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오늘도 할머니의 몸살 약을 사러 오셨다. 다시 뵙기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르신의 표정이 염려한 만큼 어둡지 않아 반가움과 함께 조금은 안심이 된다. 늘 사 가시는 할머니의 약을 드리며 여쭤보니, 지역 2차 병원에서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가라고 해서 낼모레 올라가 보기로 했다고 하신다.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게다. 늘 그랬던 대로 별걱정 없는 표정으로 다녀오마고 돌아서신다. 엊그제, 할아버지가 본인의 내과 기침약 처방전을 가지고 오셔서 약을 받으시며 CT 사진과 방사선과 소견서를 보여주시는데, ‘lung cancer’라고 쓰여 있었다. 자세히 설명할 수도,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저 기침이 감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고, 병원에서 지시한 대로 자식들과 상의해서 정밀검사 받아 보시라 하고 말았었다.
저렇게 가시면 대개는 다시 뵙기 어렵다. 치료 성과가 좋더라도 중병 후 거동이 편치 않은 탓에 대형 병원 문전약국에서 바로 약을 지으시거나, 우리 약국에 오신다 해도 보호자나 요양보호사가 대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잘 지내신다는 소식을 전해서라도 듣게 되면 그보다 반가울 게 없으나, 나중에 건강보험 자격이 상실된 사실이라도 우연히 알게 되어 비감해지기도 한다. 유독 노인들과 형편이 넉넉지 않은 분들이 많은 동네에서 십사 년째 약국을 하며 알게 된 하나가 사는 것도 가시는 것도 바라는 대로, 예측한 대로 되는 건 아니더란 것이다. 내가 뭘 해도 도와드릴 것이 이제는 없을 것이고 그간 약국에 오시면서 섭섭하게 느껴져 맘속에 남은 게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늦게까지 가루약을 먹던 초등학생 녀석이 까까머리 청년이 되어 약을 지어 가며, 얼마 전 제대를 했다고, 자길 알아보겠냐고 묻는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땐 통 안 보이던 녀석인데, 어려서는 사흘이 멀다고 드나들던 약국 아저씨가 반가웠나 보다. 덩치는 나보다 훨씬 커졌고 다부지고 늠름한 멋진 청년이 되었지만, 먼저 아는 체를 하고 빙긋이 웃는 얼굴에 어린 시절 모습이 그대로 남았다. 기억을 더듬어, 부모님 안부와 늘 같이 다니던 사촌들 이야기도 물어본다. 약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중국음식점을 하던 사촌네는 이사를 갔고, 한 살 터울의 사촌 형은 살이 많이 빠졌단다. ‘아저씬 하나도 안 늙었네요!’ 하는데, 이젠 예전처럼 반말을 하기도 쉽지 않지만 정겨운 마음은 그대로 남았다. 나를 기억하고 나중에라도 인사를 해주는 고마운 마음, 내가 느낀 딱 그 정도만이라도 돌려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약국 카운터보다도 작아서 턱걸이하듯 매달려 까치발을 하고 넘겨다보던 아이들이 대학생도 되고, 취직도 했다. 처음 알았던 어른들은 세월을 따라 늙어 가고, 아이들은 훌쩍 자라 어른이 되었다. 나 역시 이곳에서 똑같은 세월, 똑같은 일과를 보내며 변해왔을 텐데, 어느 면으로든 더 나빠지지 않았음을 감사히 생각한다.
오랫동안 같이 일하다 결혼하고 아이를 가져 퇴사했던 직원이 이제 곧 돌이 되는 아들을 데리고 놀러 왔다. 돌잔치에 꼭 오라고, 안 오면 삐질 거라고, 귀여운 협박도 던진다. 다시 일하러 나올 상황이 안 되는데도 근무하던 때는 없던 자동 조제 기계에 호기심을 보이며 이것저것 물어본다. 약국에 오는 환자는 많이 줄진 않았는지, 예전에 오시던 아무개 아주머니는 지금도 계속 오시는지, 건강이 더 나빠지지는 않았는지, 애 키우느라 바쁜 일상의 넋두리와 섞여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 또한 내게는 더없이 고마운 일이다.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때마다 연락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이야기도 하는 소중한 인연으로 여겨주는 직원들이, 약사 선생님이라 깎듯이 불러주시고 고맙다는 말 한마디 잊지 않고 건네주시는 환자들만큼 감사하다.
마른장마라고, 비가 그저 오락가락하고 있다. 그래도 잔뜩 흐리고 바람이 잔잔하지는 않다. 약국 앞 버스정류장에 일렬로 서있는 가로수들이 그 바람에 잔가지를 흔들어 댄다. 그래도 삼 층 높이 정도는 자란 녀석들은 그 자리에서 오롯이 서서 이겨낸 비바람과 엄동의 세월만큼 튼튼한 뿌리로 버티고 서서 이 장마 지내고, 혹시 닥칠지도 모를 태풍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저 나무들은 내가 약국을 개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식재되었으니 거의 약국과 동갑이다. 나도 약사로 똑같은 세월을 이 자리에서 보냈으니 응당 저러한 여유와 성장이 있어야 할 터인데, 가끔 창밖 나무가 눈에 들어올 때마다 돌이켜 본다. 때론 대견하기도 했고 때론 깊이 뉘우쳐야 할 일상이었다. 때론 분별없는 욕심에 미혹되기도 했지만 약국에 오는 많은 분이 내게 가르침을 주는 선생님이었기에 떨쳐낼 수 있었고, 불가항력의 오해와 각박해져만 가는 현실에 실망도 있었지만 결국 진심은 언젠가는 알아준다는 소박한 믿음을 마음속에 지켜갈 수 있도록 큰 힘이 되어준 많은 분도 있었다.
변화하고 적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참 많은 곳에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무언지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불안과 초조감으로 쫓기듯 허겁지겁 변화를 선택하고 싶지는 않다. 물론 흐르지 못하고 고인 물은 썩겠지만, 필요 이상의 호들갑은 도태되는 것만큼이나 피하고 싶다. 장차 약업을 둘러싼 보건의료 환경이나 사회적 변화도 녹록하지만은 않겠지만, 사람이 소중하다는 것 변치 말고 지키며, 어려워도 바른길이 무언지 생각하여 그쪽으로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 약사라는 직업을 행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오전에 따갑던 햇살이 밀려온 먹구름에 가렸다. 내릴 비는 내려야 한다. 큰 흐름을 거스를 순 없다. 장마도 결국 때가 되면 끝이 날 것이고, 비 온 뒤에는 땅도 더 굳어질 것이다. 서울 큰 병원에 가실 어르신도 치료가 잘 되기를 빌고, 갓 제대한 사회 초년병도 승승장구하길 빌고, 돌잔치를 준비하는 엄마도 지금의 기쁨 잊지 말고 평생을 자식과 함께 행복하길 빌어 본다.
나는 다만, 약국 앞에 화려하지 않게 늘어선 저 나무들처럼, 늘 한결같은 마음 잊지 않기를, 스스로 빌어 본다.
(2013 <동아제약 약국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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