 다해 빨래를 털어 널었다. 건우가 잠든 늦은 밤에는 청소기 대신 빗자루로 쓸고 손으로 걸레질했다. 휴일에라도 좀 쉬라고 남편이 말렸지만, 주말이면 침대보와 이불을 하나씩 빨았다. 전보다 훨씬 깔끔하고 완벽했다. 침대에 눕자마자 꿈도 없는 잠에 빠졌다. 그런데도 아침은 개운하지 않았다. 딱히 어디가 아픈 것도 아닌데 몸이 붓고 머리가 무거웠다.

  두 달 동안 4kg이 빠졌다. 체중은 주는데 몸은 더 무겁고 굼떠졌다. 쉽게 지쳤고, 가끔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싫었다. 직장 업무는 관성대로 해냈지만, 집에 오자마자 침대에 쓰러졌다. 그렇다고 쉽게 잠이 들지도 못해서, 눈을 감고도 한참을 깨어 있었다. 숨 쉬는 시체 같았다. 집안은 금세 엉망으로, 포기한 게 아닌데도 포기한 꼴이 되어 버렸다. 일주일쯤 그러다 다시 힘을 내어 생활을 수습했으나 며칠 가지 못했다. 이상하게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혹시나 싶어 테스트를 해 보고서야 임신인 줄 알았다. 생리를 거른 건 세 번인가, 네 번인가? 원래도 규칙적이지 않았던 탓에 그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의사는 10주가 되었다고 했다.

  산부인과 주차장에서 한참을 울었다. 아이도 뱃속에서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은주만큼, 똑같이 버텨내고 있었을 것이다. 은주는 이유라도 알았지만 아이는 까닭도 모른 채였다. 막 생명의 움을 틔우자마자 따뜻한 축복과 사랑 대신 불안과 짜증을 엄마에게서 받은 아이. 자기를 봐 달라고, 거기 있다고, 계속해서 불렀을 텐데….

  “딸이면 좋겠다! 맞아, 분명히 딸일 거야, 당신 꼭 닮은!”

  남편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은주가 숨기려 애쓴 서글픔과 자책을 한순간에 날려버릴 만큼. 처가에 무슨 일이 있는지, 은주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랐던 사람처럼. 그래서 은주는, 아이가 자기를 안 닮았으면 좋겠다고 말하지 못했다.

  “힘들어지겠지만, 우린 잘 해낼 거야. 당장 당신 기운부터 차려야 할 텐데. 오늘은 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건우를 낳고 5년 만이었다. 조바심을 내지는 않았어도 막연히 기대는 하고 있었다. 동기간이 없어 외로웠던 은주는 늘 건우의 동생을 기다려왔었다. 하지만 그게 왜 지금일까? 더 좋은 날 좋은 시간이었어야 할 텐데 싶었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만큼 갈 곳 모를 원망이 번졌다.

  “에고, 암마또 마래이. 이 사달을 내노코도 정신 못 차릴 수는 없는 기라, 지도 사람이믄. 일 업쓰가 노는 날은 있으도 일만 생기믄 싫다 안 카고 나간다 카이.”

  보이스피싱을 엄벌한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집행유예를 받았다면서, 엄마는 눈치껏 덧붙였다. 초범이고, 반성하고 있는 바의 정상참작이라고. 은주도 이해할 수 없는 ‘정상’이 생판 남인 판사에게는 ‘참작’되었던 것이다. 은주는 힐난과 연민이 뒤섞인 엄마의 말을 들으며 남자에 대한 엄마의 본심은 무얼까 생각했다.

  엄마는 인근 식당에 나간다고 했다. 하루 몇 시간인지, 힘에 부치지는 않은지, 어디에 있는 무슨 식당인지도, 은주는 물어보지 않았다. 내 식당을 할 때도 새벽에 장 보고 밤이 늦어 마치긴 했지만, 내 요량에 맞춰 하던 일과 부리는 대로 따라야 하는 남의 집 일이 같을 수 없다는 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럭저럭 둘이 살아는 진대이. 니는 인자 여어 신경 쓰지 말고, 남서방하고 건우 생각만 하그라. 알았재, 으이?”

  끝내, 둘째 소식은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좀처럼 기운은 나지 않았다.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은 더 힘들기만 했다. 넋을 놓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고, 무엇에도 현실감이 없었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손에 잡히는 건 없었다. 그저 정말 붙잡고 원망을 쏟아낼 수 있는, 만만한 누구 하나 있었으면 싶었다.

 

 

  노파가 힘겹게 수레를 끌며 떠난 뒤에도 은주는 한동안 그 앞을 떠나지 못했다. 간간이 불어오는 탁하고 끈끈한 바람에 오동은 여전히 보라색 꽃을 흔들며 서 있었다. 기다리면, 다시 한번 말해 줄 수도 있을까? 정말 저 나무가 말을 걸었던 걸까?

  은주는 잠시 더 나무를 바라보다가, 차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친정이 그렇게 일단락된 후에도 지금까지 은주가 만들어 지켜왔던 질서는 조금씩 어그러지고 톱니가 빠져갔다. 배 속의 아이를 살피는 염려만큼이나 남편에게 쓰이는 마음이 은주를 버겁게 했다. 남편은 딱히 뭐라 한 적 없었다. 오히려 알아서 잘해주고 있는 편인데도 그럴수록 은주는 자꾸만 주눅이 들었다. 자기만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세상에서 제일 나를 잘 감싸줄 내 가족인데 왜 그러나 하고 마음을 다잡았다가도 남편에게,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불쑥불쑥 생겨나는 걸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도 맘먹은 대로 움직여지지 않아서, 그 미안함은 정작 겉으로는 짜증이 되어 나왔다.

  남편의 말이 맞기는 했다. 은주의 잘못이 아니니 그만하라고. 하지만 선뜻 와닿지는 않는 말. 가슴이 아니라 머리에서 출발한 말. 결코 남편의 진심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결국 멀찍이서 전하는 안타까운 시선과 형식적인 응원인 것만 같았다. 똑같이 겪어보지 않고서는 누구도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은주는 남편의 말이 자신을 향한 비난처럼 들렸다.

  건우의 행동이 달라진 것도 그즈음이었다. 혼자서 곧잘 하던 일들도 못 한다며 아기 짓을 했다. 원래 그럴 나이가 되었을 수도, 엄마의 관심을 더 바라서일 수도 있었다. 토닥이고 달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은주는 짜증을 냈다. 그러면 건우는 은주의 눈치를 봐 가며 더 떼를 쓰고 울었다. 그때마다 남편이 달려와서 건우를 안아 달랬다.

  “그러지 마, 여보! 건우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줄 알아야지….”

  은주는 건우를 먼저 감싸는 남편이 고마우면서도 못마땅했다.

  아빠를 믿어서인지, 건우의 고집도 점점 세졌다. 며칠 전 결국, 은주에게서 건우를 떼내어 안고 돌아서는 남편을 향해 은주가 소리쳤다.

  “언제까지 그럴 건데? 응석을 계속 받아줄 순 없어!”

  은주는 거실에서 얼굴을 무릎에 묻고 앉아 소리 없이 울었다. 건우를 달래 재우고 나온 남편이 선 채로 은주에게 말했다.

  “누구도 당신이 선택하지 않은 일에 대해 당신을 탓하지 못해. 부모나 자라난 환경 같은 거. 당신 선택이 아니잖아. 좋다, 나쁘다, 부럽다, 나는 아니라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할 순 있지만 그렇다고 거기 당신의 잘잘못이 있는 건 아니잖아. 아무도 그런 걸로 당신에게 뭐라 하지 않아. 그런데 당신만 당신 자신에게 그러고 있는 것 같아. 당신도 알지?”

  은주는 여전히 얼굴을 묻은 채 들었다.

  “여보 나는, 여전히 거기에 붙잡혀 있는 당신을 보는 게 힘들어. 당신을 사랑하고 아끼니까. 이제 당신이 그런 거에서 좀 나왔으면 좋겠어. 당신이 바꿀 수 없는 거잖아. 그런 걸로 아파하거나 부끄러워하지도, 과장되게 괜찮은 척도 마.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 좋든 싫든 그냥, 거기, 두라고. 그건 당신 탓이 아니야.”

  은주가 애써 고개를 들자 남편은 은주의 손을 잡았다.

  “당신에게 지금 소중한 건 우리 셋, 아니, 이제 우리 넷이 만들어갈 시간이야.”

  사이사이 감정이 섞이고 간간이 멈추기도 했지만, 남편은 시종 차분했다. 은주가 그토록 바라던, 평범한 사람에 꼭 맞는 답. 오래 담아둔 얘기라는 걸 은주는 알았다. 하지만 당장은, 은주의 귓전에 맴도는 말은 은주의 탓이 아니라는 말이 아니었다. 당신도 알지? 너도 알잖아….

  현장에서 바로 퇴근하겠다고 구청에 연락했다. 남편에게 전화해 어린이집에서 건우를 데려와 달라고도 했다. 해는 아직도 한참 남은 오후, 집으로 차를 몰았다. 언제쯤일까?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러느냐는 말보다 당신 탓이 아니라는 말을 더 선명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는.

 

 

  은주는 현관에 들어서며 차 키를 열쇠 그릇에 넣고 슬리퍼로 갈아신었다.

  벗은 구두를 넣으려고 신발장을 열었다가 가지런히 늘어선 신발들 사이에서 건우가 작년에 신던 초록색 샌들이 눈에 띄었다. 건우가 무척 애착을 보이는 신발이었다. 좀 이르긴 하지만 신어도 되겠다 싶어 꺼내 들었다. 한 해 더 신길 수 있을까? 가늠이 쉽지 않았다. 애들은 해마다 다르니, 신겨 봐야 알 것 같았다. 건우가 돌아오면 바로 알아볼 수 있게 현관에 내려놓았다. 아이 신발 하나만 가지런히 놓인 현관. 왠지 사람 사는 집 같지 않아서 은주는 샌들을 다시 집어 들어 툭 던졌다. 아이가 뛰어 들어오며 막 벗어던진 것처럼.

  거실 바닥에 건우의 책 몇 권, 소파 위에는 남편의 셔츠와 건우의 잠옷. 개수대에는 빈 우유 팩과 컵들, 수저 몇 벌. 서둘러 출근한 흔적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잘 정돈되어 있었다.

  외투만 벗고는 앞치마를 입었다. 책꽂이와 안방과 아이 방 옷장과 세탁기를 일사천리로 거쳐 식기세척기에서 아침에 넣어 세척이 끝난 그릇들을 꺼내 선반에 넣었다. 개수대에서 우유 팩을 헹궈 가위로 자르면서 은주는 잠시, 저녁은 어쩌나 고민했다. 아침에 먹다 남은 찌개가 있긴 하지만 새로 해 먹이고 싶었다. 그렇다고 품이 많이 드는 건 하고 싶지 않았다. 맘먹고 근사한 저녁을 차리기에는 몸이 무거웠다. 일단 밥솥에 쌀을 씻어 안치면서 안에 든 품목을 적어둔 냉장고 위의 메모지를 훑어봤다. 가지, 당근, 파프리카, 돼지 전지와 쇠고기 국거리, 어묵… 그래, 어묵탕. 은주는 어묵 봉지를 냉장고에서 꺼내놓고 냄비에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렸다. 옷을 갈아입으려다 말고 청소기를 잡았다. 거실에서 청소기를 몇 번 밀고 당기다 현기증에 잠시 멈췄다. 임신한 이후로 한 번씩 그랬다. 가만히 숨을 고르니 괜찮아졌다가 곧 다시 어지러웠다. 은주는 청소기를 그대로 내려놓고 안방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은주는 눈을 감은 채 생각했다. 그래 잠깐만 쉬자. 전처럼, 잠시 쉬면 좋아지겠지. 혹시 잠이 들어도 남편과 건우가 곧 와서 깨워줄 테니. 그때쯤이면 밥도 다 되었을 거고….

  분명 잠이 든 건 아닌데, 은주의 머릿속에서 꿈처럼 여러 장면이 펼쳐졌다.

  남편이 운전하는 차 안이다. 건우는 뒷자리 카시트에 앉혔고, 은주는 남편 옆에서 뭐라고 계속 얘기를 한다. 내용은 알 수 없지만, 평소보다 들떠 있다. 도착한 곳은 어린 시절 엄마의 식당이다. 은주는 아무도 없는 식당에 들러 무언가를 챙겨 나온다. 혼자 들기에는 무거워 보이지만 거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너무나 익숙해서 빤히 아는 곳인데도 처음인 것처럼 낯설다.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곳 같다. 어느 순간 은주가 있는 곳은 다시 차 안이다. 건우와 남편은 없다. 처음부터 혼자 왔는지도 모른다고 은주는 생각한다.

  일순 장면이 바뀌어 볕 좋은 오후의 도로가 보인다. 운전자의 시선에서 본, 전면 차창 바깥으로 펼쳐진 풍경이다. 이번에는 은주뿐이다. 침대에 누운 은주는, 운전하는 자기 표정을 살피려 애를 쓴다. 얼굴은 좀처럼 보이지 않고, 운전하는 은주가 바라보는 전방의 사물만 차의 속도만큼 빠르게 다가왔다가 사라진다. 딱히 이유도 없이 은주는 운전하는 자신이 슬프거나 힘들어 보이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까처럼 들뜬 건 아니어도 분명 무거워 보이지는 않는다. 한참을 가다가 길가 어느 식당에 차를 세웠다. 처음 보는 곳인데도 은주는 이미 알고 찾아온 것 같다. 은주는 식당 밖에 서서 안을 살핀다. 가게는 한산하다. 방금 손님이 떠난 테이블을 치우는 나이 든 여자가 눈에 띈다. 엄마인가 싶다가, 낮에 본 노파 같다가, 은주 자신인 것 같다가, 처음 보는 사람 같다가….

 

 

  “엄마!”

  귀에 대고 속삭이듯 부르는 건우의 목소리에 은주는 눈을 떴다. 은주는 건우를 안고 거실로 나가 남편을 맞았다.

  “벌써 여름이네. 내일부턴 반 팔 입을까 봐.”

  남편은 벗어든 재킷과 건우의 어린이집 가방을 소파에 놓으며 말했다.

  “나도 아까 출장 나갔을 때 좀 덥긴 하더라.”

  분명히 다 치웠었는데, 이상하게도 거실은 더 어질러져 있었다. 널려진 빨래 그대로 벌써 며칠째인 건조대, 어지럽게 널린 인형과 장난감. 이제 막 들어온 건우가 그랬을 리도 없을 텐데. 은주는 편안한 실내복을 입고 있었다. 언제 갈아입었던가? 기억나지 않았다.

  은주는 인형을 집어 들고 장난감 차에 올라탄 건우를 안아 남편에게 씻기게 하고는 먹다 남은 찌개를 데웠다. 말라붙은 밥알이 섞인 밥을 밥솥에서 푸고, 밑반찬 몇 가지로 간단히 저녁을 차렸다. 개수대에는 씻어야 할 접시와 그릇들이 쌓여있었다.

  저녁을 먹으며 은주와 남편은 각자 밖에서의 일과 마스크 때문에 생긴 피부 트러블과 황사와 미세먼지 얘기를 했다. 유아 의자에 앉은 건우는 버거운 어른 숟가락을 쓰느라 밥과 찌개를 자꾸 흘렸다.

  “그러게, 작은 숟가락 쓰라는데 계속 고집을 부리네, 우리 건우!”

  은주는 짐짓 얼굴을 찡그리며 건우를 살짝 다그쳤다. 빨리 식사를 마친 남편은 거실 소파에 반쯤 누우며 리모컨으로 야구 중계를 틀었다. 먼저 식탁을 뜬다고, 은주는 남편에게 핀잔을 줬다.

  “밥 먹고 금방 그렇게 눕지 좀 마! 소파랑 한 몸 되겠어.”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싫지 않은 잔소리. 은주는 이미 쌓인 설거짓거리 위에 저녁 먹은 그릇을 포개놓고서, 마지막 한 입을 아직도 오물거리며 장난감 자동차로 달려간 건우를 불렀다.

  “건우야, 엄마하고 같이 장난감하고 동화책 정리할까?”

  “응!”

  은주는 거실 가운데 서서 초록색 장난감들, 초록색 동화책들. 남편이 기대 누운 소파, 건우가 쪼그려 앉았다 뛰었다 하는 모습을 파노라마 사진을 찍듯 둘러봤다. 어질러져 보이지만 모든 곳에 세 식구 사는 냄새가 배어있었다. 깔끔하지 않아도 충분하고, 투박해도 튼튼한… 나무!

  어느 순간 이 모든 모습이 커다란 오동나무와 겹쳐 보였다. 제멋대로의 가지마다 반갑게 손을 흔드는 초록 이파리들.

  그렇지만 은주가 보는 나무는 낮에 본, 흐드러진 꽃을 달고 있는 오동이 아니었다. 꽃은 이미 지고 없지만 하늘을 가릴 듯 잎이 무성한 오동 한 그루가 어느 순간 은주 앞에 우뚝 서 있었다.

  화려한 꽃이 있을 때보다 오동은 훨씬 더 안정되고 풍성해 보였다. 나무에게도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당당하고 편해 보였다. 서두르지도 않고 경직되지도 않은 모습으로, 자기 길을 뚜벅뚜벅 가던 이가 한 번 돌아보며 씩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은주는 나무를 향해 나지막이 인사를 건넸다.

  “안녕!”

  순간, 대답처럼, 은주는 첫 태동을 느꼈다.

  배 속의 아이를 안 듯, 은주는 천천히 두 팔로 자신을 감쌌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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