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편소설

벤지

by FeelSeoGood 2024. 8. 7.

사진 출처 : 인스타그램 airedale_terrier_lover

 

 

  죽기 전에는 개를 키울 수 없을 줄 알았다. 생각이 많았기 때문이다.

  마음 기댈 놈 하나 곁에 두기를 항상 바랐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유도 늘 있었다. 아파트에 살았고, 개를 돌보는 데 필요한 하루 몇 시간도 빼기 힘들었고, 결정적으로 아내가 개를 무서워했다. 은퇴 후 시골에 내려오고 나서는 건강과 나이가 걸렸다. 입양할 강아지보다 내가 더 오래 산다는 보장이 없었다. 건강수명을 따지면 더 그랬다. 통원으로 시작하겠지만 결국 집보다 병원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질 때쯤에는 제대로 돌보지 못할 테니까. 나는 이미 30년 넘게 혈압약을 먹어왔고, 콜레스테롤과 당뇨 수치도 경계에서 간당간당했다. 노안이 심했고 해마다 떨어지는 체력을 익히 알고 있었다. 내 개의 마지막을 책임질 자신이 없었다.

  서준이 강아지를 안고 온 것은 시골에 터를 잡은 이듬해였다. 흔치 않은 에어데일테리어를 구하려고 서준은 전국을 수소문했고 입대 전 석 달 알바비를 모두 털어 넣었다. 털이 아직 곱슬해지지 않은 어린 수컷이었다.

  “군대 간 동안 아빠가 맡아 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애초에 다시 데려갈 생각은 없었다. 내가 전부터 에어데일테리어를 무척 좋아했다는 걸 서준은 알고 있었다. 나는 한때 에어데일테리어, 비글, 보더콜리, 폭스테리어 사진이 올라오는 여러 인스타 계정을 주기적으로 찾아다니며 ‘좋아요’를 눌렀었다.

  “이름은?”

  “아직. 그것도 아빠가 지어.”

  서준은 어설픈 딴청을 피우며 꿍꿍이를 숨기는 재미를 즐기고 있었다.

  “벤지.” “벤지? 그게 뭐야?”

  “얘 이름.”

  물론, 오래전 영화에서 본 벤지는 에어데일테리어가 아니다. 작았고 털은 더 길고 부드러웠다. 유괴된 아이들을 구하고 그 집의 가족이 되는 떠돌이 개. 개라면 마당 귀퉁이에 묶여 ‘메리’나 ‘쫑’으로 불리던 시절, 가족과 함께 여행도 하는 벤지는 왠지 별세계에 사는 존재 같았다. 그렇더라도 갑자기 왜 그랬는지, 맥락도 없이 그 이름이 불쑥 튀어나왔다.

  벤지는 무럭무럭 자랐다. 짤막하던 다리는 늘씬해졌고 목과 등은 까맣고 머리와 다리는 갈색인 곱슬한 털을 입었다. 별의별 사고를 다 쳤지만, 돌쯤 되자 특별한 지시 없이도 내 의중을 알아챌 만큼 영민해졌고 서준이 제대할 때쯤엔 제법 의젓하게 변했다.

  서준은 복학하면서부터 취업 준비를 하겠다고 했으나 간절해 보이지는 않았다. 토익도 3개월, 자격증반도 2개월을 채우지 못했다. 집에서는 유튜브나 책을 보고, 게임을 하거나 어설프게 우쿨렐레를 쳤다. 뭐라도 빠져들 만큼 끌리는 게 없어 보였다. 입대 전 먹고 자는 시간만 빼고 붙어 있던 배틀그라운드도 가끔 한두 시간이었고, 게임 중에도 전처럼 괴성은 지르지 않았다. 그 소리를 찐으로 싫어했던 서연은 계획도 걱정도 없어 보이는 동생을 향해, 진짜 총을 쏴본 덕에 슈팅 게임은 덜 하게 됐으니 군대가 큰일 했다고 이죽거렸다.

  서연은 공부를 잘했다. 유명 대학에서 학부를 마치고 더 좋은 스펙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어려서부터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게 많았고 그만큼 알아서 노력하는 편이어서 적당한 금전적 지원과 시의적절한 응원 외에 더 신경 쓸 게 없었다. 서준에 비해 많은 돈을 썼지만 아깝지 않았다. 학원 몇 개씩에 개인교습까지 받는 다른 집 아이들에 비할 바가 못 되었으니까. 서연은 사교육에 크게 기대지 않고도 어려서부터 우리 부부의 바람에 부응했고, 나중에는 바란 것 이상의 기대를 품게 해 주었다.

  세간에서 말하는 엘리트 코스에 있다고 걱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고 삐끗하면 어쩌나 하는 염려, 그 실망을 어떻게 감당하겠나 싶어 늘 마음 졸였다. 옆에서 보기에도 더할 수 없겠다 싶을 만큼 목표를 향해 매진했으니까. 그렇지만 걸음마를 할 때부터 전력 질주를 하게 될 때까지, 한 번도 제대로 넘어져 본 적은 없었으니까. 가끔이지만, 그 속도가 서연을 더 크게 다치게 하진 않을까 걱정했다. 어려서부터 뭐라도 두각을 보인 적 없는 서준이 그런 면에서는 안심이었다. 늘 막히고 탈락했으니, 아니 한 번도 한계까지 제대로 밀어붙여 본 적 없으니 또 다른 좌절에도 둔감할 거라는, 모순일 수도 있는 당연한 편견이었다. 속내를 다 알지는 못해도, 정작 서준은 그런 게 좌절인지도 모르고 지나는 것 같았으니까.

  말하자면 아이들의 불안한 미래에 관한 걱정이었다. 하지만 이제 안다. 걱정과 결과 사이에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과 아이들은, 본인이 알든 모르든, 자신이 결정한 방향대로 가게 돼 있다는 것을.

  어쨌든 우리 가족의 노심초사는 대부분 서준의 몫이었다. 뭐가 되려나, 어쩌려고 저러나. 대놓고 티는 안 내도 시선과 대화에는 늘 그런 마음이 묻어 있었다. 중학생일 때는 다그치고 야단도 쳤지만, 고등학교 졸업이 가깝고부터는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 수능을 통해 인생을 도약할 기회가 서준에겐 없다는 걸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서준이 이름만으로는 어디 있는지도 모를 4년제 대학에라도 겨우 적을 두게 되자, 나는 미련 없이 오래 갈망했던 시골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제 스케줄에 따라 재깍재깍 움직이는 서연은 다른 가족과 참견도 도움도 거의 주고받지 않아, 주거지만 같을 뿐 독립적이라 할 수 있었다. 서준에게는 제 엄마의 잔소리와 타박이 넘쳐났다. 네가 먹은 건 네가 치워라, 방 청소를 해라, 집에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가서 뭐라도 해라. 그럴 때마다 제 기분에 따라 때론 수더분하게, 때론 짜증스레 답하던 서준이 대꾸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리기 시작하자 아내는 내게 전화가 잦아졌다. 당신도 뭐라고 좀 해. 아빠잖아.

  할 말이야 많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입을 댈 거였으면 벌써 오래전이어야 했다. 늦어도 열다섯 이전, 아니 중학생이 되기 전쯤. 당시 몇 번 그래보려 했으나 그럴 때마다 의견 대립이 있었다. 문제는 같은데 아내와 내가 생각하는 해결책은 달랐고, 둘 다 고집을 꺾을 마음이 없었다. 몇 번을 그런 후로 나는 방관의 자세를 취했다. 아내의 방식을 수긍하고 응원한 건 아니었다. 해결되지 않을 싸움은 만들지 않는 편이 우선은 낫다고 생각했다. 변명하자면, 피해 가긴 했어도 포기는 아니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어떤 순간이든 꼭 한 가지 정답만 있는 건 아니니까.

  제 엄마가 보낸 것들을 들고 왔을 때 보면, 그다지 의기소침해 보이지 않는 건 다행이다 싶었다. 그래서 그만큼 더 염려되기도 했다. 넌 여전하구나. 상처받지 않는 게 마음이 튼튼해서인지 생각이 없기 때문인지, 사실은 아프면서 겉으로만 그냥 저러고 있는 건지. 오래된 고민이지만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한 나는 해법이 없었다, 그때는.

  나로서는 서준이 마냥 반갑기만 한 건 아니었지만 벤지는 달랐다. 벤지는 서준을 졸졸 따라다니며 성견이 되고는 하지 않던 응석을 부렸다. 모르긴 해도, 내게 보내는 제 엄마 심부름을 서준이 재깍재깍 따랐던 건 벤지 덕도 컸을 것이다.

  한번은 서준을 새벽에 억지로 깨워 뒷산에 올랐다. 간간이 물류센터에 아르바이트를 나간다고 할 때였다. 유독 아침잠이 많은 서준이 자꾸만 뒤처졌다. 일출을 보기 좋은 자리에 제때 닿으려면 서준을 재촉해야 했다. 벤지가 우리 둘 사이를 전령처럼 오갔다.

  결국, 해는 우리가 중턱쯤 올랐을 때 떠올랐고, 되는대로 가까운 능선으로 나아가 듬성듬성한 우듬지 틈으로 겨우 일출을 봤다. 탁 트인 전망이 아니라도 일출은 벅찬 데가 있었으나 서준은 무덤덤했다. 그래도 다르겠지. 애써 산을 올라서 보는 해맞이가 나중에라도 기억에 남겠지. 새해 첫날도 아니고, 유명한 관광지 아니라 해도. 나는 또 그렇게 위안했다.

  “나, 택배 해 보려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학교는?”

  복학하고 세 학기를 더 다녔고 졸업까지도 그만큼이 남아 있었다. 의미 없는 질문이란 걸 알았지만, 계획을 갖고 하는 말인지 그냥 덤벼보겠다는 건지가 궁금했다.

  “일단 휴학. 근데, 꼭 마치고 싶은 생각은 없어. 졸업해 봐야 별것도 없을 거고.”

  엄마를 설득해달라는 서준에게, 일단 집을 나오라고 했다. 독립부터 하라고. 엄마도 이제 다 큰 아들놈 밥, 빨래, 청소는 그만해야 하지 않겠냐고. 그래야 엄마를 설득하겠다고. 좋지는 않더라도 혼자 지낼만한 방은 마련해 준다고 했다.

  “누나는 공부하는 데 돈 썼지만, 너는 그럴 것 같지 않으니 방 하나 해줄게. 말하자면 네 인생 종잣돈이다. 네 밥 네가 벌면서 잘 키우든 말아먹든 알아서 해봐라. 돈도, 네 인생도.”

  “에이, 말아먹긴 뭘 말아먹어? 나 잘할 거야.”

  늘 하던 대로 근거가 빈약한 자신감이 잔뜩 묻어 있었다.

  예상대로 아내는 완강했다. ‘택배 같은 거’나 하기 위한 휴학도 반대였지만, 독립은 더 안 된다고 했다. 같이 있어도 저 모양인데, 혼자 내놓으면 안 봐도 뻔하다고. 그게 방치지 독립이냐고. 고생스럽더라도 그나마 철들 때까지 데리고 있는 게 맞지, 내놓으면 피가 마를 거라고.

  맡겨보자고 했다. 잘 안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우리 아들을 알지 않느냐고. 그래봐야 얼마나 망가지고 탈 나겠냐고. 혼자 있어 보면 책임감이 더 커질 수도 있다고. 어차피 부모가 하나부터 열까지 대신해 줄 순 없으니, 시행착오도 직접 겪어 봐야 한다고. 저 알아 살아갈 나이 됐다고.

  서준은 먼저 휴학했고, 방도 곧 얻었다. 제 앞으로 넣어둔 교육 공제 부금을 보태 보증금을 맞췄다. 덜컥 학교에 서류를 내고 집을 계약하자 아내도 더는 어쩌지 못했다.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면서도 용하다는 데를 일부러 찾아가 이삿날을 받아주었다.

  이불과 침대, 옷장은 길일에 맞춰 옮기고 나머지는 필요할 때마다 천천히 가져가기로 했다. 정확히는 ‘그러기로 한’ 게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서준은 이사 날이 다가오는데도 짐을 제대로 싸지 않고 당장 필요한 노트북, 옷 몇 벌에 양말 따위만 챙겼다. 며칠 다녀오는 패키지여행처럼 백팩에 기내용 캐리어 하나뿐이었다. 닌텐도는 챙겼어도 수건도 비누도 없었다. 보다 못한 아내가 따로 짐을 꾸렸다. 식기 몇 개, 밥통 하나, 수저 두 벌… 처음보다 부피가 많이 커졌다.

  “라면 먹지 마. 꼭 밥해 먹어.”

  “내가? 밥을? 햇반이 더 안 싸?”

  뭐라고 더 말을 보태려는 아내의 소매를 잡아끌어 말렸다.

  서준이 탄 이삿짐 트럭을 따라가는 차 안에서, 자주 들여다보지 말라고 아내에게 일렀다. 짐 정리도, 청소도 빨래도, 먹든 굶든 알아서 하게 내버려두라고. 보고 싶으면 집으로 부르든가 밖에서 만나라고. 뭐라도 필요하면 제가 가지러 올 테니 신경 쓰지 말라고.

  “이제 독립 연습 시작이야, 쟤도 당신도.”

  석 달쯤 지나서 보니 안 그래도 없는 살이 더 빠져 있었다. 약골이 된 건 아니고, 팔다리에 없던 근육이 붙었고 드러난 피부도 보기 좋을 만큼 그을려 있었다. 나를 보러 온 건지, 벤지를 보러 온 건지, 반가워 엉겨 붙는 벤지와 뒹굴며 노조가 파업해서 짬이 났다고 했다. 쉬어서 좋은데, 돈을 못 버니 싫다고.

  “군대보다 힘드냐?”

  “응,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말뚝 박을 걸 그랬어.”

  그러면서도 서준은 꾸역꾸역 일을 계속 해냈다. 아내를 통해 들어봐도 어느 정도 적응한 것 같았다.

  “이제 돼지우리 같진 않더라.”

  “왜 또 가봤어?”

  “그럼 안 궁금해? 가서 봐야 직성이 풀리는걸.”

  “애인은, 없고?” “애인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지금 저 꼴에 애인까지 있으면 어쩌라고? 여자 관심 없는 게 차라리 다행이야.”

  “그러다 쟤 장가가는 것도 못 보면 안 되잖아.”

  “허! 학교는 그만둬도 된다던 사람이 결혼하고 애는 낳아야 한다는 건 아니지? 제 인생 저 알아서 할 일이라면서?”

  “그래도 뭐, 혼자인 거보다는, 지지고 볶더라도 사랑하는 사람 만나서 그러는 게 낫잖아.”

  “당신은 결혼하고도 당신 마음대로 다했으니 좋았나 보지. 나는 아들이든 딸이든 꼭 결혼 안 해도 된다고 봐. 그것도 다 제 앞가림하고 나서 하는 거지. 저 하나도 간수 못 하는 판에 결혼은 무슨 결혼.”

  마땅한 반박을 찾고 있는데 아내가 결론을 냈다.

  “둘이 만나 딱 둘이라도 되면 다행인데, 지금 둘이 만나면 둘이 안 된다고. 그걸 반으로 나누면 혼자일 때보다 못한 거야.”

 

사진 출처 : 인스타그램 olive.the.airedale.terrier

 

 

  스마트 워치로 메시지를 확인한 서준은 빠른 걸음을 멈추고 목줄과 리드줄을 왼손으로 옮겨 짧게 쥐었다. 앞서가던 벤지도 멈춰 서서 혀를 빼문 채 서준을 돌아봤다. 입가에 뽀얀 날숨이 피어올랐다. 서준은 한 손으로 패딩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짧게 답을 보내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다가왔던 벤지도 서준을 따랐고 곧 서준을 앞섰다.

  자정이 가까웠지만 강변에는 개를 데리고 온 사람들이 많았다. 일 나가기 전 산책은 배변이 목적일 뿐 제대로는 아니었다. 벌써 1년 가까이 벤지와 지냈어도 서준은 여전히 한 시간 일찍 깨는 게 힘들었다. 원래도 일을 마치면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어서 약속을 잡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벤지를 데려오고는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벤지는 일수 찍는 사채업자처럼 저녁 산책에 유세를 부렸고 하루라도 빼먹으면 신발과 소파를 씹고 벽지를 뜯어 방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나하고 시골에 있을 때는 그러지 않았다. 물론, 넓은 마당 전부를 제 집 삼던 때와 같을 수는 없겠지. 짖어서 이웃의 항의도 자주 받았다. 결국 성대를 수술하게 되나 걱정했는데 서준이 원치 않았다. 수술비가 만만찮기도 했고 벤지가 무시로 짖으며 천방지축 뛰놀던 때를 서준이 기억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산책을 꼬박꼬박 나가고부터는 모든 게 좋아졌다. 그러니 서준은 저녁 시간을 온전히 벤지에게 맞출 수밖에 없었다.

  “가자, 집에.”

  벤지가 못 들은 척 걷던 방향을 계속 고집하자 서준이 줄을 잡아채며 낮지만 단호하게 ‘쓰읍’ 하는 경고를 날렸다. 그제야 포기한 벤지가 허공을 향해 컹, 빈 짖음을 하고는 서준을 향해 돌아섰다. 둘이 이런 정도의 타협을 이루는 데 반년이 넘게 걸렸다. 그동안 나도 애가 탔다. 처음 한동안은 보채지도 않고 늘 풀이 죽은 채여서 녀석도 뭘 아는가 싶었다. 나 때문에 낯설고 열악한 환경에 던져진 게 미안했다. 벤지의 비위를 맞추려고 서준이 비싼 간식도 사 먹이고 오냐오냐하니 금세 버릇이 없어졌다. 산책에서도 제멋대로 고집을 부리며 서준을 끌고 다녔다. 서준은 유튜브를 찾아가며 하나씩 행동을 다잡았다. 벤지를 가르치려 어르고 달랬다가 야단도 치고 냉정하게도 하는 모양이 서준이 어릴 때 내가 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나저나 낼모레는 정말 얌전히 있어 줘야 할 텐데….

  서연이 서준에게 왔었다.

  “다음 주 목요일, 아빠 제사야. 알고는 있냐?”

  “그럼, 내가 그걸 왜 몰라?” 짜식, 몰랐으면서. 그래도 뭐 괜찮아, 서준아.

  “그날 몇 시에 와?”

  “10시쯤에는 갈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벤지 어떻게 해? 데려가?” 당연히 그래야지. 두고 갈 순 없잖아.

  “엄마가 싫어할 텐데.” 아무래도, 반기진 않을 거야. 그래도 내치진 않을 거란다. 그리고, 벤지도 얌전할 거야. 아빠가 미리 봤어.

  “그래도 아빠 제산데. 아빠도 쟤 보고 싶을걸?” 나야 늘 보고는 있지. 그치만 벤지도 가족이잖니. 데려가렴.

  “안 데려온다고 아빠가 쟬 못 보겠냐? 너도, 나도 엄마도, 보고 싶으면 언제든 보고 있을 거야.” 와! 서연아, 넌 그걸 어떻게 알아?

  “뭔 말? 누나가 어떻게 알아?” 그러게, 내 말이!

  “난 다 알 수 있어. 그럴 것 같아.” “헐, 귀신이냐? 전부 알게.”

  “귀신이라고 어떻게 세상일을 다 알겠어? 우리 아빠니까 그렇다는 거지.” 아니, 귀신은 다 안단다. 서연이 너도, 잘은 모르는구나.

  잠시 뜸을 들이더니, 서준은 골똘한 표정으로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근데, 귀신은 정말 다 알지 않을까?”

  가르쳐줄 수만 있다면, 사실이라고 얘기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얼마나 괴롭고 아픈지도.

  죽고 나서야, 모든 걸 안다는 게 얼마나 큰 형벌인지 알았다. 몰라서 더 좋을 일들이 세상에는 많다. 그리고 하나 더. 귀신은 외롭다. 죽으면 만나게 된다고들 하는 말. 아니다. 틀렸다. 죽으면 그냥 온전히 고립된 혼(魂)이 된다.

  귀신들끼리는 만나지도 못하고,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세상을 다 볼 수 있고 세상 모든 걸 다 알 수 있어도, 거기에는 어떤 개입도 허락되지 않는다. 언제라도, 원하는 무어라도 선택해서 확인할 수 있는 화면이 달린 골방에 갇힌 것 같다. 보려는 걸, 알고 싶은 걸 선택할 필요도 없다. 그냥 애쓰지 않아도 전부 보이고, 관심을 가지는 것과 동시에 모든 게 파악된다. 순식간이다. 시공간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하나의 모양으로 규정하거나 설명하기는 거의 불가능하지만 분명한 질서 속에 부유하는 상태라 할까. 그래도 마음은 보지 못한다. 처음엔 그게 무척 아쉬웠다. 하지만 이 오묘한 질서 속에 좀 있어 보니 알겠다. 마음속을 볼 수 있는 대가는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 크나큰 괴로움일 거라는 걸.

  나는 지금 속계(俗界)와 영계(靈界)의 사이, 분명 떠나왔으나 아직은 세상을 볼 수 있는 상태에 있다. 그나마 아직 영계에 들기 전이라 가능하다. 내 모든 게 압축된, 티끌보다도 더 작은 혼은 천천히, 하지만 쉼 없이 영(靈)의 세계로 움직이고 있다. 거기에 닿으면 세상과의 연은 모두 끊어지고 더는 아무것도 알 수 없으리라. 언제일지는 모른다. 세상이 더는 나를 기억하지 않는 날이 그날일지, 세상에 대한 터럭만큼의 미련도 내게 남지 않으면 그리될지. 배운 적 없고, 물어볼 데도 없다. 이미 말했지만, 혼은 다른 혼을 만날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말을 잘못했다. 귀신도 전부를 다 아는 건 아니다.

  처음에는, 혹시나 어떻게든 저쪽에 닿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영화에서처럼, 집중한다면 작은 물건을 옮기고 한숨 같은 바람 정도 만드는 건 가능할 줄 알았다. 내가 알던 귀신은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몸과 마음을 담는 그릇인 백(魄)이 산산이 흩어지고 없는데, 형체도 없는 혼(魂)만으로 어쩔 수 있단 말인가? 듣지 않고도 보지 않아도 그저 알 수는 있지만, 저쪽으로는 더 이상 아무것도 전할 수 없다.

  죽어서 혼이 되길 잘했다 싶은 것도 있다. 살아서는 할 수 없었던, 서준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되었을 때. 늦었지만 다행이다 싶었다. 대체 얘는 무슨 생각을 하나? 내 아들인데도 내 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던 것들. 저 표정은 뭔가? 저기서 뭐가 저렇게 즐거운 걸까? 아니면 무엇 때문에 저런 발작 버튼이 작동된 건가? 전에는 하루에도 몇 번을 그렇게 고민했었다.

  여기서 보니 아내나 서연도 내가 생전에 알던 그대로는 아니었지만, 서준에 비하면 미처 못 알아준 미안함이 크지 않았다. 서준은, 불가해한 영역이 많았다. 따져보면 세상 어느 관계에서나 분명히 확인할 수 없는 음영은 있게 마련이니 서준도 그랬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서준이 가진 회색지대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벗어나 있었다. 서준을 지켜볼 때면 늘, 아무리 애써도 답이 떠오르지 않는 시험지처럼, 넘을 수 없는 벽 앞에 선 듯 무력했었다.

  이쪽으로 오고서야 서준의 마음이 읽혔다. 다른 것들처럼 의식에 전사되듯 볼 순 없어도, 우회하여 짐작은 가능했다. 전부를 온전히 알 순 없지만 서준의 결정 패턴은 보였다. 원리는 몰라도 공식만 외워 푸는 수학 문제처럼, 서준의 결정과 행동의 예측은 가능했다. 그 선택의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서준은 생각 없이 지내는 게 아니다. 꾸역꾸역 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웃지 않아도 즐거운 상태일 수 있고 슬플 때마다 우는 게 아니듯, 중요한 건 서준의 마음속이다. 사람들이 정한 기준으로 위치를 따져보면, 서준은 평균보다 좀 더 둔감한 쪽이라고 할까? 욕망이 없는 게 아니라, 욕망을 인지하는 감각이 무디다고 할까? 욕망이라는 것이 가진 장점을 습관적으로 과소평가한달까? 적자생존의 기준에서 보면 딱 낙오하고 도태되기 쉬워 보이지만 정작 그런 자신의 상태를 인식하거나 크게 비애를 느끼지도 않는. 나는, 그렇게, 읽었다.

  그러니 나는 이해할 수 없었던 거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여겼으니까. 사람으로 세상에 왔으면 무엇이라도 하려고, 얻으려고, 도달하려고, 만들어 내려고 애써야 했다. 내 생각은 그랬다. 그 과정에서 경쟁도, 협력도, 갈등도, 융화도 하면서 각자의 위치를 찾고, 그게 질서와 문화가 되는 거라고. 그렇게 발전하고 세상이 이어져 가는 거라고. 무엇이든 하려는 의지 없이는 세상이 성립될 수 없고, 어떤 존재이든 존재 자체의 이유가 있을 터이니, 그런 것 없는 사람은 세상에 날 수 없을 거라고. 그러니 매번 나는, 의지가 부족한 게 서준의 문제라고 여겼고 그 의지를 부추길 무언가를 찾아주려고만 했었다. 그때는, 몰랐으니.

  나는 당장 아내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서준은 그런 거라고, 서준이는 이러이러하다고.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귀신은 세상에 아무 영향도 미칠 수 없으니까. 내가 아무리 혼신의 몸짓을 보내도, 아내에게 가 닿지 않는다. 정말, 여기서 내가 알게 된 걸 아내에게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나는 어찌할 수 없다. 너무나 무력하여 절망스럽다. 아내가 알게 되길 바랄밖에. 쉽지 않다는 걸 안다. 요원하다. 하지만… 그러니 인생이다.

  서준에게 필요한 것은, 서준 그대로에 대한 인정이었다. 서준도 기쁘고, 슬프고, 아프고, 행복하다. 다만 그 지점과 강도가 나와 달랐을 뿐이다. 결국, 부모에게서 모든 걸 받아서 태어난 것도 사실이지만, 실은 아무것도 받은 게 없이 태어난 것이라 해도 틀리지 않았다. 누구나 백지 위에, 각자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 영향은 받겠지만, 결국은 제가 할 몫이다. 좋은 영향이든, 나쁜 영향이든, 저에게 흡수되어 제 나름의 것으로 승화되는 것일 뿐. 모든 그림은 저의 것이다. 부모는 다만 좋은 것을 주려고 애를 쓸 수 있을 뿐이다. 이제 와 돌아보면, 나는 그걸 잘했다고 자신할 수 없다.

  서준은 여전히 불안하다. 부모 눈에 믿음직하기만 할 자식 있을까만은, 서준은 이제 시작이라 더 그렇다. 그래도 나는 안다. 내가 아내에게 했던, 확신 없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서준을 독립시키면서 나는 그랬다. 우리는 우리 아들을 안다고. 아내를 설득하려는 공치사이자 나의 바람이었다. 하지만 서준이 잘 해내리라는 바람은 틀리지 않았다. 좋아져야 한다거나,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 없다. 제가 생각하는 충분한 행복을 잊지 않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녹록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반적인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서준은 지금 죽도 밥도 아니다. 더없이 소중한 청춘의 전부를 생존의 굴레에 저당 잡히고도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나는 그저, 벤지가 서준과 함께 있는 게 다행이다 싶다, 벤지가 아니라 서준에게. 벤지마저 없었다면 이나마도 버티지 못했을 거다. 사람은 소중히 여기는 무언가를 지켜야 할 때, 저 하나만 지키면 될 때보다 더 강해지고 더 자라게 되니까.

 

사진 출처 : 인스타그램 airedale_terrier_lover

 

 

  지방은 서연이 썼다. 그리다시피 했지만, 얼추 읽을 만은 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데 그냥 한글로 ‘아버지’나 ‘아비 부’만 쓰고 그 밑에 이름 쓰면 안 돼? 저긴 이름도 없잖아.” 그래, 그래도 돼. 아무렴 어때.

  “아빠라면 그러라고 했을 거야. 그래도, 사진을 쓰는 게 더 낫긴 하겠다.” 어이구, 당신 내 말 들은 거야?

  “아빠 사진 하나 찾아 놔야겠네. 장례식 땐 사진이 너무 젊었어.”

  제기에 음식을 담는 제 엄마 말에 서준이 핸드폰 갤러리를 열었다.

  “저번에, 시골 갔을 때 찍은 거 있는데.” 잘 골라라, 멋진 걸로!

  향연이 짙게 퍼졌다. 서연과 서준이 각각 향로에 향을 꽂았다. 강신, 참신, 초헌, 독축, 계반삽시 따위는 뒤죽박죽이었다. 형식은 필요 없다. 술 한 잔 공손히 올리면 된다. 바라던 바였다. 아니, 그런 것 다 없어도 된다. 남은 가족이 나를 핑계로 만나고, 나를 추억하여 더 끈끈해진다면 그걸로 족하다.

  서연이 절을 한 번 하고는 제상(祭床)을 바라봤다.

  “아빠는 아무래도 저렇게 반듯한 산적(散炙) 쪽 아니고 고춧가루 듬뿍 넣은 주물럭판데. 다음에는 그걸로 올리자.” 그렇지, 돼지는 아무래도 뒷다릿살이 좋지. 근데, 나 아프고 나서 매운 거 말고 간장 양념 더 좋아했는데. 너 모르는구나.

  “누나, 절이나 한 번 더 해.”

  다 같이 마지막 절을 하고도 바로 철상하지 않았다. 아내는 소파에, 서연과 서준은 제상 둘레에 앉았다. 움직이는 건 여리게 떠는 촛불과 천천히 흩어지는 향연뿐인 정적이었다. 벤지도 케이지에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서연이 제 엄마에게 물었다.

  “아직도 섭섭해?”

  아내는 대답 대신 주방으로 가서 쟁반을 들고나왔다.

  “다 자기 복이지. 알았으면 내가 얼마나 더 잘해줬겠어. 네 아빠가 알아서 그걸 마다한 거야.” 그래, 여보. 당신은 그랬겠지. 그래서 그랬어. 당신 힘들까 봐.

  컹! 벤지, 쉿! 왜 네가 대답이냐.

  “이제 풀어 놓을까?”

  케이지로 향하는 서준을 아내가 말렸다.

  “아직. 음식부터 치우고.”

  컹, 커엉! 벌떡 일어나 서준에게 꼬리를 흔들다가 다시 앉으며, 알겠다는 듯 벤지가 대답했다. 어느덧 서준과 벤지는 서로의 말을 반쯤은 알아듣고 있었다.

  나는 병을 알리지 않았다. 가능한 한 모르게 할 생각이었고, 거의 생각대로 되었다. 그래서 식구들은 내가 떠나기 두 달 전에야 모든 걸 알았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슬픔을 다독이고 이별의 의미를 깨닫는 데에 시간의 절대량은 중요치 않다. 길면 지치기만 할 뿐. 아무도 모르는 동안에도 벤지가 감정적 동요 없이 진득하게 나를 지켜봐 주었다. 까닭 없는 죄책감도, 무력한 절망도 없이. 근거 없는 희망에 들뜨지도 않고. 정작 내 죽음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건 저일 텐데도.

  항암은 하지 않았다. 미련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고, 복잡한 얘기지만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나는 추해지는 게 싫었다.

  전부터 그러기로 생각했었다. 혹시라도 암 같은 거에 걸리면, 그것도 어느 정도 진행되어 가능성이 없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로. 반반도 안 되는 확률에 남은 시간 전부를 배팅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봐야 얻을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일 년 정도 늘어나는 기대여명이었다. 나는 원래가 그런 도박과 맞지 않았다. 백 퍼센트 확률로 보장된 남은 생을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항암의 고통으로 채울 이유가 없지 않나? 같은 이유로 가족과도 짐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내게 남은 시간을 수긍하고 그동안 좋은 마음만 아쉬움 없이 교감하고 싶었다. 몇 개월, 몇 년 덜 사는 건 괜찮아도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나는 슬픔은 견디기 어려울 터였다. 내가 이미 살아온 시간에 비하면, 고된 치료로 연장할 여명은 지극히 짧은 것. 그러니 선택은 쉬웠다. 당장 가족들은 섭섭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러기로 했다. 결국은 내 마음을 알게 되리라. 항암은 선택하지 않았어도 정기적인 진료는 받았다. 마지막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진행 추이는 알아야 했고, 예고 없이 몰려오는 극심한 통증을 조절할 약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수술이나 방사선, 화학적 항암처럼 생활을 저당 잡히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은 것일 뿐, 삶을 포기한 건 아니었으니.

  강한 의지로 결연히 실행한 것 같겠지만, 속내는 꼭 그렇진 않았다. 두려움,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두려움이 시시때때로 밀려왔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 죽음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 유예된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에게나 닥칠 일이라는 생각도 위로가 되지 못했다. 내 존재와 삶의 의미에 대한 고민은 유용했다. 그 답을 찾는 과정이, 삶과 죽음에 대한 수긍과 다르지 않았다.

  아내는 늘 씩씩했으니, 내내 그럴 거라고. 내 결정에 대한 변명이거나 혼자만의 위안일 수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서연이는 제 앞가림을 해낼 것이다. 결정적으로 몇 번 더 아빠가 필요한 때가 있겠지만 큰 흔들림 없이 헤쳐 나갈 것이다. 서준은, 믿어서 믿는 게 아니라 다른 선택이 없으니 믿어야 했다. 불안하고 믿지 못한대도 어떻게 해줄 게 없었다. 넘치게 물려줄 것도 없지만, 재산만으로 자식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는 없었다. 불안의 진짜 이유는 정말 흥미를 갖고 몰입할 무언가를 찾은 서준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미안하기도, 만만하기도 한 건 벤지였다. 병을 알기 전부터, 녀석은 이미 무얼 알기라도 하듯, 나를 보고 뜬금없이 컹, 짖곤 했다. 조르는 것도 경고도 애교도 아닌 짖음. 한 번 컹, 하고는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돌이켜 보면 벤지가 내게 곧 닥쳐올 것들을 예감했던 건가 싶지만, 오히려 나는 그런 관심만큼 녀석이 내 속도 헤아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책임을 못다 한 죄책감을 상쇄했다. 가족들에게도 숨긴 것을 녀석과는 전부 나눴으니, 나의 죽음 뒤에도 가장 의연할 거라고.

  고백하자면, 때로 지독하게 외로웠다. 아프기 전에도 가끔 그랬지만, 병원을 오가던 때만큼 깊고 진하지는 않았다. 눈앞에 스치는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쓸쓸하고 힘들어 보였다. 처진 어깨, 굳은 얼굴, 허적대는 발걸음. 몸에서 희망이란 것이 스멀스멀 새 나가 바람 빠진 풍선 같던 사람들. 한 번도 부푼 적 없는 풍선과, 터질 듯 부풀었다 쪼그라든 풍선은 달랐으니까. 늘어져 쭈글쭈글한 채로 어찌 해보지도 못하고 하루치의 삶을 견디고 있는, 껍데기인지 사람인지.

  되도록 입원은 피하려 했지만, 어쩔 수 없을 때는 벤지를 아들에게 보냈다. 검사를 위해 하루 이틀 비우는 건 몰라도, 그 이상 혼자 두긴 어려웠다. 원래 연고가 없기도 했고 내 친화력도 좋지 않아 인근에 마땅히 부탁할 데가 없었다. 무엇보다 나 죽은 뒤 벤지를 보낼 데가 아니라면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정들이고 싶지도 않았다. 벤지처럼 큰 개에게 적당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서준이밖에 없었다. 벤지가 잘 따랐고, 나중에는 결국 서준에게 벤지를 보낼 생각이었으니까. 그래야, 나도 안심이 될 것 같았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러니 새벽부터 저녁까지 녹초가 되도록 뛰어다니는 걸 알면서도 서준에게 맡겼다. 서준을 벤지에게 맡기는 것이기도 했다. 개가 주는 위안을 서준이 알았으면 싶었다. 그래서 가끔은 서준이, 저만의 힘겨운 시간을 벤지에 기대 건너갈 수 있기를 바랐다.

  “고추장 더 넣어서 쓱쓱 비벼 먹어 봐.” 여보, 또 그런다. 그냥 둬.

  “아, 난, 그냥 탕국이랑 먹는 게 좋아.” 서준이 고분고분하진 않다.

  “택배는, 계속할 거야?”

  서연도 보탠다.

  “누난, 누구 없어? 시집은 안 가?”

  잠시의 짬도 없이, 서준이 서연에게 질문을 되돌렸다, 퉁명스럽게.

  “얘가 뜬금없이, 뭐냐 그 얘긴.” “택배나 시집이나, 뭐 달라?” 서연아, 서준아, 왜 그래. 그만 해.

  컹! 식탁 옆에 엎드렸던 벤지가 귀를 쫑긋 세우고 둘의 말을 끊었다.

  “밥 먹어. 아버지 제사 음복인데, 많이 먹어.” 당신도 표정 풀어. 차린다고 애썼네. 고마워. 나도, 먹은 것처럼 배불러.

  모처럼 셋이 마주 앉았지만, 보는 곳도 마음도 다 달랐다. 각자에게는, 자신이 그걸 알든 모르든, 각자 지금의 시선과 마음을 가진 이유가 있었다. 그러니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거나, 상대적으로 더 낫다는 식의 판단은 불가능하고 불합리하다. 전에는, 같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그 안에서 같은 걸 찾으려 애썼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가족인데, 우리 사이에는 당연히 같은 게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오래 보아서 익숙한 것을 운명적으로 그런 거라고 오해하여 더 많이 기대하고, 참견하고, 함부로 대하고, 실망했다. 그만큼 넘치는 책임감에 버거웠고, 같은 무게의 죄책감도 늘 있었다. 그러면서 그 모든 걸 사랑이라 우겼다. 서로에게도, 자신에게도.

  아내는 남은 음식을 몇 개의 용기에 종류별로 담았다. 기름으로 얼룩진 그릇들은 세척기 안에서 깨끗해지고 있었고, 식탁 의자에 앉은 서연은 텔레비전을, 이어폰을 끼고 소파에 누운 서준은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서준아!”

  부르는 소리를 못 들은 서준을 향해 아내는 목소리를 높였다. “서준!”

  재촉과 힐난을 담은 제 누나의 시선을 알아챈 뒤에야 서준이 이어폰을 빼고 엄마를 봤다.

  “알뜰히 챙겨 먹어. 아무리 냉장고라고 해도 오래 두면, 맛도 맛이지만 상하기도 한다.”

  엄마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핸드폰으로 눈을 돌린 서준이 대답했다.

  “염려 마. 버릴 일 없어. 나, 돈 모으려면 식비도 아껴야 해.”

  서준을 바라보는 아내의 표정이 복잡했다. 나는 정확히 안다, 불만과 대견함, 짠함의 어디쯤 있는 그 마음을.

  “쟤 사룟값 때문이지?”

  서연이 벤지를 턱으로 가리켰다.

  “사료뿐이게? 간식도 먹고 약도 먹어.” “정 힘들면, 쟤…,” “힘들면 뭐?”

  금방 말을 잇지 못하는 서연을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보던 서준이 결론처럼 말했다.

  “염려 마. 힘든 거 없어.”

  컹! 벤지도 서준 옆에 붙어 서서 대답했다.

  “늦었는데 자고 가면 좋을걸.” “그러면 내일 새벽에 더 바빠서 힘들어. 얘도 그렇고.”

  제 얘기를 하는 걸 아는지, 벤지는 허공을 향해 컹, 하고 한 번 짖더니 이내 벽에 걸린 사진을 향해 한 번 더 컹, 하고 짖었다. 나와 아내가 같이 앉고, 서연과 서준이 그 뒤에 나란히 선 가족사진이었다.

 

 

사진 출처 : 인스타그램 bruno_the_airedale_terrier

 

  차가 마을로 접어들자, 벤지는 집이 보이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안달을 냈다. 목줄을 안전띠에 걸어두지 않았다면 운전이 힘들었을 것이다. 며칠째 퍼붓던 장맛비가 그친 하늘은 맑고 높았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오래 비운 티가 곳곳에 보였다. 진입로의 시멘트 포장은 갈라졌고 마당에도 길에도 중구난방으로 풀이 자랐다. 그나마 포장이 없는 부분에는 군데군데 물웅덩이도 생겼다.

  차단문 앞에 차를 세우자 벤지가 더 참지 못하고 창을 긁었다. 서준은 뒷자리 문을 열고 선심 쓰듯 목줄을 풀었다. 차를 박차고 나온 벤지는 닫힌 문 아래를 통과해 쏜살같이 집으로 내달렸다. 나를 찾겠지. 내게 안겨, 정신없이 꼬리를 흔들며 얼굴을 마구 핥아대고 싶겠지.

  일부러 신경 써서 물웅덩이를 지났는데도 차에 튄 흙탕 앞에서 서준은 인상을 구겼지만 이내 무심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지저분해졌다는 것 때문에 생긴 단순한 짜증과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빠른 수긍이었지, 뭐라도 애써본 결과가 의도대로 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었다. 예전의 나는 그런 걸 서준의 단점으로 여겼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정해 놓은 목표에 도달하려 애쓰는 게 중요하긴 해도 너무 애살스러울 필요는 없다. 더러워질 걸 알고 웅덩이를 피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대비하는 습관이 있으면 좋겠지. 그치만 씻어내면 그만일 흙탕 정도 괘념치 않는 느긋함도 필요하다.

  서준은 차단문을 지나고도 내려서 문을 잠그지 않고 그대로 마당까지 차를 몰았다. 다시 나갈 일이 있는 건 아니었다. 이제는 빈집이 아니니, 누가 오더라도 직접 맞으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외따로 떨어져 있긴 해도 내가 살던 곳이고 서준에게도 충분히 익숙한 공간이니 두려울 건 없었다. 그렇게 다시 집이 열리고 새 숨을 쉬는 거다.

  마당 어디서도 나를 찾지 못한 벤지는 현관문을 긁으며 서준을 향해 낑낑댔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옛집에 오니 잊은 건지, 아예 몰랐던 건지, 벤지는 잔뜩 기대에 차 있었다. 서준은 그런 벤지를 한동안 멀찍이서 지켜만 봤다. 나는 정말로 끝내 술래를 따돌린 숨바꼭질 아이처럼 뒷마당쯤에서 천연덕스레 걸어 나가고 싶었다. 간절한 바람에 응답하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녀석을 거칠게 끌어안고 한 번 더 뒹굴고 싶었다. 서준은 먼저 벤지를 앉히고 등허리를 토닥여 달랬지만, 벤지는 서준이 문을 채 열기도 전에 문틈을 비집어 들며 컹, 컹, 나를 불렀다.

집안에는 오래 묶은 퀴퀴한 공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서준은 먼저 커튼을 걷고 창을 열었다. 비워둔 사이 차지하고 있던 것들을 꼼꼼히 걷어내는 제대로 된 청소는 미룰 모양이었다. 우선 마트에서 사 온 것들을 부엌에 옮겨 놓고 뒷마당으로 나가는 문에 걸린 창고 열쇠를 빼 들었다. 빗물에 젖은 자물쇠는 붉은 녹을 땀처럼 흘렸고, 오랜만에 열리는 문은 비명 같은 소리를 냈다. 농기구, 정원 관리 도구, 씨앗 몇 봉지, 버리지 못한 가재도구나 가전제품들이 차지하고도 공간에 꽤 여유가 있었다. 서준의 베이스캠프가 될 곳이었다. 서준이 창고를 꼼꼼히 살피는 동안 풀이 죽은 벤지가 다가왔다.

  “그러지 마. 이제 여기서 뭐라도 해야 해. 우리 둘, 여기서 살아야 하니까.”

  서준은 무릎을 굽히고 목덜미에 팔을 둘러 벤지의 턱을 긁었다.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벤지도 창고를 찬찬히 둘러봤다.

  “넌 좋지?” 컹!

  벤지의 대답이 우렁찼다.

  “가자, 아빠한테 인사해야지.”

  서준은 벤지를 데리고 마당 구석에 혼자 비죽이 솟은 자작나무 앞에 섰다. 하얗고 곧고 어딘가 외로워 보이는, 매양 그런 자작나무다. 그 아래에 내 분골이 묻혔다. 서준이 이렇게 빨리 돌아올 줄은 몰랐지만, 때가 되면 어떻게든 이 집의 소용이 생기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니 내 육신의 마지막 조각을 거기 두어야 했다. 남은 가족에게 특별한 의미가 더해진다면 집은 내내 지켜질 테니.

  나무를 훑어보는 서준의 얼굴이 많이 상했다. 꼬박 3년 택배를 했다. 발품과 땀으로 채운 그 시간이 내내 무난하진 않았다. 특히 지난 몇 달은 최악이었다. 고가 물품의 배송 사고로 홍역을 치렀고, 교통사고도 두 번이나 있었다. 다행히 사람이 상하진 않았지만 책임을 명확히 나누기 어려운 상황들이 겹치다가 결국 억울함만 남았다. 그간 모은 돈을 다 들이고서야 겨우 마무리가 되었다. 지난 시간이 허무했고 앞으로라고 다를 것 같지 않았다. 결국 서준은 여기로 내려오기로 하고 방을 뺐다.

  이번에 아내를 설득한 건 서연이었다. 아내는 서준을 다시 집으로 들이려 했다. 학교를 마치게 하고, 늦었더라도 자기가 생각하는 정석을 따르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서연과 서준 둘이서 나름의 결론을 내린 뒤였다. 나중에라도 엄마 생각이 맞다 싶으면 그렇게 하겠다는 여지는 남겼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기 전에 나는 서연을 따로 불렀었다.

  종교가 없는데도 세상의 모든 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던 서연이 태어나던 날의 기쁨과 그 무엇보다 반짝반짝 빛났던 서연의 어린 시절과 여전히 무엇이든 알아서 계획하고 이루어 내는 대견함을 얘기했다. 그럼에도 늘 칭찬과 격려에 인색했다고, 혹시 자만하게 될까봐 망설였다는 고백도 했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이제 돌아보니 사랑을 다 전하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젊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나이 든 사람들이 흔히 가지는 두려움과 서글픔에 대해, 특히 여자들이 세월 앞에 느낄 감정의 변화에 관해서도 얘기했다. 내 의도를 읽은 서연이 그랬다. 아빠, 엄마는 아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해. 나는, 서연의 의도대로, 안심하기로 했다. 너도 그럴 거지? 엄마 옆에 튼튼하게 있을 거지? 그 어느 때보다 정성을 들여 또박또박 얘기해 줬다. 사랑해, 서연아.

  “시골에 있는 집은, 서준이 주자.”

  서연이 갈 채비를 마쳤을 때 무심히 건넸다. 너는 타고난 능력에 부단한 노력으로 단단한 땅 위에 서 있지만, 서준이는 아무래도 버티고 설 데가 없어 불안하다고. 얼마간 재산으로서의 의미도 있겠지만, 그 집이 서준이와 어울린다고. 거기서 뭐라도 준비할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나를 거기 묻어달라고.

  농사도 짓고 유튜브를 할 수도 있다. 혼자서 책을 읽으며 뭔가를 배울 수도, 자동차 정비 같은 걸 해볼 수도 있다. 서준을 지켜보며 들었던 생각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혹은 그러면 잘 어울리지 않을까, 했던 것들. 선명하진 않았다. 그저 내 상상뿐일 수도 있다. 서준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 분명치는 않다. 텃밭에 어설픈 푸성귀나 기르며 지인들이나 가끔 봐줄 영상을 올리고, 똑 부러지는 소용도 없을 독서에 길어야 몇 주 혹은 몇 달을 뚝딱거려보다가 스패너와 컴프레서가 녹이 나도록 내던져 둘 수도 있다. 어쩌면 반대로, 직거래 사이트를 통해 전국으로 배송할 만큼의 경작과 몇십 혹은 몇백만이 구독하는 채널을 만들지도 모른다. 관심을 둔 분야에 깊고 꾸준한 천착을 하며 자기 모터사이클 정도는 알아서 손볼 수 있게 될지도. 어떤 건 실패인지도 모르는 실패를 거듭하고, 어떤 건 의외의 성취를 이루며, 때로는 몰랐던 재능을 발견하면서. 고만고만한 보통이 얼크러진 일상에서 숨어있는 기쁨을 발견하면서. 그렇게 서준에게는, 성취도 좌절도 하루면 꼭 그 하루만큼, 한 달이면 꼭 한 달만큼만이었으면. 더도 덜도 말고 딱 그만큼이었으면. 지나친 희망도, 무의미한 자책도 없었으면. 그게 정말 내가 바라는, 응원이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서준과 벤지가 나란히 나무를 보고 서 있다.

  나무 끝에 걸린 뭉게구름이 여름을 따라 천천히 흐른다.

  그 아래, 노오란 해가 긴 하루를 정리하며 넘어간다.

  모든 풍경이 그대로인데, 붉은 하늘 저 끝 어딘가가 아주 조금씩 벌어지며 틈이 생긴다. 자연히 만들어진 빛의 산란 때문인지, 살면서 여러 번 마주치는 설명할 수 없는 착시 때문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낯설지 않다. 늘 보던 풍경처럼 익숙하다. 처음에는 손톱만 한, 자세히 보아야 확인되는 공백이었다가 조금씩 커져서 의식하지 않아도 알 만큼의 크기로 부푼다. 그 틈이 자라날수록 점점, 내 혼은 서서히 그곳으로 가까이 흐른다. 거기서 나를 끄는지, 내가 스스로 다가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내게는 이 전부가 너무나 자연스럽다. 누가 설명해 준 것도 아니고 내가 배워 익힌 것도 아니다. 내 영혼이 스스로 정돈되고 차분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문득, 나는 알게 된다.

  그래, 이제 때가 되었구나.

  나는 서둘러, 하지만 예견하고 있었던 듯 차분히, 소중한 기억을 하나씩 떠올리기 시작한다. 애써본다면, 기억을 간직할 수 있지 않을까? 전부는 아니라도, 적어도 하나쯤은. 끝내 그러지 못한다 해도, 소중한 기억을 품은 채 마지막을 맞는 것도 좋으리라.

  나는 기억한다.

  살면서 이룬 소박한 성취에 들뜬 밤과 그보다 많았던, 외면하고만 싶은 수많은 자격지심으로 인한 불면을. 호기롭게 비겁하였고 당당하게 부끄러웠으나 미처 수습조차 못 한 나를 나무람도 없이 품어준 사람들을.

  나는 기억한다.

  아내를 처음 만난 날, 운명이 될지도 모르고 그저 감당할 수 없는 설렘에 어색하기만 했던 봄을. 함께라는 이유만으로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세상 가장 극적인 순간으로 느끼며 지내던 때를. 불타오르는 사랑보다 믿음이 주는 안정감이 더 영원함을 서로에게서 깨닫던 때를.

  나는 기억한다.

  서연이 강아지처럼 달려와 내 품에 안기던 퇴근을. 내가 잡고 있던 손을 뗐는데도 혼자서 위태위태 앞으로 나가던 첫 자전거를. 서연이 처음 받은 상을 내밀며 아무 말 없이 ‘거 봐, 내가 해냈지?’ 하는 표정을 짓던 오후를.

  나는 기억한다.

  같이 간 목욕탕에서 조막만 한 손으로 내 등을 밀던 서준의, 용을 쓰느라 상기된 얼굴을. 오목에 졌다고 삐져서 울던 조그만 아이를. 얼추 비슷해졌겠다 싶어 재어 봤더니 서준의 키가 나보다 컸던 날을. 팔씨름으로 나를 이겼던 날을.

  나는 기억한다.

  유치원부터 초중고까지의 졸업식, 어려서는 신나고 들뜨기만 하더니 자라며 점점 진지하고 어른스러워지던 아이들의 표정을. 두려움으로, 서글픔으로 무릎이 꺾이려 할 때 내 손을 꼭 잡아 주던 아내와 아이들을.

  그래도 점점 희미해진다. 몽롱한 잠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나는 가벼워진다. 억울하거나 슬프지는 않다. 저항하지 않는다. 내가 있던 자리는 나무 하나 쓰러진 숲처럼, 잠시 비겠지만 곧 새 나무가 자랄 것이다. 새 나무가 자라는 한 숲은 남는다. 그러니 나는 평온히 사라질 것이다. 내게 속한 모든 것도 그러할 것이다. 기억이 사라지고, 내가 여기 있었다는 사실도 사라진다. 나는 나도 잊을 것이다. 나는 이제 막, 모든 것의 끝이 보인다.

  그리고, 감사하다.

  벤지가, 나를 향해, 컹, 커겅, 짖는다.

 

사진 출처 : 인스타그램 olive.the.airedale.terrier

 

(2024. 8.)

'단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려라 거북이  (3) 2024.12.28
나는 자랑스런  (2) 2023.11.30
성혼선언  (0) 2023.10.19
안녕 유코  (0) 2023.10.10
안개  (0) 2023.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