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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배꼽

by FeelSeoGood 2023. 2. 15.

 

 이건 그저 우리 집, 뭐 하나 특별한 것 없는 세 식구에 관한 소박한 이야기다. 굳이 얘기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세상에 있는지조차 모르고 궁금해하지도 않을 가족. 별의별 자질구레한 사연이 다 나오는 한낮의 라디오 같은 데서도 좀처럼 들을 수 없을 이야기. 그래서 나는 쓴다, 내 말을 믿을 이가 몇이나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사실, 나 역시 바로 어제의 일들조차 아주 오래된 기억처럼 아련하기도 하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대도 아쉬울 건 없다. 적어도 이 이야기를 읽는 동안 가져 줄 관심,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낙원

 인공위성 궤도처럼 똑같은 코스를 순환하는 마을버스의 출발점은 어디일까? 어디라도 시작이고 어디라도 끝이 되는, 그래서 참 안정적이지만 그만큼 밋밋하고 갑갑한. 어쨌거나 사람들이 가장 많이 타고 내리는 지하철역을 처음 또는 끝이라 친다면 산자락을 오르고 올랐다 내려가는 반환점쯤, 그러니까 마을버스의 궤도 중 가장 높은 데가 우리 동네다. 우리 집은 거기서도 걸어서 10분쯤 더 들어가는 재개발 구역이다. 사람 손 떠난 지 오래된 집들이 말라비틀어진 수풀뿐인 야산을 등지고 띄엄띄엄 서 있다. 아직 철거되지 않은 집은 대개가 유리창이 깨졌고 담벼락과 대문에는 붉은 스프레이로 휘갈긴 기호와 숫자가 주소 대신 낙인되어 있다.

 사는 데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누구라도 알만한 큰 도시의 이름을 대겠고 행정구역상으로도 그게 맞지만, 사실 우리 동네는 그 도시 하면 떠오르는 바쁘고 화려한 모습이 아니다. 아예 닮은 데가 없다. 태양계로 따지자면 명왕성쯤. 한때 태양의 위성으로 여겼지만, 이제는 무리에서 쫓겨나 행성인지 아닌지도 불분명한, 우리 동네는 도시의 그런 끄트머리다. 이제 남은 사람도 거의 없어서, 버려진 동네나 마찬가지다. 낮이나 밤이나 똑같다. 그렇지만 어쨌든 명왕성을 그렇게 만든 건 순전히 사람들의 변덕 아닌가? 명왕성은 원래부터 지금처럼 변함없는 얕은 소속감만으로 묵묵히 움직이고 있었고, 태양도 어쩌면 그런 정도의 충성심만 기대했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소외되어 멀리 어두운 구석에 처박힌 것이 아니라 억지로 간섭받을 일 없이 적당히 자유로운 위성. 그러니까 허투루 보이는 이 동네도 그리 나쁠 건 없는지도 모른다. 굳이 전부 싹 밀고서 산 아래처럼 휘황찬란한 아파트 단지를 올리지 않아도, 여기는 벌써 낙원일지도.

 내 아버지 얘기로 시작하겠다. 사실 보통의 가족이라면 누구라도 아버지, 어머니, 형이나 누나 하는 순서가 되는 게 맞겠지만, 우리 집이라면 ‘형, 아버지, 나’의 순서가 맞다. 그럼에도 나는 굳이 아버지를 먼저 얘기하겠다는 말이다. 엄마는 없다. 그러니까, 우리 집은 일반적이지는 않다. 인정한다. 그러니 엄마는 앞으로도 얘기하지 않겠다. 거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아버지, 아, 아무래도 이건 익숙하지 않다. 그냥 늘 하던 대로 아빠라고 하겠다. 그러니까 아빠가 태어날 무렵은 어느 집이나 아이들이 많았다. 보통 대여섯 형제에 그중 한둘은 어려서 죽고 어디 가나 미어터지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나이 들고 늙어왔다. 힘들었지만, 외롭지는 않았을. 하지만 아빠는 혼자였다. 친척은 아무도 없다. 그것 말고도 아빠는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것을 타고났다. 나도 알게 된 지 몇 년 되지 않았고, 나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으니 그건 아빠와 나, 둘만의 비밀이 되겠지만, 정작 아빠는 자기가 특별하다는 걸 전혀 모르는 것 같으니 결국 나만 아는 사실이다.

 아빠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보거나 들은 게 없어서 정확한 건 아니지만, 분명히 태어날 때부터 그랬을 것으로 짐작한다. 운동장 가운데 혼자 서 있어도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지극히 평범한 사람. 보호색이라고까지 할 만한 평범함. 평범함도 그 정도가 지나치면 역설적으로 개성이 된다는 걸, 납득할 수 있는지? 다른 누구를 이해시키기는 어렵겠지만 나는 확신한다. 분명히, 그럴 수 있다. 그런 아빠를 보고 자랐으니까.

 아빠는 공기나 먼지 같은 사람이었다. 늘 있는데도 그 존재가 느껴지지 않고, 대부분은 특별히 감지할 필요도 없는 종류. 둘 중에 굳이 말하자면, 먼지에 가깝지 않을까? 아빠의 존재가 다른 생명에 필수일 만큼 중요하다 할 수는 없었으니까. 웬만한 가족의 가장이라면 그럴 수 있겠나 싶겠지만, 사실 아빠는 우리 집에서 가장도 아닐뿐더러, 집 밖에서도 누구 하나 알아줄 사람이 없었다. 친구도 하나 없는, 머리 희끗희끗한 중년의 왜소한 남자. 굳이 보통의 기준에서 통용되는 특이점을 꼽아야 한다면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 정도일 텐데, 원래 말을 못 하는 건지, 일부러 안 하는 건지는 나도 분명하지 않다. 어쨌거나 나는, 말이 되어 나오는 아빠의 목소리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그렇지만 나는 ‘말을 안 하는 것’, 그러니까 의지에 의한 발성 거부 쪽이라고 보는데, 아빠의 청력은, 신기하게도, 아무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귀가 밝은 편에 속한다고 할 만큼 작은 소리에도 민감해서, 혼자서도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물론, 말도 들어서 이해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입술을 읽어 알아채는, 눈으로 봐야지만 알 수 있는 게 아니었다는 말이다. 다만, 입을 통해 터져 나오는 소리로 대꾸를 못 할 뿐이었다.

 어찌 된 건지 우리 집에는 때마다 사고만 쳐서 호적에서 파내고 싶은 삼촌도 하나 없다. 잘 나가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못나고 밉더라도 뭐라도 말해줄 피붙이가 있었으면 내가 이렇게 아무것도 모를 수는 없다. 내가 아빠에 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직접 보고 경험한 것뿐이다. 몇 장은 있게 마련인 옛날 사진이나 편지, 학교 때의 성적표나 생활기록부, 졸업앨범, 이도 저도 아니면 비망록을 겸한 수첩처럼 개인의 역사를 증빙할 기록 따위도 아빠에게는 전혀 없으니까 정말로, 내가 아는 아빠는 내가 함께 살면서 보아서 아는 것 이상은 없다. 그래서 따지자면야 결국 나 역시 아빠를 잘 모른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또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게, 십 칠 년간 오롯이 바로 옆에서 아빠라는 사람을 관찰한 건 세상에 나 하나뿐이라서, 그나마 세상에서 현재의 아빠를 제일 잘 아는 사람 또한 바로 나다. 물론, 내가 태어나자마자부터 그 미숙한 감각과 지각을 온전히 가동했다고 볼 수는 없을 테니까, 내가 기억도 하고 사리분별을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된 이후로 한정한다면 그 시간은 훨씬 짧아지게 되겠지만 말이다.

 어디에다 꼭 소개해야 한다면, 예를 들어 학교 가정환경조사 같은 데, 나는 아빠의 직업을 ‘슈퍼마켓’에서 ‘마켓’을 떼고 ‘슈퍼’라고 했다. 그러지 않으면 너무 거창하게 여길 것 같았다. 더 나이를 먹고 나서는, 그러니까 중학생쯤 되었을 땐, ‘상업’이나 ‘자영업’이라고 쓰기도 했지만, 누가 직접 물어올 때는 그렇게 공문서를 읽듯 어색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따지고 보면 ‘슈퍼’가 더 솔직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변변한 간판도 없는, 겨우 네댓 평 구멍가게를 그렇게 부르는 건 전혀 어울리는 것이 아니어서 얼굴이 붉어지는 걸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아빠는 한 가게의 운영자라기보다는 그저 가게 지킴이었다는 게 맞겠다. 그나마 동네에 사람들이 좀 남아있던 때에는 소일거리라도 됐었다. 보상금 받고 떠나는 사람이 늘고부터 거의 개점휴업이었던 요즘은, 가게 문을 열어보는 사람이라곤 재개발 관련 관청 사람이거나 계고장을 전달하러 온 집배원이 전부였다. 조금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나는 한때 아빠가 정말 슈퍼맨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한 적도 있다. 슈퍼 한다고 슈퍼맨이면, 웬 아재개그냐 싶겠지? 영화 속의 슈퍼맨과 현실의 아빠는 너무나 대조적이라 어떻게 해도 갖다 댈 수 없겠지만, 또 그렇게 극단적으로 달랐기 때문에 그런 공상에 빠져 볼 수도 있었다. 변명하자면 슈퍼맨도, 무슨 일이 생기면 몸을 써서 보여주지 말은 많이 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어쩌면 그런 내 상상은 나중에 알게 된 어떤 일과 이어질, 은연중에 받은, 하지만 필연적인 암시 같은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지금은 든다.

 형은, 밖에서는 흔하디 흔한 건달이고, 우리 집에서는 실질적인 왕이었다. 사나흘에 한 번씩 들러 밤이고 낮이고 잠만 자다 가는 형은, 자고 있을 때는 그렇지 않지만 눈을 뜨고 있는 동안은 더없이 험악한 인상과 표정으로 입에 욕을 달고 살았다. 어느 똑똑한 옛 분의 말씀대로 말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게 맞다면, 세상을 전혀 더럽히지 않은 아빠의 몫까지 형에게 허락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만약 그런 거라면, 형은 그 방면으론 정말로 근면 성실해서, 아빠 몫의 두세 배는 하고도 남았던 셈이다. 어딘가 아빠 같은 사람이 몇 명쯤은 더 있어야, 형의 입에서 나오는 욕들과 균형이 맞을 수 있었을 거다.

 나는 형이 있을 때면 되도록 형의 눈에 띄지 않으려 애썼다. 형과 마주치면 일단 뒤통수나 등짝을 크게 한두 대 얻어맞는 건 예사고 건수가 있을 때면 조인트를 까이거나 그 크고 단단한 주먹세례를 견뎌야 했으니까. 나는 속으로, 밖에서는 저보다 더 심한 욕을 하고, 더 무시무시한 폭력을 시전하고 왔을 텐데, 내가 동생이라서 이만큼만 하겠거니 했다. 그래도 형은 집을 나가기 전에 꼭 내 앞에 돈다발을 던져 놓았는데, 그걸로 다시 올 때까지 아빠와 내가 먹고살 생활비를 하라는 건지, 자기가 풀어놓은 유무형의 폭력을 잘 견뎌낸 노고를 보상하겠다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나는 그렇게 받은 돈에서 절반쯤을 떼내어 책상 아래 쪽마루 판 하나를 들어낸 공간에 모아두고 나머지는 아빠 가게의 돈통에 넣었다. 거의 비어있게 마련인 돈통에 적잖은 금액이 채워지면 놀랄 법도 한데, 아빠는 한 번도 그런 내색을 한 적이 없다. 아빠는 그 돈으로 살림을 살았고, 몇 품목 남지도 않은 물건을 들여놓았다. 형이 던져주는 돈은 열일곱 살짜리의 용돈으로는 물론이고 두 식구의 생활비로도 넘치게 많았다. 곧 무너질 것 같은 변두리 주택, 거기에 어울릴 만큼의 사치도 없는 우리 집에는 말 그대로 ‘먹고사는 것’을 빼고 나면 돈 들 일이 없었다. 내게 꼭 필요한 책값, 등록금, 차비, 간식비 같은 걸 쓰고도 한 달에 이삼백은 수중에 남았다. 일정하진 않았어도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형이 그래왔으니 집안 구석구석 돈을 넣어둘 만한 장소에는 적잖은 돈이 숨겨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용한 곳이 책상 아래 마루 밑이다. 천장, 싱크대 구석 같은 곳은 벌써 다 찼다. 썩거나 벌레가 파먹지 않도록, 아빠 가게에서 가져온 좀약과 함께 랩으로 여러 번 꼼꼼히 말아서 넣어두었다. 그러라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꼭 그렇게 해야 할 이유도 없었지만, 왠지 그 돈을 은행 같은데 넣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어디서 어떻게 가져오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떳떳한 돈은 아니다. 정해진 간격도 없이 며칠에 한 번씩은 꼭 시체 같은 얼굴로 들어와서 쓰러져 잠드는 형은, 다시 집을 나설 때는 마음만 먹으면 눈으로 레이저를 쏠 수도 있을 듯 되살아나 있었다. 집이 무슨 엄마 뱃속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래서 형이 가져온 돈과 이 집을 떼어놔선 안 될 것 같았다. 집과 형은, 그게 사악한 것이든 아니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끈으로 이어져 있는 것 같았다. 확신할 순 없지만, 언젠가 꼭 필요할 때가 올 것이고 그때가 되면 돈을 미련 없이 써버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곳곳에 숨겨둔 돈을 좀약과 함께 빼내고 나면 낡아빠진 집이 폭삭 가라앉고 마는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집을 이나마 버티고 서있게 했던 게 돈인지, 좀약인지, 아빠나 나인지 알 수 없지만.

 마지막으로, 나는, 그냥 열일곱 고등학생이다. 이제는 학교로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 더는 학생이 아니지만, 아빠의 직업이 ‘슈퍼’이듯 나는 ‘학생’이다. 지긋지긋한 기억도, 되돌아가고 싶은 추억도 몇 가지는 있다. 자세한 건 생략한다. 어차피 차차 나에 대해 조금씩 말하게 될 것이고, 또 뭐 그다지 설명할 게 없기도 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나는 이런 사람이오, 하는 건 해 본 적이 없어서 어색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뭐, 말이 길었지만, 나에 관한 설명은, 필요 없기도 하고, 내가 하기도 싫다는 거다. 그렇게 이해하자.

 자랑거리도 아닌 가족 이야기를 꺼내놓은 건, 나만 알고 있는 어떤 일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다. 신기하다고 해야 할까, 멋지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이상하다고 할까?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이 이야기를 한 적은 없는데, 딱히 들어줄 사람도 없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아직도 지금부터 내가 할 이야기를 믿게 할 자신은 없다. 그래도 결정적 장면을 혼자서 목격한 유일한 증인과 같은 마음으로, 나는 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내가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없는 일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는 건 왠지 아쉽다. 아니, 아쉽다기보다 무척 억울하달까? 나는 지금, 아무 구덩이에라도 ‘임금님 귀’라고 외치고 싶을 만큼 안달이 나 있으니까.

 

외계인

 아빠는 결코 화내거나 흥분하는 법이 없었다.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해도 따지고 대들거나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았다. 걸음도 재지 않고 느릿느릿. 그래서 모든 것이, 생활도, 돈벌이도, 사랑도, 숨쉬기마저 무의미하게 보였다. 아빠와 연관될 때는 말이다.

 그래, 비밀을 말하자면, 결코 아무도 믿어주진 않겠지만, 아빠는 외계인이다. 여기서 잠깐! 웃었나? 뭐 그랬대도 크게 탓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이건 분명히 하자. 나는 정말 진지하다. 그러니, 농담 같은 게 아니란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아니 정확히는 아빠를 외계인이라고 의심하기 시작한 건, 벌써 오래전이다. 지금은 중단했지만, 그때 아빠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내게 그걸 들키지 않았다면, 아빠가 외계인이라는 사실은 영영 아무도 몰랐을 거다. 하지만 이제 나는 확실히 안다. 그러니 내 얘길 심각하게 받아들여 주기 바란다.

 아빠는 하루도 다름없이 온종일 무기력하게 보냈지만, 새벽이면 몰래 다락방에 올라가 가장 안쪽 구석 나무 기둥에 조그만 흠집을 하나씩 그어 넣었다. 그 개수가 정확히 마흔일곱이 되는 날, 아빠는 다들 잠든 한밤중에 혼자 마당으로 나갔다. 그때 아빠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재빠른 걸음과 어둠 속에서도 번뜩이는 두 눈, 결코 아빠라고 생각할 수 없는 누군가로. 구부정한 등도 곧게 펴졌고, 심지어 키도 한 30cm쯤이나 더 커 보였다. 때마침 밤하늘에서 쏟아져 내린 한 줄기 광선이 아빠의 얼굴을 도드라지게 비추지 않았다면 나도 아빠를 몰라볼 만큼. 그런 아빠를 처음 목격했던 날에는, 차라리 우리 집 마당에 들어온 낯선 이를 봤다고 생각하는 게 나을 만큼 아빠의 달라진 모습이 너무너무 무서웠다. 그 형형한 눈빛과 의지 가득한 강인한 표정. 분명 아빠이긴 한데, 아빠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열세 살 때였다. 형에게 뺏기지 않으려고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냉장고에 남아있던 참외를 허겁지겁 먹어 치웠던 날이다. 그걸 씨 채로 싸재끼느라 비몽사몽 대문 옆 변소에 앉았던 그 새벽, 그날이 처음이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괴한 옷차림으로 집을 나서는 아빠. 불렀을 텐데, 놀라움에 반 덜 깬 잠에 반씩 점령당한 내 목소리가 크지는 않았지만, 내가 분명히 불렀는데, 아빠는 듣지 못하고, 아니 들었는데도 모른 척했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눈길도 한 번 주지 않고, 아빠의 걸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날쌔게, 하지만 당당히 걸어 나왔다. 나는 봤다, 그때. 알루미늄새시 올록볼록한 유리 너머로 퍼져나가는 눈이 부시도록 환한 빛을. 이게 뭔가 싶어 바지춤도 올리지 못하고 문틈을 살짝 벌려 바깥을 훔쳐봤을 때, 혼자 당당히 서 있던 아빠를. 어디서부터인지 강렬히 쏟아져 내리던 한 줄기 하얀 광선과 그 속으로 빨려들 듯 사라지던……. 잠시 뒤 아무리 눈을 씻고 다시 봐도, 아빠는 없었다. 별똥별이 지나간 것처럼, 어두운 밤하늘을 가르며 그어진 한 줄기 굵은 빛이 남았을 뿐.

 게다가 아빠는, 그때 알 수 없는 말을, 내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언어를 중얼거렸다. 무슨 주문인 듯, 교신인 듯, 복잡한 기계가 쏟아내는 전파 수신음이나 예멘 같은 나라에 있을 법한 무당들이 접신해서 내는 소리 같은. 그게 내가 처음 들은 아빠의 말이었다. 사실, 정확히는 그게 꼭 입을 통해 나온 건지는 모르겠다. 더빙된 영화대사처럼, 어디서부턴가 소리는 들리고 거기에 맞게 아빠의 입이 옴짝달싹했으므로 그랬나 보다고 짐작만 할 뿐이다.

 그때, 나는 알았다. 아빠는 외계인이란 걸 말이다. 그날 정말로, 아빠는 저 먼 데로부터 내려오는 한 줄기 빛으로 사라져 버렸으니까. 물론 다음 날 아침에 여전히 보통 때의 모습 그대로 돌아와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분명히 밤하늘에서 내려온 빛을 타고 올라갔었으니까. 현대 과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귀신이니 헛것을 봤느니 하는 설명은 말도 안 되는 거고, 이해할 방법은 오직 하나,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외계인과 관련된 무엇이라는 것뿐이지 않나? 그게 그나마 가장 합리적인 거다. 꿈꾼 것 아니냐고? 단언컨대 그건 아니다. 화장실에서 엉덩이를 까고 설사를 쏟아내면서 잠이 들고 꿈을 꿀 수는 없는 거다. 그리고 나중에 더 알게 됐지만 이미 말한 대로, 아빠는 47일마다 매번 그랬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도 그 후로도, 나는 내 정체성에 대해, 아빠와 내가 정말 생물학적 부자관계인지, 나는 뭐고 엄마는 또 어떻게 된 건가, 하는 따위의 소모적인 고민은 해 본 적 없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아빠라는 존재가 완전히 새로운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 무지무지 거대한 관심을 끌어내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기만 할 뿐이었다. 그 이전까지의 아빠는, 겨우 열세 살짜리의 마음에도 그 가치와 관심이 전무하다시피 했으니까. 나는 오직 나만 아는 비밀, 혹은 신기한 이벤트 하나가 생겼다는 것에 마음이 들떴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하지만, 다른 생각은 해 보지 않았다. 지구인인 진짜 아빠의 몸에 외계인이 숨어든 것인지, 아빠가 처음부터 외계인이었다면 혹시 나 또한 외계인인 건지, 나는 아니고 아빠만 외계인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만약 내 진짜 아빠의 몸을 외계인이 점령한 것이라면 우리 가족뿐 아니라 전 지구적 비상 상황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다음 날 아침에도 아빠는 처진 어깨와 느릿한 발걸음과 생기 없는 눈빛으로 안방에서 걸어 나왔다. 전날 새벽에 있었던 일을 전혀 짐작도 할 수 없을 만큼 평소와 똑같은 무기력한 모습. 실망이었다. 아빠는 외계인인데, 지구를 파괴하거나 정복하러 온 건 아니라 해도, 최소한 초능력이나 대단히 발전된 과학기술을 엿볼만한 뭐 하나는 가지고 있어야지! 그런데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보통의 사람이라면 헤어날 수 없는 충격과 공포였을 그런 일을 당하고도 그렇게 똑같을 수 있다는 사실, 그게 바로 아빠가 외계인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는데, 나는 멀쩡한 아빠를 본 그 아침에는 그런 판단을 못 하고 상당히 혼란스럽기만 했었다. 심지어 그날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사실까지 꿈이 아니었을까 하고 잠시 의심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미 말한 대로 절대, 꿈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후 며칠 동안의 집중 관찰로 알게 된 아빠의 사소한 일상과 버릇에는 여전히 특별한 게 없었다. 살펴볼수록 아빠는 아주 느리고, 약하고, 작으며, 있어도 없어도 누구도 상관하지 않을 것같이 보이는 사람이라는 사실만 또렷해졌다.

 내가 알아낸 아빠의 일상은 이랬다.

 일단, 매우 규칙적이었다. 마당 한 편에 붙은, 금방이라도 찌그러지고 말 것 같은 구멍가게를 보는 게 일이라면 일이었으니 딱히 직장이 정해진 사람들처럼 출퇴근 시간에 맞춰 움직여야 하는 게 아니었는데도, 아빠는 계절에 상관없이 정확히 다섯 시면 일어났다. 맨 먼저 하는 일은 다락방에 올라가는 것. 다락은 세 식구가 다 같이 자는 방 안쪽 벽에 달린 작은 문을 열면 나오는 가파른 계단을 통해 갈 수 있었다. 낡은 쪽문과 계단이 찌걱거리는 소리는 잠결에도 들을 수 있었을 텐데, 전에는 한 번도 그런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모르지, 사실 들은 적이 있었어도 관심이 없으니 이내 다시 잠들었는지. 하지만 외계인 아빠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기로 한 다음부터는 나 역시 새벽에 깨어 다락으로 올라가는 아빠를 몰래 살펴봤다.

 특별히 더 조심스러운 것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무 거리낌이 없는 씩씩한 동작과는 더욱 거리가 먼, 아빠 특유의 움직임일 뿐이었고, 손에 뭘 들고 있지도 않았다. 낮이나 밤이나 입고 있는, 평상복이자 잠옷이고, 근무복이자 외출복인 무릎과 팔꿈치가 반들반들 닳은 초록색 체육복 차림 그대로. 나는 차마 다락으로 몰래 따라 올라가 볼 엄두는 못 내고 다락방 문에 귀를 바짝 갖다 대고 안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눈치챈 걸 아빠, 아니 외계인이 알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으니까.

 내가 정말 외계인의 아들이라면 늑대보다도 뛰어난 청각을 가질 법도 한데, 아쉽게도 나는 특별한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사실 한 번도 아빠의 아들이라는 것에 대해 어떤 의미를 가져본 적이 없었지만, 아빠가 외계인이라는 걸 알고 나서는 내게도 특별한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조금 하긴 했었다. 어찌 되었든 나로서는 그만큼 아빠의 존재에 의미를 두게 된 것인데, 그게 딱히 싫지는 않았다. 뭐랄까, 아빠와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

 아빠가 다락에서 보내는 시간은 길어야 십 분 정도였다. 사그락거리는 것도 같았고, 덜거덕거리는 것도 같은, 소용도 작동 여부도 모르는, 가끔은 정체도 불분명한 물건들이 어지럽게 널린 좁은 공간에서 움직이려면 반드시 날 수밖에 없는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문제의 새벽에 봤던 섬광 같은 것도 없었다. 나는 내내 허벅지를 오므리고 무릎을 비벼 오줌을 참으며 쪽문에 귀를 붙이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뭔가 잘못한 것처럼 등허리를 옹송그리고 있던 나는, 갑자기 다락문이라도 벌컥 열렸으면 그대로 오줌을 지렸을지도 모른다. 형은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고, 부지런한 여름 아침이 서둘러 밝아오는 그 십 분쯤이 내게는 열 시간처럼 길었다. 마침내 아빠가 내려오는 계단의 삐걱거림이 느껴졌을 때 나는 다시 이불을 덮고 들어가 자는 척했고, 아빠는 다락에 올라갈 때와 똑같이 구부정한 모습으로 방으로 내려섰다. 느릿한 발걸음, 외계인이라고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존재감 없는 뒷모습이, 실눈을 뜬 내게서 멀어져 갔다.

 그다음은 부엌이었다. 밥솥에 쌀을 씻어 안치고 밖으로 나가 마당을 쓸었다. 깨지고 벗겨져서 흙 반 시멘트 반이라 쓸어 봐야 다를 게 없는데도 꽤나 정성을 들였다. 가끔 하늘을 한 번씩 올려다보는 게 특이한 점이랄까? 지붕 끝 너머 하늘을, 마당의 네 귀퉁이마다 꼭 한 번씩. 십 분 남짓 마당을 쓸고 나면 담장 밑 텃밭에서 푸성귀를 솎아 아침을 차렸다. 탁탁탁탁, 칙 치직……. 도마질, 냄비 달그락거리는 소리, 달궈진 팬에 기름을 두르는 소리가 얼마간 이어지고 나면 아빠는 형과 나를 흔들어 깨웠다.

 나는 자는 척하며 매일 반복되는 그 과정을 지켜봤다. 사실 아침은, 한 열흘쯤 하다 말았다. 그것도 매일 꼬박꼬박 할 수는 없었고 며칠에 한 번이었는데, 시간에 맞춰 깨는 게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알람 같은 걸 쓸 수도 없으니까. 눈 떠보면 아빠는 벌써 마당을 쓸고 있거나 부엌에 있었다. 하지만 내 관찰의 결과를 의심해서는 안 된다. 가능한 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지켜보기를 계속했다. 알아야 했으니까, 아빠의 정체를.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오후부터 저녁때까지, 아빠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가게에 나가 있었다. 그때는 가게가 그나마 가게 같긴 했지만 산 아래 아파트 단지의 편의점처럼 바쁘지는 않았다. 그러니 대부분을 미닫이문 앞 낡은 나무 의자에 앉아서 문밖을 물끄러미 내다보는 게 일이었는데, 그 시선이 가 닿는 곳도 당연히 뭣 하나 딱히 구경할 만한 것이라고는 없는 변두리 풍경뿐이었다. 한 달에 두세 번 물건을 넣어주는 차가 오면 의자에서 잠깐 엉덩이를 뗐지만, 어차피 손님도 없는 구멍가게에 들일 것도 많지 않아서 새로 온 물건을 정리하는데 채 삼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런 뒤 아빠는 다시 문 앞에 앉아 바깥 구경을 시작하는 것이다. 어쩌다 누가 물건을 사러 오면 또 잠깐 움직였다가 제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여름이면 부채를 들고, 겨울에는 난로를 끼고서. 간혹, 잠이 든 게 아닌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 확인하기도 했는데 그런 건 아니었다. 초점이 있는지 없는지는 분명치 않아도 내가 다가가면 꼭 나를 향해 돌아봤으니까 말이다.

 학교를 빠질 수는 없어서 오전의 동정을 확인할 기회는 몇 번 없었다. 그렇다고 내 수사에 구멍이 있었다고 할 수는 없다. 공휴일이나 일요일도 있었고, 한밤의 섬광, 그 사건을 목격하고 꽤 지난 뒤였지만 방학이 되자 한동안 거의 종일을 집에서 가게로 통하는 문간에 버티고 앉아 있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허탕이었던 나는 가게의 의자며 돈통 같은 것들을 아빠 몰래 꼼꼼히 살펴도 봤다. 어딘가에 분명 신호를 주고받을 장치 같은 게 있을 테니까. 꼭 그런 기능이 아니라도 내가 깜짝 놀랄, 외계에서 온 뭔가가 있어야 했으니까.

 다락방에 혼자 올라가 본 것도 그때쯤이었다. 나로서는 꽤 용기를 낸 일이었는데, 거미나 쥐, 바퀴벌레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거기서 정말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발견하면 어쩌나 싶어서였다. 아빠가 매일 빼먹지 않고 올라가는 다락, 거기에는 분명 뭐라도 있을 터였다. 나는 그즈음 이미 세 번이나 한밤중에 마당으로 쏟아져 내리는 빛 속으로 빨려드는 아빠를 목격했고 아빠가 지구인이 아니라는 것에 조금의 의심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발견한 것은 집의 나이만큼 오래된 기둥 맨 위부터 마흔일곱 개씩 끊어서 빼곡히 새겨진, 자디잔 흠집 무더기뿐이었다. 줄 맞춰 가지런한 그 표시를 무늬처럼 입은 기둥은 역사책에서 본 빗살무늬토기처럼 성스러워 보이기도 해서 몇 번이고 손으로 쓸어도 봤지만 우리 집이 버텨낸 세월만 느껴질 뿐, 깜짝 놀랄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평범해 보이는 기둥 모퉁이 어딘가를 만지면 기둥 전체에 신비로운 빛이 들어오면서 외계와의 소통이 가능하게 된다거나 내 눈앞에 가상현실 모니터라도 두둥, 하고 떠오르는 일 같은 것 말이다. 결국 나는 다락에서도 아무런 증거를 찾지 못했고, 수사는 거기서 멈춰버렸다.

 마지막 방법으로 생각해 낸 게 동영상이었다. 방학의 끝 무렵이었다. 변신한 아빠와 마당 가득 쏟아지던 빛, 그 장면이라도 찍어 두자고 생각했다. 그게 아빠가 외계인이라는 결정적 증거는 못 되겠지만 언젠가 다른 사람에게 말해야 한다면 적어도 내 말을 증빙할 뭐라도 있어야 했다. 게다가 어쩌면, 동영상을 반복해서 보다 보면 뭔가 또 다른 실마리를 찾을지도 몰랐다. CCTV 돌려 보기는 수사의 기본 중 기본이니까. 게다가 나는 그 미스터리한 일이 벌어질 날짜를 정확히 알고 있었으니 어려울 게 없었다.

 디데이! 쏟아지는 잠을 참으며 깬 채로 누워 있다가 홀린 듯 마당으로 나가는 아빠를 따라가서는 아빠의 등 뒤에서 핸드폰을 들이댔다. 마당에는 전처럼 눈부신 빛이 쏟아져 내렸고 아빠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또 한 번 그 속으로 빨려 들었다. 됐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확인한 영상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빛도 없고, 아빠의 무당 소리도 없었다. 아빠는 그저 마당 한가운데 서서 한가로이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동영상에 기록된 시간은 정확했다. 하지만 눈으로는 생생히 목격된 그 장면이 영상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정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본 것이 결코 거짓이 될 수는 없다. 매번 같은 꿈이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된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그런 일이 정말 벌어졌다고 믿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내가 본 것과 영상에 찍힌 게 다르더라도 그 시간에 아빠가 마당에 나갔고 내가 그 장면을 찍었던 건 사실이니까, 그건 결코 꿈이라고 할 수 없다. 내가 굳이 이런 말까지 하는 것은 그 당시에는 나조차도 혹시 내가 환상을 본 것은 아닐까, 이게 말이나 되나, 하는 의심을 조금은 했었기 때문이다. 딱히 비밀이야기를 주고받을 만한 친구도 없어서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응원 따위 기대할 데 없고, 의욕적인 추적이 아무런 성과도 못 거두고 보니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나는 한동안 의기소침했고, 아빠만 보면 괜한 짜증을 부렸다.

 잠시나마, 아빠에게 직접 물어볼까 생각도 해 봤지만,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런 걸 어떻게 대놓고 물어볼 수 있단 말인가? 그건 아무리 용기가 있다고 해도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당장 질문을 위한 설명 자체가 복잡하고 어렵다. 어찌어찌 물어본다 해도 아빠에게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방법이 없다. 긴지 아닌지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흔드는 것으로 알 수 있겠지만, 그것으로 끝날 얘기가 아니었다. 어느 쪽이든 길고도 복잡한 설명이 필요한데, 아빠는 말을 하지 못한다. 뭐라고 한단 말인가? ‘아빠, 아빠는 사실 외계인이지?’ 이렇게? 그럼 순순히 고개를 끄떡여 준다고? 무슨 소리를 하나 하고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으면, ‘나 그거 봤어! 새벽에, 마당에서 아빠가 사라지는 거!’라고 내가 가진 유일한 카드를 가볍게 써먹는다? 안 될 말이었다. 그러니 괜히 아빠가 얄미웠고, 화도 났다.

 그러다 나는 결코 부정할 수 없는 결정적인 증거를 찾을 수 있었다. 그걸 발견한 건 순전히 우연이었는데, 우연치고는 너무나 결정적이었다. 그래, 다들 알다시피, 역사는 위대한 우연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결정적인 증거는 바로 아빠의 몸에 있었다. 사람이라면 반드시 있어야 할 한 가지인 배꼽이, 아빠에게는, 없었다!

 나는 그 이전까지 아빠의 배를 본 적이 없다. 믿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아빠는 여름이든 겨울이든 이불을 꼭 덮고 잤고, 메리야스도 꼭꼭 바지 속으로 넣어 입었다. 아빠와 나는 수영장은 물론이고 목욕 한 번 같이 가 본 적이 없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우리 가족은 그렇다. 마당 한쪽에 욕조를 대신할 큰 고무 대야를 놓고 아빠가 나를 씻긴 적은 있어도, 땀도 잘 흘리지 않는 아빠는 등목 한 번을 하지 않았다. 보진 못했어도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빠의 배꼽에 대해서는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고, 당연히, 아빠의 배를 본 적이 있는지 없는지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이상하다고? 아니, 나같이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도 아빠의 배꼽을 제대로 꼼꼼히 살펴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세상에 쌔고 쌘 정상적이고 아름다운 가족들에게 말이다.

 누가 다른 사람의 배꼽에 특별히 관심을 가질까? 얼굴에 있는 눈, 코, 귀, 입이나 겉으로 보이는 손, 팔, 다리, 몸매 같은 거야 예쁘니 못생겼느니 말이라도 하지만 배꼽은 그런 게 아니니까. 심지어 배꼽 말고 다른 데는 남들과 다르면 장애라고도 하는데, 배꼽은 없다 해도 그런 것도 아니니까. 그럼, 맹장이나 편도선 같은 건가? 필요 없다 싶으면 떼어버릴 수 있으니까? 아니 그게 또 그렇지 않은 게, 다른 건, 뭐 흔치는 않겠지만, 태어날 때부터 없을 수도 있는데 배꼽은 엄마 뱃속에 머물다 나왔다면 누구라도 결코 없을 수는 없는 거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나를 낳아준 엄마와 연결되었던 단 하나의 겉으로 드러나는 흔적. 그게 없다는 것. 그것이 바로 아빠가 지구인이 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지구인

 내가 혼자서 난제를 풀고 있는 동안에도 형은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형은 내가 펼치고 있는 필사의 추적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나나 우리 집에 대해서는 손톱만큼의 관심도 없었으니까. 깝작거리는 옆 학교 짱을 언제 제대로 발라버릴지나, 아빠 몰래 가게에서 들고나간 담배를 얼마씩에 팔아치울지, 단골 PC방 알바 누나가 얼마나 짧은 치마를 입었을지 같은 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형은 바빴으니까.

 매일 교복 차림으로 꼬박꼬박 나가긴 했지만, 형이 정말 학교에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입학하자마자 몇 번을 연달아 학교에서 연락이 오더니, 그 뒤로는 별다른 말이 없어서 그냥저냥 별문제 없나 보다고 짐작만 할 뿐이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형이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했을 리 없었지만, 공부 아닌 데로만 발달한 형의 수완과 학교의 적당한 방임이 잘 버무려진 결과였을 것이다. 학기 초 몇 번, 의욕을 가지고 아빠를 만나 본 담임선생님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걸 금세 알았을 것이다. 마을버스가 끊길 때쯤 들어오는 형은 집에서 자는 것 말고는 하는 게 없었고, 그건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똑같다. 고등학생이었지만 책 같은 건 아예 없었다. 가끔 안 들어오는 날도 있었지만 자주 그런 건 아니었고, 말 못 하는 아빠가 눈빛으로라도 뭐라 한 적 없어도 집에는 잘 들어오는 편이었다. 뭐, 아빠가 어떻게 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었겠지만.

 하지만 어쨌거나, 나만 알고 있는 그 비밀을 누구와 나누게 된다면 그나마 그건 형일 수밖에 없었다. 온전한 동네 모양을 갖추고 있던 당시에도 이웃에 친구 할 만한 또래가 없었고 학교에서도 나는 그림자 같았다. 나는 늘 거기 있는데도 그걸 알아주는 애는 없었으니까. 괴롭히고 때리는 놈들 말고는. 그렇지만 나는 형에게 아빠에 관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 평소에 내 말을 잘 들어줬던 것도 아니고, 얘기를 한다 해도 돌아올 대답은 뻔했다.

 “븅신아! 정신 가출했냐?”

 뒤통수나 얻어맞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빼도 박도 못할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당당하게 얘기하겠지만, 정작 그런 게 있다면 굳이 형에게 공조를 요청할 필요가 없었다. 특히 그 동영상, 눈으로 본 것과 다른 장면이 찍힌 그 동영상이 준 실망감 이후로 혹시 한번 말해볼까 하던 마음도 싹 접었다. 그 결정적인 증거를 우연히 형과 같이 목격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처음부터 일부러 아빠의 배꼽을 찾아볼 생각을 했던 건 아니고, 모든 것은 모기 때문, 아니 덕분이었다.

팔다 남은 수박을 저녁참에 반 통이나 먹은 탓에 한밤중에 터질 것 같은 오줌보를 부여잡고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귓가에서 모기 한 마리가 계속 앵앵댔다. 어둠 속에서 몇 번을 헛손질하다가 아예 일어나서 불을 켰다. 어두침침한 형광등이라 형이나 아빠가 깰 일은 없었다. 눈에는 띄지 않고 소리만 남기는 모기를 쫓아서 몇 번의 손뼉을 쳤지만, 모기는 못 잡고 나처럼 화장실을 다녀와 선잠이 들었던 형만 깨웠다.

 “야 이 새꺄, 뭐 해!”

 “응, 모기.”

 “뭔 모기? 시끄럽게 하지 말고 불 끄고 디비 자.”

 짝! 짜짝! “아이씨, 빠르네…”

 “아이, 새끼! 잡을라믄 똑바로 잡든가!”

 “딱, 딱 한 마린데, 이게 어디, 아, 여깄다.” 짝!

 “잡았냐? 못 잡았지? 븅신! 비켜 봐! 어디 있는데?”

 “저기 창문 옆에. 아니 아빠한테로 간다. 저기, 저기! 보여?”

 “어, 어. 보인다.”

 형과 나는 모기가 숨지 않도록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고 조심스레 움직였지만, 몇 번의 추적과 헛손질 통에 아빠의 이불이 끌어 내려져 있었다. 마침 모기는 아빠 배 위, 하얀 러닝셔츠에 앉았다. 잔뜩 긴장한 모양이었어도 이미 선홍색 피로 가득 찬 배는 아래로 처져 있었다. 몸이 무거운 모기도 지쳤을 터! 형과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기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잡았냐? 손 펴봐! 없지? 븅신, 잡지도 못하면서 그러고 있을 줄 알았다. 자, 봐라!”

 형의 손바닥에는 선명한 핏자국과 함께 모기가 짜부되어 있었지만, 정작 나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우리의 부주의한 손길에 들려 올라간 아빠의 러닝셔츠 아래 배꼽이 있어야 할 자리.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형, 혀엉. 여기 봐, 이거.”

 “새꺄 빨리 불 끄고 누워. 븅신 새끼, 너 땜에 잠 다 깼잖아이씨!”

 형은 모기를 잡은 손바닥을 내 뒷덜미에 쓱쓱 문질러 닦고는 벌써 베개를 베고 누었고, 나는 한참을, 아빠의 배, 배꼽이 없는 맨질한 배를 보고 있었다. 그런 소란에도 내내, 아빠는 깨지 않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끄응, 하고 한 번 몸을 뒤척이긴 했던가?

 형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 들었을까? 아니면 정말 아무것도 못 본 걸까? 배꼽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무런 흔적도 없이 맨들맨들한데,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렇게 결정적인 상황을 겪었으니 잠이 올 리 없어야 했지만, 깨보니 해는 중천이었고 방에는 나뿐이었다. 구수한 아침밥 냄새와 함께 아빠가 부엌에서 자분자분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화장실에 갔다가 마당에서 대충 세수를 하고 오니 형이 방에 있었다. 나는 당장 형에게 어제 내가 본 걸 말하고 싶었다. 형은 가방에 뭔가 넣으려다 내가 들어오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떨어뜨렸다.

 “아! 새끼 깜짝이야! 놀랐잖아이씨!”

 나는 일상적인 형의 손찌검을 능숙하게 피하면서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어제 말이야, 어제. 형, 형 정말 못 봤어?”

 “뭐? 보긴 뭘 봐, 새꺄?”

 형은 떨어뜨린 걸 재빨리 집어 가방 안으로 던져 넣으며 내게 눈길도 주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얼핏 보니 외국 여자 사진 위에 붉고 검은 영어가 적힌 잡지였다.

 “어제 모기 잡을 때 말이야. 아빠 배꼽, 배꼽 못 봤어?”

 “뭐? 배꼽? 그게 왜?”

 형은 가방 안을 한 번 더 확인하더니 나를 힐끔 돌아봤다. 평소의 살벌한 눈빛은 없고,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이었다. 형에게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나는 단박에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다. 형은 내게 뭔가 속이고 있는 게 분명했고 그건 아마도 아빠에 관한 것이겠지. 형에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무엇이 됐든!

 “아, 아니야, 형. 말하려던 거 잊어버렸네.”

 형은 얼음처럼 굳어서 애써 태연한 척하는 나를 잠시 보더니,

 “쌔애끼, 뭐래? 아침부터, 븅신. 근데, 너… 못 봤지?”

 “뭐 말이야? 뭘 봐?”

 형은 다시 한번 내 표정을 살피고는 짐짓 어른 흉내를 내며 말을 이었다.

 “아서라. 봤어도 너 같은 애들은 아직이다. 혹시 나 없을 때 찾아보고 그럼 죽는다. 알았냐?”

 웃음기 싹 뺀 엄포와 함께 형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날, 나는 형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나름 심각하게 고민했다. 형은 대체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걸까? 그런데도 어떻게 저리 태연하기만 할까? 형은 분명 우리 편인데 왜 찾아보지 말라는 건가? 성격은 달라도 형은 나와 판박이로 닮았다. 전체적인 생김이며 곱슬머리, 짤막한 엄지손가락까지. 그러니까 적어도 형은 외계인이 아닌 게 확실하다. 그럼 형은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분명, 형은 이미 아빠에 대한 무언가를 알아챘으면서 내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아는 체를 했는데도 말이다. 형도 결국 우리 편이 아닌가? 하지만 그런 고민도 그리 오래 계속하지 못했는데, 나는 그것 말고도 해결해야 할 고민이 널린 질풍노도의 열세 살이었으니까. 그땐 정말, 집도, 학교도, 사는 게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부터 형은 매일 교복 대신 야구잠바에 야구모자를 쓰고 나갔다. 물론, 형이 야구선수가 된 건 아니다. 그 시절 형은 몸에 상처가 없는 날이 없었다. 얼굴에도 손에도 다리에도, 찢어지고 멍든 생채기투성이었다. 그냥 봐도 사고 같은 게 아니었다. 때리고 맞아서 생긴, 이유가 뭐가 됐든 피아간 심각한 완력을 주고받았을, 분명한 이해 상충이나 증오가 읽히는 상처.

 동네도 상처투성이가 됐다. 차일피일 미뤄지기만 하던 재개발이 본격화되고 사람들이 떠났다. 빈집은 금세 수풀이 차지했고 벌레가 꼈다. 가끔은 어디서 왔는지 모를 들개가 떼로 사람들을 위협했다. 아빠의 구멍가게도 점점 더 늙어갔다. 손님은 없이 먼지만 쌓이고, 이제는 오래 두고 팔 수 있는 물건들만 들였다. 우유, 계란, 빵 같은 건 말고, 담배, 과자, 술, 통조림, 건전지 같은 것만.

 아빠의 우주쇼는 그 뒤에도 한동안 계속되었다. 47일마다 매번 지켜본 건 아니다. 거의 빠지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내가 보든 안 보든 달라질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게 된 데다 내 인생 고민만으로도 벅찼기 때문이다. 어디에든 이야기도 할 수 없는 걸 자꾸 확인만 해서 뭣하나 싶기도 했다.

 아빠가 그 반복을 중단한 건 형이 교도소에 가고부 터다.

 경찰이 집으로 찾아와 아빠 앞에 서류를 몇 장 꺼내놓고서 뭐라고 어려운 말을 했다. 아무 대꾸가 없는 아빠에게 답답함을, 그다음엔 짜증과 측은함을 순서대로 담아 같은 말을 반복하더니 이내 포기하고 돌아갔다. 형은 꼬박 2년 동안 벌을 받았고, 아빠는 우주쇼 대신 47일마다 형을 찾았다. 나는 한 번도 데려가지 않았지만, 나는 아빠가 형을 보고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형에게 다녀온 날이면 아빠는 초저녁부터 벽을 향해 누워서 죽은 듯이 잠을 잤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눈에 띄게 늙었다. 어느 날은 머리가 하얗게 세고, 어느 날은 얼굴이며 손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잡혔다. 또 어느 아침은 안 그래도 구부정한 등허리가 눈에 띄게 접혔는데, 지팡이 같은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나는 아빠가 어떻게 되는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났지만,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빠의 구멍가게도 그즈음에 문을 닫았다. 출소 후부터 형은 야구잠바를 벗고 까만 양복을 입었고 상처가 눈에 띄게 줄었다. 대신 눈빛은, 야구잠바 때보다 몇 배는 무서워졌다.

 “형, 형은 밖에 가서 뭐 해? 뭐 하는지 나도 알고 싶어….”

 출소하고 한참 뒤에 한 번, 용기를 내어, 아니면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형에게 물었다. 정말 모르냐는 눈빛으로 나를 잠시 보더니, 형은 대답했다.

 “그게 왜 궁금한데?”

 이미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학교에서 나를 괴롭히는 개떼 같은 놈들에게 또 한 번 다구리를 당한 날이었다. 집에 와서 그놈들 이름을 노트에 휘갈기고 커터 칼로 그어 재꼈다. 미친 듯 독을 품고 그러는 어느 순간, 나는 형이 하는 욕을 내뱉고 있었다.

 “싸우는 일. 나는 그냥 싸워서 버티는 일 해. 아무나 다. 있는 놈이랑도 싸우고, 없는 새끼랑도 싸우고, 싸우려고 안달 난 새끼들 당연히 싸우고, 안 싸우고 싶어 하는 놈들하고도 싸우고. 세상이랑, 그러고 다녀.”

 “어떻게 하면, 잘 싸워?”

 형은 뭐 그딴 질문이 다 있냐는 듯 잠시 어이없는 표정이었다.

 “일어나 봐.”

 형이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섰다.

 형은 의자에 앉은 채로 내게 손가락 하나를 까딱까딱했다. 나는 형에게 다가갔다.

 그때 갑자기, 형이 내 뺨을 올려붙였다. 대비할 새도 없이 철썩. 볼이 얼얼했다. 내가 휘청이며 뒤로 물러나자 형은 다시 한번 손가락으로 나를 불렀다. 조금 전과 같은 장난기 어린 눈빛은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잠시 그런 나를 지켜보고 있던 형이 자리에서 뛰어올라 내 뒷덜미를 잡고는 아랫배에 주먹을 하나 박아 넣었다. 숨이 턱, 막혔다. 형에게 여러 번 맞아봤지만 그런 정도는 처음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무릎을 꺾고 엎어졌다.

“하, 새끼. 고작 그거 맞고 쓰러지냐? 밖에 나가면 너 때리고 니 꺼 뺐을려는 놈들 쌔고 쌨어. 그 새끼들처럼 못 할 거면 맷집이라도 좋아야지. 일어나, 얼른, 쌔꺄! 당장 못 이기겠음 토끼기라도 잘해서 나중에 뒤통수 깔 생각을 해야지. 이도 저도 아님, 넌 걍 내내 찌질이로 살다가 뒈지는 거야. 싸움? 일단 싸우지 마. 안 싸우면 안 져. 근데 처음부터 그렇게는 안 돼. 처음에는, 싸울 수밖에 없겠다 싶으면 피하면 안 돼. 딴 거 없어. 걍 인정사정없이 갈겨. 그래도 안 통하면 버텨. 저 새끼보다 내가 마지막에 한 번 더 갈긴다 생각하고 버텨. 그래도 안 되겠는 상대가 있지. 그런 놈은 일단 토껴. 그러고 끝내면 안 되고, 나중에 언제라도 기회 봐서 반 죽여야 돼. 그럼 너랑 싸우자는 새끼들 없어.”

 나는 소리도 못 내고 방바닥에 허리를 동그랗게 말고 쓰러져서 들었다. 우는 소리도 낼 수 없을 만큼 겨우 숨을 쉬고 있는데도 눈물은 볼을 타고 흘렀다.

 그래도 나는 형이,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아빠와 나는 형이 있어서 이렇게라도 살아온 거다. 꼭 돈 때문만은 아니다. 사회 선생 말대로 산다는 게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를 맺는 거라면 우리 가족 중에, 좋든 나쁘든 사람들과 부대끼고 있던 사람은 형뿐이다. 아빠와 내게는 도통 그런 게 없었다. 누구든 마주치기는 했다, 동네에서든 학교에서든. 하지만 모두 그냥 그들일 뿐이었다. 모르는 채로 지내거나 알고 나면 괴롭히기만 하던 그들과 나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들도 나와 같은 생각일 거다. 아빠가 남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건 모르겠다. 그러나 남들이 아빠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뻔하다. 그러니 형이, 우리 중에서 세상과 연결된 유일한 끈이었다. 짧으면 사나흘 길면 열흘쯤 살다가 돌아오던 저쪽 어디가 정말 형의 집이었는지, 여기 우리 집이 진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 형에게는 배꼽이 있다. 그건 의심할 필요가 없다. 내가 봐서 안다. 형은 나와 발가벗고 뛰어놀기도 했다. 물론, 형이 아직 무서운 욕을 하지 않고, 집에 돈을 가져다 놓지 않을 때였다. 그때 형은, 나를 때리지 않았다. 내게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가르쳐 준 이후로도, 형은 더는 나를 때리지 않았다.

 

귀환

 계고장이 날아오고서야 나는 형에게 그간의 사정을 얘기했다. 그래도 뭐라도 해 볼 사람은 형밖에 없었다. 집을 비우라는 기한까지 한 달이 채 남아 있지 않았다. 어디든 우리 세 식구 들어가 살 집 못 구할 건 없었다. 까다롭게 따질 조건도 없으니 수중에 있는 돈에 적당히 맞추면 되었다. 이미 거미줄만 가득한 아빠의 가게 같은 건 이러나저러나 상관없었다. 멀리 가게 되면, 나도 그쪽 학교로 옮기면 그만이다. 괴롭히는 애들만 있는 지금 학교 같은 건, 어차피 큰 미련도 없다. 형? 어쨌든 형이 하는 일이라는 게 사는 데와 가까워서 좋을 건 없을 테니, 여기 같은 변두리 어디든, 시골 마을이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문제는 아무도 이사 갈 집을 알아보지 않는다는 것뿐. 우리는 다른 집들처럼 옮겨갈 데를 구하지 못해서 남은 게 아니었다. 보상비를 더 달라는 것도, 이주대책 따위의 요구도 우리 가족에겐 없었다. 우리는 그냥, 위기의식이 없었다. 굳이 우리의 바람이 있다면, 그냥 여기에 이대로 살고 싶다는 것뿐. 살기 좋은 곳이라서도 아니고, 오랫동안 정이 들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우리 식구는 다른 집은 경험한 적이 없고, 상상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계고장 이후에도 아빠는 달라진 게 없었다. 해가 뜨면 늙어버린 몸을 힘들게 일으켜 천천히 마당을 쓸고 아침을 차렸고, 내가 집을 나서면 종일 마루 끝에 앉아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면 박제처럼 아침과 똑같은 자리에 그대로 있기도 했다. 아빠는 그 서류에 적힌 내용이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새 아파트가 들어서려면 이 동네를 싹 밀어버려야 하고, 우리 집도 당연히 그렇게 된다는 건데, 여기에 계속 있을 수는 없다는 건데, 어쨌든 여길 떠나긴 해야 한다는 건데도 말이다.

 첫 번째 이주기한이 가까워지면서 구청에서 나온 사람들이 가끔 동네를 다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최종계고장이 붙었다. 기대했던 형도 뾰족이 뭘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첫 계고장을 보여줬을 때 누구에게인지 모를 욕을 낮게 내뱉고는, ‘있어 봐. 알아서 할게.’ 했던 게 전부였다. 결국 나도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뭘 할 수 있는 게 있다 해도 내가 꼭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더 집요하게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 개떼 놈들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지랄 같았으니까. 그리고 나는 우리 식구 중에 제일 나이가 어린 사람이고 아직 학생이었으니까. 원래 그런 사람은 보호를 받아야 하지 뭘 도맡아서 처리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나는 아빠도 있고 형도 있는데, 물론 외계인인지 아닌지 불분명하긴 하지만, 내가 왜 그런 걸 신경 써야 하나 싶었다.

 정말 치가 떨리는 개떼 새끼들…. 외계인 아빠에게서 초능력이라도 전해받았기를 기대했던 건 이미 물거품이 되었고, 밤하늘에 뜬 우주선을 향해 날아오르던 아빠의 그 놀라운 능력도 이젠 사라져 버렸으니 내가 기댈 수 있는 건 오직 나 하나뿐이었다. 아예 소득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나는 나대로 변하고 있었다. 형이 가르쳐 준 걸 틈만 나면 머릿속에서 그리며 각인했다. 유사시를 대비한 민방위 훈련처럼 필요한 순간에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그러는 동안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코앞이었다. 마지막으로 온 통보서에는 공탁과 행정대집행이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퇴거 기일은 벌써 지났다. 안전모, 선글라스, 장갑에 안전화까지, 드러난 데라고는 없이 몸을 꽁꽁 싸맨 사람들이 집 앞을 오가는 일이 잦았다. 모른 척해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방학이 되기 전에 개떼 새끼들에게서 벗어나는 것! 그간 몇 번의 괴롭힘에 머리에서 수백 번 연습한 대로 맞서보려 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대들어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데도 겁에 질린 몸은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발길질이 끝날 때까지 두 팔로 머리를 감싸고 몸을 최대한 웅크린 채로 버티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놈들보다 놈들에게 대들지 못하는 내가 더 미웠다. 나는 그냥 벌레였다. 밟으면 밟히고, 몸통을 끊어도 발버둥만 치는. 이대로는 안된다. 적어도 한 번은 나를 무시할 수 없는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 다락에 처박아 둔 형의 아령을 꺼냈고, 매일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동작마다 횟수 대신 자기 암시를 반복했다. 나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놈들에게 뭔가를 해야 했다.

 마침내 방학 날. 종례를 마치고 청소를 하던 중이었다. 몰려와서 나를 때리고 돌아가는 한 놈 뒤통수에,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대걸레를 힘껏 휘둘렀다. 내게 맞은 놈은 쓰러졌고, 피가 터진 머리를 잡고 뒹굴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잠시 얼었던 나머지 새끼들이 내게 바로 달려들었다. 나는 또 몸을 둥글게 말고 버텼다. 하지만 전과는 달랐다. 나는 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마지막에, 마지막엔 내가 한 번 더 때린다! 발길질이 뜸해진 틈을 봐서 한 새끼의 다리를 잡아 넘어뜨렸다. 나는 재빨리 몸을 날려 그 위에 올라타고 정신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악에만 받힌 엉성한 주먹이 반은 빗나가 허공이나 바닥을 때렸지만, 간간이 얼굴에도 정확히 꽂혔다. 나머지 놈들이 나를 뜯어내려 흔들었지만 나는 깔고 앉은 한 놈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때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올라탄 녀석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미 땀과 피와 눈물범벅이었다. 주먹질을 하는 건 내가 아니었다. 형처럼 하자. 형처럼 때리자. 나는, 형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깔고 앉은 놈이 보였다. 벌써 한쪽 눈언저리가 찢어지고 부풀었다. 그래, 나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너도 나처럼 맞아봐라. 그런데 거기, 예전의 나와 똑같이 잔뜩 겁에 질린. 내가 있었다. 나는 나를 올라타고 때리고 있었다. 터진 입술로 피와 침이 뒤섞인 욕을 내지르면서, 똑같이 두려움에 휩싸인 놈 둘이서, 하나는 때리고 하나는 맞고 있었다. 그 순간, 때리려고 높이 들어 올렸던 팔이 얼어붙듯 허공에서 멈췄다. 나를 지독히도 괴롭히던, 그래서 내가 그토록 저주하던, 하지만 이제 나와 다를 바 없는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찰나였겠지만, 나는 한참 동안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곧, 나머지 놈들의 발길질에 쓰러졌고 다시 몰매를 맞았다.

망가진 얼굴로 절뚝이며 집에 와서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어디를 갔는지, 아빠는 없었다. 찢어지고 터진 데가 아팠지만, 이유는 몰라도 후련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잠이 쏟아졌다. 자고 나면 다 괜찮을 것만 같았다. 형도 집에서 자고 나면 말짱해졌었으니까. 자고 나면 내 얼굴도 아빠가 보고 놀라지 않을 만큼 낫고, 형도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집 문제도 어떻게 되겠지 싶었다.

 나는 정말 깊은 잠을 잤다. 몇 날 며칠을 꼬박 잠만 잔 것 같았다. 눈을 떠보니 방에는 이미 어둠이 가득 한데 매캐한 냄새와 함께 유리창 밖으로 벽난로처럼 붉은빛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조금씩 정신이 들면서 여럿이 웅성대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밖에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 다 저녁때 저리 많은 사람이 모여들 동네가 아니었다. 무언가 깨지고 무너지는 소리, 큰 기계에서 나는 엔진소리도 사람들의 고함보다 더 먼 곳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아빠는 아직도 안 왔나? 아빠가 왔으면 벌써 나를 깨웠을 텐데. 이렇게 밤이 깊도록 나를 그냥 자게 두지 않았을 텐데. 깨워서 밥이라도 먹이려 했을 텐데….

 이불을 걷고 방문을 열자 크게 일렁이는 불길이 눈에 들었다. 벽과 천장에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놀라 소리쳤다.

 “아빠! 형! 거기 없어? 아빠!”

 곧 어디선가 놀랍도록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다. 이리 와.”

 불길 너머로 아빠가 서 있었다. 마당 가운데, 밤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던 그때 그 자리였다. 아빠는 놀라지도, 다급하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아빠, 너무 뜨거워. 갈 수가 없어.”

 “괜찮다. 그냥 걸어 나오렴. 뜨겁지 않아. 하나도 안 뜨거워. 저 불은 너를 어쩌지 못해.”

 아빠가 내게 말을 하고 있었다. 온화한 목소리였다.

 두려웠지만 나는 아빠가 하라는 대로 마루의 불길 속으로 발을 떼었다. 정말 아빠의 말대로, 더는 뜨겁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보호막이 나를 감싸고 있는 것 같았다. 붉고 푸른 불빛이 사방에서 튀어 오르고 쏟아지는데도, 나는 무사히 마루를 지나 아빠가 선 마당으로 나갈 수 있었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둔 옆집은 이미 다 타버렸고, 우리 집도 지붕까지 불이 타고 올라 곧 무너질 것 같았다. 아빠는 마당 가운데서 넋을 놓고 그 불을 보고 계셨다, 형은 불길 밖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모여든 무리를 향해 악을 쓰고 있었다.

 “구경만 하지 말고 뭐라도 좀 하라고, 씨팔! 저기 내 동생이 있다고! 사람이 있다고! 어차피 밀어붙일 거 불이라도 나서 좋다는 거냐?”

 나는 온 힘을 다해 형을 불렀다.

 “형! 형! 나 여기, 괜찮아. 나 여기 아빠하고! 형!”

 형도 다른 사람도, 누구도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불타오르는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는 팔짱을 끼고, 누구는 날리는 불티로부터 애들 손을 잡아끌면서. 신고했느냐고 묻는 사람, 물이라도 떠오자는 사람. 놀라움과 걱정과 분노와 절망이 뒤섞인 표정의 사람들 뒤편으로 얘기를 주고받으며 담배를 피우는 이도 있었다. 안전모와 장갑과 안전화. 선글라스를 벗은 눈은 웃고 있었다.

 나는 문득, 집안 곳곳 숨겨 놓은 돈이 떠올랐다. 꺼내와야 했다. 집에서 건져내야 할 유일한 것이었다. 다른 건 다 없어도 그거면 다른 데 세 식구 살 집을 구할 수 있었다. 나는 뒤돌아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나올 때는 느낄 수 없었던 뜨거운 열기가 나를 밀어냈다. 나는 아빠를 돌아봤다. 아빠라면 다시 보호막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었다.

 “아빠, 저 안에, 돈 가져와야 해. 그거 있어야 우리 살 수 있어.”

 아빠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빠가 웃었나? 잘은 몰라도 나와는 달리 아빠의 표정에는 아무런 간절함이 없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아빠! 집이 다 탄다고! 돈도, 돈도 다 탄다고! 빨리 아까처럼, 좀!”

 소용이 없었다.

 나는 다시 형을 향해 소리쳤지만, 불길 밖 저쪽으로는 아무것도 전달되지 않았다. 마치 양쪽을 가로질러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 있는 것처럼.

 굉음과 함께 지붕이 반으로 꺾이며 가운데가 무너져 내리고 뒤이어 벽체가 쏟아지듯 부서졌다. 크게 날아오른 불티에 사람들이 몇 발짝 물러섰다.

 돈이고 뭐고, 이대로는 아빠도 나도 무사할 수 없었다. 나는 돈은 잊어버리고 아빠의 손을 잡아끌었다.

 “가, 아빠! 나가야 돼!”

 나무로 된 대문과 그 붙은 변소까지 불은 번져 있었다. 누가 대문을 뜯어내 주지 않고서는 나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집이 무너지며 쏟아낸 어마어마한 열기가 주위를 온통 감쌌다. 연기로 숨이 막혀왔다. 기침을 하고 입을 틀어막느라 아빠의 손을 놓쳤다. 들이마신 열기로 숨구멍이 다 타버릴 것 같았다.

 “아빠! 아빠!”

 그 순간, 내 몸에서 모든 무게감이 사라지더니 공중을 향해 천천히 떠올랐다. 하늘로 오를수록 땅 위의 열기는 멀어지고, 다시 숨을 쉴 수도 있었다. 호흡이 돌아오자 나는 서둘러 아빠를 찾았다. 이미 땅은 한참 아래에 있었고 짙은 연기에 가려 선명하진 않았지만, 아빠는 분명 마당에 없었다. 대문도 무너지고, 이미 쏟아져 내린 화염이 마당을 점령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머리보다 높은 저 멀리 하늘에서 한 줄기 섬광이 쏟아졌다. 고개를 들어 보니 아빠가 나보다 한참 높은 하늘 위에 있었다. 내가 전에 수도 없이 보았던 그 불빛에 그랬듯, 아빠는 물 위에 편안히 엎드린 것처럼 하늘에 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아빠의 배쯤에서 실보다는 굵고 밧줄보다는 가는 무언가가 아래로 늘어져 있었다. 그것은 은은하게 반짝이며 계속 아래로 내려와 내 배꼽까지 이어져 있었다. 한 줄에 달린 두 개의 연처럼 아빠와 나는 하늘에 떠 있었다. 다만 지상으로부터 날아오른 연이 아니라 저 우주의 신비한 빛에서 출발한 연줄로 이어진 연. 나는 확신했다. 저기가, 바로 저기가 내가 찾지 못했던 아빠의 배꼽이라고.

 나는 갑작스레 눈물이 터져 아빠를 목 놓아 불렀다.

 아빠는, 하얗게 센 머리와 굽어버린 허리로, 안 그래도 작은 몸이 내게서 멀어지며 점점 더 작아지더니 결국 섬광 속으로 사라졌다.

 멀리, 아주 멀리 있었지만 나는 보았다. 한가득 미소를 짓고 있는 아빠의 얼굴을.

 

(2022 약사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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