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

여섯 잔의 커피도 아닌데

by FeelSeoGood 2023. 7. 4.

  “여보, 나 지금 지원이 학원 때문에 같은 반 애들 엄마들이랑 밖인데, 자기 아직 집에 안 왔지? 혹시 나 집에 없다고 전화할까 봐. 내가 핸드폰을 집에 두고 왔거든…….”

  낯선 번호의 전화 너머에서 들리는 아내의 목소리에 대해 가졌던 의문이 풀린다. 아내의 목소리가 그리 밝지 않다. 무언가 피곤한 일인 게 분명하다. 저녁도 다 지난 시간에 애들 둘을 데리고 다른 엄마들과 만나야 하는 일이라면 좋은 일일 건 없는 것이다. 세상사 그렇듯, 갑자기 일어나는 일과 예상 못한 일들의 구십 퍼센트는 나쁜 일이다. 사람들도 그걸 알기에, 철이 들어갈수록 새롭게 만나는 사람을 우선 경계부터 하고 보는 것 아닌가? 결국 진정한 열린 마음의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집에 와보니 아홉 시가 넘었는데도 불이 없다. 아직 아내가 귀가하지 않은 것이다. 아이들이 없는 집은 낯설다. 엄마가 없는 집, 올록볼록 간유리 ‘알루미늄새시’ 문에 목에서 벗겨낸 열쇠를 꽂아 돌리던 어린 시절, 전지분유 두 숟가락을 간식으로 퍼먹고 침으로 꼭꼭 씹어 삼키던 어두침침한 부엌에서처럼, 아내가 없는 집에서 나는 서툴다. 평소, 나를 따라 들어와 내 옷을 받아 걸고, 준비해 두었던 찌개를 때 맞춰 불에 올리는 것도 아니지만, 그저 없는 것으로도 서툴다. 어머니도, 미용실을 하지 않고 집에 있었다 해도 내 책가방과 신주머니를 받아주진 않았을 터이다.

  부엌에는, 아이들과 바삐 때우고 나갔는지 소반 위에, 남긴 밥이 말라붙은 밥그릇과 아이들 먹이자고 조린 갈치를 발라놓던 그릇이 그대로 있다. 개수대에는 냄비에 담긴 그릇, 수저 등속이 남아 있다. 조금 늦어지는 게지. 이제, 뭘 할까? 익숙한 상황이 아니니 이런 생각도 다 한다. 잠시 망설이다 옷을 벗고 속옷 바람으로 설거지를 하기로 한다. 식기 세척기 문이 조금 열린 것으로 봐서 그 안에 담긴 그릇들은 이미 씻겨진 것들이다. 아내가 돌아오면 아이들을 씻기고 곧 재우고, 식기세척기를 돌리기엔 어중간한 이 설거지도 해야 할 텐데, 이거라도 해 놓는 게 나을 것이다.

 

 

  매일 와서 집안일을 봐주던 이모를 그만 오시게 한 게 엊그제다. 아내는, 아이들도 이제 어느 정도 제 앞가림할 만큼 컸고 이모 없어도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래도 정 힘들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잠시 와서 청소만 해주는 YWCA 도우미를 부르면 될 거라고 말했지만, 그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둘째가 태어나고 백일이 되기 전부터 사 년 가까이 우리 집 일을 봐주던 아주머니가 그만 올 거라고 했을 때 아이들이 많이 울고 우울해했다고 했다. 아내도 이것저것 생각했겠지만 제일 큰 이유는 아무래도 돈이었겠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오전 내내 유치원이다 학원이다 갔다 오는데, 아무도 없는 빈집을 지키게 하고 오후 시간 잠깐 아이들 봐주는 비용으로 적지 않은 돈이 지출되는 게 마뜩하지 않다고 전에도 이야기한 적이 있었으니까. 오후 시간 활용에는 좋지만, 그렇다고 자기가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아닌 바에야 아무래도 낭비 같다고 하던 아내의 속내에는 아마도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일말의 미안함 같은 게 깔려 있었던 것도 같다. 그렇게 말하는 아내에게, 그래도 너무 빡빡해지지 않겠냐고, 당신이 아예 일 없이 집에만 있으면 몰라도 거의 매일 오전에는 출근하는 편인데 그냥 이모 오시는 게 애들도 편하고, 당신도 좋을 거라고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싱크대 위의 빈 그릇을 개수대로 옮겨 놓는다. 아무도 없는 집, 부엌 천장에서 출발한 차가운 백색 불빛만이 꼼꼼한 전자버튼 자물쇠로 튼실히 격리된 이 공간을 틈입하는 전부인 집에, 그릇끼리 부딪는 소리가 시끄럽다. 소리의 절대량으로만 따진다면야 얼마 되지 않은 것이겠지만, 혼자이기에 더 크게 느껴진다. 아이들과 아내가 채우고 있던 공간은 나 혼자서는 어찌해도 다 채울 수가 없다. 가족이란 그렇게 같은 공간을 장벽 없이 나누어 가지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 남은 빈 공간의 부피만큼, 나는 자꾸만 조심스러워지고 조금, 두렵기도 하다. 그래 이것도 익숙하지 않다. 늘 하던 게 아니다. 아이들 한 번 안아주고는 씻고 침대에 반쯤 기대 누워 스포츠 뉴스를 보거나 딱히 채널을 정해 놓지도 않고 리모컨 버튼만 쉬지 않고 눌러대는 플립플롭(flip-flop)족이 되고 말았던 나다.

  먹다 남은 반찬은 뚜껑을 찾아 덮고, 갈치는 발라놓은 살코기만 새 종지에 옮겨 담아 랩으로 씌워서는 냉장고 문을 열다 말고 또 잠시 생각한다. 아, 이 냉기는 신선함의 상징일까 자연스런 부패를 거스르는 인간의 오만일까? 그리고 그 안에 남아있는, 내가 없는 동안 집에서 있었던 내 식구들의 식사 흔적들 또한 변질되지 않고 고스란히 내가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이것이 내게는, 스파이이거나 충직한 집사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고.

물에 제대로 잠겨있지 않아 가장자리에 눌어붙은 밥풀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그릇들은 다시 불려놓고, 포크, 젓가락, 숟가락, 국자, 칼 순으로 하나씩 수세미로 문질러 댄다. 내게 설거지를 가르치시려는 의중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머니는 누구에게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 설거지가 꼼꼼하다고 자랑을 하셨다. 누나를 시키면 온 부엌을 한강으로 만들어 놓는데, 내가 하면 물 한 방울 없이 깔끔히 끝을 낸다는 거였다. 꼭 어머니의 자랑인지, 계략인지, 교육인지, 음모인지 모를 그 결론이 아니었다 해도, 설거지가 딱히 싫을 이유가 없었다. 매일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 뿐인 것을, 처음부터 내 할 일이라고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라 하고 나면 은근히 생색도 나는데다가,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로 설거지는 재미있기까지 했으니까 말이다. 다만 그게 아내와 결혼하기 전까지였을 뿐이다.

  딱딱한 밥풀을 철 수세미로 꼼꼼히 문지르고 다시 망사 수세미의 거품으로 기름때를 닦아내고 있을 때 현관 앞에서 나는 아이들 소리가 들린다. 생각보다 늦지 않았다. 아까 갈치 가시 발라낸 걸 버리다 보니 음식물 쓰레기도 꽤나 쌓여있던데, 아내가 아이들 씻기는 동안 그거 내다 버리고 담배 한 대 피우고 올라오면 되겠다고 계산한다.

  아빠, 하고 신나는 목소리로 아이들이 뛰어 들어오는데, 아이들을 재촉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좀 바빠 보인다. 아내가 막 부엌으로 들어오더니, 개수대 앞에 붙어선 나를 보고 깜짝 놀란다. 어머, 자기 설거지해? 응. 근데 일단 자기 옷부터 입어야겠는데……. 왜? 엄마들 우리 집으로 다 오기로 했어. 뭐? 얘기가 덜 끝났는데, 학원을 닫아야 되어서 그래. 말하면서 아내는 내 눈을 볼 짬도 없이 커피포트를 올려놓느라 바쁘다.

아내의 말이 채 다 끝나기도 전에 복도에서 여자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손을 대충 헹궈내고 급히 안방으로 가서 반바지에 셔츠를 걸치고는 다시 개수대에 붙어 선다. 많은 것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듯, 호들갑을 떨 필요도 없다. 다른 부부들처럼 우리 부부도 역시 그런 것이다.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말하지 않으면 끝내 모르는 것보다 말하지 않고도 알 수 있는 게 훨씬 더 많을 만큼 우리의 지난 10년도 허투루 지나가지는 않았다. 말하지 않아서 끝내 알 수 없는 것이 간혹 큰 문제를 일으키곤 하지만 말이다. 굳이 위로하듯 말하자면, 아는 것도 사랑이고, 모르는 것도 사랑인 것이다.

  현관에서 거실로 들어가기 전에 거쳐야만 하는 부엌 입구에서 내 등을 향해 서넛의 여자들이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가 아니라 늦게 죄송하다거나 폐를 끼친다거나 하는 말속에는 내가 있어 그들도 편치 않음이 은근히 담겨있는 것 같아 나 역시 불편하다. 뭘요, 애들 일인 걸요, 라고 나름대로 최선의 대답을 내어놓는데도, 그들이 내 맘을 알기는 알까 싶기도 하다. 부부 서로가 존중하고 배려한다면, 아내의 손님, 또는 남편의 손님을 불만스럽게 볼 까닭이 없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런 맘이 충분한 것을, 만약 저들의 집에 이런 상황으로 방문하게 된다면 내 아내도 저들처럼 불편하고 미안해할까? 그렇다면 그건 내 탓인 거다.

 

 

  “안녕하세요?”

  딸아이의 친구 하나가 내 옆에까지 와서 두 손을 모으고 공손히 인사를 한다. 두려움이 조금 있긴 하지만 세상 그 누구보다 열린 마음이 바로 저 또래의 아이들이다. ‘맞다’고 배운 것은 끝까지 ‘맞다’고 믿을 수 있는 나이. 참은 참이고, 거짓은 거짓이라 판단하고 말아도 아직은 힘들 게 없는 나이. 똑같은 상황의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일들도 때론, 혹은 다른 누구에게는 참이나 거짓으로 변용될 수 있다는 걸 알 필요가 없는 나이. 일곱 살이다.

  “How are you! Glad to meet you! Are you Wendy's friend? What's your name?”

  “Laura.”

  아이가 다니는 학원은 영어학원이니까, ‘로라’라는 이름의 아이도 금방 웃으며 대답한다.

  “Well, Laura, where's your FRONT TEETH?”

  마지막 그릇을 헹구며 하는 과장된 내 몸짓과 말투에 앞니가 휑한 입을 가린 로라와 딸아이가 깔깔깔 웃음을 쏟아낸다.

  “저이가 생전 안 하던 설거지를 다 하고 그러네요, 딱 오늘 같은 날에 말이에요…….”

말하지 않아도 당신들의 남편을 떠올리며 뻔히 짐작할 수 있었을 사실을 아내는 손사래를 치며 이야기한다. 그래도 다 안다. 그렇게 얘기하는 당신의 말속에는 이제 그렇게 매일 좀 해 주면 안 되겠니, 하는 원망이나 바람보다, 내가 그래도 저런 정도의 자상한 남편이랑 살고 있다우, 하는 반쯤 자랑과 멋쩍음이 더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을.

  칫칫칫칫 맹렬한 소리를 내며 끓어오르는 전기포트 옆에서 행주로 개수대를 닦아내고는 아내가 가사일 중에 제일 싫어하는 일,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러 내려가는 내게 아내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 기훈이 책 좀 읽어주세욧!”

  그래, 그래. 내 대답은 없었어도 음식물 쓰레기 버킷을 든 내 뒷모습에서 다 알아들었을 거다. 커피 여섯 잔 타 오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슬리퍼를 꿰어 신은 발걸음이 유난히 가볍다.

(2014 약사문예)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경을 닦다  (1) 2024.10.29
노포(老鋪)를 꿈꾸며  (0) 2023.07.15
문지방  (0) 2023.06.27
약국 단상(斷想)  (2) 2023.06.15
그런가 보다  (2) 2023.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