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뭐라고 하든, 아니라고 하지 마. 그냥 네, 네 하고, 그런가 보다 해.”
자리에 앉자마자 이어폰을 끼고 차창 밖만 보는 하린에게, 은희는 작심하고 주의를 줬다. 하린이 한쪽 이어폰을 빼며 되물었다. “뭐라고?”
“할머니. 오랜만에 만나는데 괜히 따지고 딱딱한 말 오가는 거 싫어. 할머니 건강도 그렇고, 이제 뭐라 한다고 바뀔 수도 없는 연세야. 할머니가 널 얼마나 아끼는지, 너도 알지?”
KTX는 통로까지 가득 찼다. 설에 맞춰 내려가는 건 몇 년 만이었다. 매년 설은 시댁에서 쇠고 대구에는 설 다음 주말에나 다녀오곤 했었다. 큰집에 교통사고가 없었으면 이번에도 그랬을 텐데, 명절에도 하린이 큰아빠가 퇴원할 수 없었다.
“아들도 없는데 설은 무슨, 이번에는 그냥 쉬는 걸로 하자.”
덕분에 설날 떡국은 친정엄마와 같이 먹게 됐지만, 은희는 시어머니가 내심 섭섭했다. 작은아들은 아들이 아닌가?
명절 기차표 예매기간은 이미 지났고, 은희도 남편도 장시간 운전은 힘들었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당일 임시표라도 기다려 볼랬는데 하린이가 모바일 앱으로 어렵게 KTX 좌석을 구했다. 아무래도 세상 사는 법은 요즘 애들이 낫다고 은희는 생각했다.
“인터넷으로 다 돼. 요즘 누가 역 가서 줄 서?”
한눈 안 팔고 열심히 살아왔어도 세상 돌아가는 걸 이렇게 모르는구나 싶었다. 덕분에 꽉 막힌 도로를 피해 편하게 가고는 있지만, 그런 걸 어떻게 하는지 배우는 건 또 간단치 않은 일이었다. 자기도 벌써 이런데 엄마는 더 하겠지 싶다가, 은희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엄마는 이런 거 다 몰라도 잘 살고 계시지, 암.
“어어서 버스비 대주고 일당 준다고? 말 같지도 아인 소리 하지 마라. 내가 서울 갈 때마다 5만 원, 10만 원씩 꼬박꼬박 낸다. 내 돈 내고 내가 가고 싶어가 가는 기다. 내가 인제 학교는 안 나가도 평생을 나라 잘되라고 아아들 갈킸는데, 사회가 이 모냥으로 돌아가는데 우예 가마이 있겠노!”
퇴직 후 친구들과 등산도 다니고 교회 봉사활동도 나가던 엄마는 언젠가부터 태극기 집회에 열심이었다. 촛불이 광화문을 가득 채웠을 때, 엄마도 새벽부터 전세버스를 타고 상경해 그 반대편에 힘을 보탰다.
그 무렵부터 엄마의 카톡 메시지도 달라졌다. 전에는 당신과 은희네의 안부, 일상에 관한 얘기들이었는데, 그때부터는 다른 사람 글이 더 많았다. 되새겨 봄 직한 고전이나 짧은 얘기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정치 관련 글이었다. 특정 정치인에 대한 원색적인 비방과 노년 세대의 울분과 책임감을 자극하는 사회를 향한 개탄들. 시작이 어딘지도 모를 가짜뉴스도 많았다. 전자레인지를 쓰면 암에 걸리고, 그래핀이 든 코로나 백신은 맞으면 안 되고, 박정희 대통령 도안의 10만 원 지폐가 나올 거고,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공식적으로 포기했으니 기쁜 날이라거나, 신안군 어디에서 세계적으로 희귀한 광물이 다량 발견되어 세계가 우리에게 꼼짝도 못 하게 되었다는 등등. 얼핏 봐도 얼토당토않은데 꼭 공인된 사실처럼 사진과 보도 영상도 있고 국내외 유명 교수들 이름도 거론되어 있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은희에게는 흥미 없는 것들이었다. 잠도 깨기 전인 이른 아침이나 한창 일하다 말고, 부랴부랴 엄마의 카톡을 열어보고 맥이 빠졌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일일이 답을 썼다. 정 보낼 말이 없으면, ‘네, 그런가 보네요.’ 하고 형식이라도 차렸다. 혼자 계신 엄마의 외로움이 보였기 때문이다. 딸마저 반응이 없으면 세상에 누가 저런 것에 대꾸하나 싶었다.
일 없는 주말에, 상경한 엄마를 한두 번 보러 가기도 했다. 거리를 가득 메운 태극기와 성조기, 커다란 확성기 소리, 열정적으로 떠드는 노인들 속에 엄마가 있었다.
“날도 추운데 서울 너무 자주 오지 마세요. 그러다 아프면 엄마만 손해야.”
“옳은 일 하다 아프믄, 아플 만도 한 기지.”
“엄마, 무슨 독립운동 해요?”
“니, 지금 세상 똑바로 봐야 된데이. 지금, 독립운동 할 때보다 더하믄 더했지 덜 한 거 아이다. 이카다 이 나라 빨개이한테 다 넘어가뿐다!”
멀리서도 딸을 알아보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나눠 쥔 두 손을 흔들어 반기던 엄마가 맞나 싶게 단호했다. 스피커 소리가 하도 커서,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한껏 소리를 질러야 했다. 바로 옆에서는 빨간 조끼를 입은 할아버지가 단상을 향해 연신 ‘옳소’ 하며 깃발을 흔들고 있었다.
“다 알고리즘 때문이야. 비슷한 영상이나 기사를 AI가 알아서 자꾸 찾아주거든. 그걸 다 보면 더 그런 쪽으로 또 찾아서 보여줘. 그러니 점점, 다른 쪽은 다 틀리고 잘못된 게 되는 거야. 사람도 그래. SNS에서 비슷한 주장 하는 사람들끼리 어울리라고 친구를 추천해. 그 안에서 자기들 마음에 드는 얘기들만 잔뜩 주고받는 거지. 그러다 보면 이게 종교 비슷해져서 사명감 같은 게 생기는 거야. 그럼 어떻게 나 혼자만 알고 말아? 주위에 자꾸 퍼 나르고 전도해야지. 진실을 모르는 안타까운 친구와 자식을 구원해야 하니까.”
은희는 하린이가 하는 말을 대충은 알아들었지만 전부 이해되지는 않았다. 아무리 끼리끼리 모인다 해도 누가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아니다 싶으면 그만하게 되지 않겠나 싶었다.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하린이 너는? 그럼, 너도 똑같은 거 아니니?
하린이는 촛불을 들었다. 광화문에서 탄핵을 외치다 새벽에야 들어오곤 했다. 정치 문제에 민감했고 방송과 유튜브와 인터넷 기사를 열심히 찾아봤다. 은희에겐 이름도 생소한 팟캐스트라는 것도 달고 살았다. 실제 탄핵이 되고 정권이 바뀌니 더 신이 나서 쫓아다녔다. 다른 애들은 취업 고민으로 토익, 토플에 인턴 같은 스펙을 쌓느라 정신이 없는데, 졸업을 코앞에 두고서도 그러는 게 걱정스러웠다. 그러다가 기대를 걸었던 법무부 장관이 한 달 만에 사퇴하자 정치 회의론자가 되어 그저 미래를 비관적으로만 봤다. 그래도 은희는 늦게라도 제 앞가림하는 하린이가 잘됐다 싶었다.
그런 것과 상관없이 하린이는 외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은희가 외동이니 엄마에게는 하나뿐인 손녀였다.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엄마는 하린이의 졸업식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고 대학 학비도 대주었다. 하린이가 촛불집회에 나가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몰라서 그랬는지, 알면서도 모른 척한 건지.
그런데도 하린이는 할머니의 카톡에 한 번도 답을 하지 않았다. 은희가 대구에서 온 카톡 얘기를 꺼냈을 때 귀엽게 찡그리며 ‘나도!’ 하고 핸드폰을 흔들길래 물어봤었다.
“넌 뭐라고 답해?”
“답?”
“할머니한테 뭐라고 보내냐고.”
“보내긴, 뭘 보내? 나 그런 거 안 해. 할 말이 없잖아.”
그래도 제 생각을 조목조목 들이대며 따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사실 젊은 애들은 멀쩡한 말도 줄이고 줄이니, 카톡도 몇 줄씩 쓰는 게 안 되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가끔 안부 인사는 드려라.”
은희가 할 수 있는 건 그런 부탁이 전부였다.
은희나 남편도, 몰라서 가만히 있는 건 아니었다. 엄마나 하린이만큼은 아니라도 어떻게든 판단이 돌아갈 정도는 됐다. 온 나라가 관심 둘 건 그것밖에 없는 것처럼 떠드는데, 아무것도 모를 수는 없었다. 설마 정말일까, 어떻게 저 지경까지 될 수 있나 싶기도 했고, 그렇다 해도 저 정도는 너무 심하지 않나, 이러다 정말 나라가 옛날로 돌아가는 건 아닌가 하는 염려도 됐다. 하지만 어쨌든, 그게 뭐 그리 중요한 일인가 싶었다. 아니, 별일 아니라고 무시할 수는 없지만 만사 제쳐두고 뛰어들 일은 분명 아니었다. 역시나, 은희나 남편이 나서지 않고도 나랏일은 어떻게든 흘러가고 정리가 되었다. 그럴 생각도 없었지만, 나섰다 해도 결과가 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돌아가는 모양이 전부 성에 차진 않지만, 세상 사는 게 전부 내 맘 같을 순 없었다, 당연히.
“얘는 요즘 뭐 하고 다니는 거야? 알아서 잘하고 있지?”
하린이 없는 저녁이었다. 습관처럼 틀어 놓은 뉴스는 태반이 정치 얘기였다. 남편은 샤워하면서 애벌로 빤 작업복을 세탁기에 넣고 늦은 저녁상에 앉았다. 땀 먼지로 범벅된 작업복은 벗어서 바로 세탁기에 넣을 수 없었다.
“걱정 마. 걔도 이제 나이가 몇이게. 부모가 평생 보태줄 능력 안 되는 거 다 아는데, 저 알아서 안 하겠어?”
대로에 가득 찬 시위 인파가 화면에 나왔다. 열렬히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드는 사람들. 곧이어 어딘가 열기가 식은 듯 촛불을 들고 앉은 사람들.
“그래도 속 편한 사람들 참 많네. 어휴, 저게 대체 몇 명이야? 좋은 세상이야. 일 안 하고 저런데 모여서 힘 빼도 되는 사람이 저렇게 많으니.”
“일을 안 하긴 왜 안 해? 토요일이고 일요일이니까 저러지. 다들 우리처럼 공기 맞춘다고 주말에도 나가야 되는 줄 알아?”
남편이 짐짓 목소리를 높였다.
“내 주위엔 다 그런 사람뿐인데, 안 그런 사람을 못 봤다. 주말에 일 없어도 피곤해서 잠이나 자야지. 저럴 힘이 있다는 건 주중에 하는 일도 만만하다는 거야.”
“저 사람들도 다 자기 일은 힘들겠지. 남의 돈 먹는데, 쉬운 일이 어딨어?”
밥에 찌개를 떠넣으며 남편이 말을 돌렸다.
“장모님, 요즘도 서울 오시나?”
“계속 그러나 봐. 그래도 요즘은 뜸해. 대통령 바뀌었잖아. 몸 생각해서라도 이제 그만 다니라 해도, 그렇게 올라왔다 가면 오히려 충전이 된다나.”
“튼튼하시네. 딸, 사위 돈 더 많이 벌게 해주라고 좀 싸워주시지. 태극기 쪽 얘기는 전부 잘 먹고 잘사는 사람 편드는 건데, 그거 아시나?”
“당신도 정치 공부 좀 했어? 태극기 싫고 촛불 편이야?”
“촛불? 걔들도 다를 거 없어. 걔들은 걔들끼리 다 해 먹겠다는 거고, 태극기는 태극기끼리 다 해 먹겠다는 건데, 뭐가 달라? 어디라도 정말 우리 같은 사람들, 하루하루 성실하게 먹고사는 사람들 위해주는 쪽이 없어. 전부 무슨 보수니, 진보니, 경제니, 이념이니, 뜬구름 잡는 얘기만. 그런 건 모르겠고, 그냥 착하게 살면 딱 그만큼 보상받고, 배우고 싶은 사람 가르쳐 주고, 딴사람 몫 안 넘봐도 그냥그냥 살아지는 나라 만드는 게 그렇게 힘드나? 남보다 잘 살겠다는 것도 아니고, 남만큼만 살겠다는 건데.”
“어이구! 당신 국회로 가야겠네!”
웬만해선 하지도 않지만 해 봐야 무용한 게 정치 얘기였다. 그래도 크든 작든, 투표 한 번 빼먹은 적 없었고 세금도 꼬박꼬박 냈다. 어려운 사람 돕고 살지는 못해도, 남의 것 욕심내거나 눈먼 행운 바라지는 않았다. 그나마 앞으로도 계속 실없는 얘기 나누며 따뜻한 저녁 한 끼 함께 할 수 있는 게 은희와 남편이 바라는 전부였다.
동대구역에 내리자 여기저기서 사투리가 들렸다. 은희의 말도 평소와 달라졌다.
“저어 건너가 버스 타믄 된다.”
“짐도 있는데 택시 타면 안 돼?”
“셋이이까 그기 낫나? 근데 택시 줄이 느무 기네.”
남편과 은희의 대화를 듣던 하린이 배시시 웃었다.
“엄만 평소엔 안 그러면서 여기만 오면 사투리 쓰더라. 자동이야. 그냥, 자동.”
“와? 엄마 사투리 싫나?”
“아니, 신기해서.”
아버지는 은희가 고등학생 때 돌아가셨다. 은희가 결혼한 뒤부터 엄마는 은희가 어려서부터 살던 집에서 혼자 지냈다. 아직 학교도 안 간 은희의 방을 만들겠다고 아버지가 마음먹고 지은 집이었다. 방 셋에 욕실 하나, 거실과 이어진 부엌과 다락방. 넓지 않은 대지에 방을 세 개나 빼느라 마당은 작았다. 차 하나 세울 여유는 있었지만 한 번도 마당으로 차를 들인 적은 없었다. 주위가 다 논밭이라 집 밖에도 공간은 많았다.
아침이면 얕은 담장을 따라 핀 나팔꽃과 채송화에 이슬이 반짝였다. 멀리 기찻길 둔덕이, 그 뒤로 중첩된 산들과 어우러져 보기 좋았었다. 도시가 커지면서 부도심쯤이 된 후로는 더 높은 건물이 둘러싸 조망은 사라지고 볕도 줄었다. 몇 해 전 재개발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는데 엄마 집은 골목 하나 차이로 그 안에 들지 못했다. 그랬으면 엄마는 진즉에 좀 더 편한 아파트로 들어갔고, 은희도 한시름 놓았을 것이다. 그 덕에 어린 시절 추억은 고스란히 남았지만, 아무래도 나이 든 여자 혼자는 낡은 주택이 불편할 터였다. 세월만큼 땅값은 올라서 집을 팔면 더 외곽의 작은 아파트 정도는 갈 수 있었다. 늦기 전에 관리 편한 아파트로 옮기자고, 은희는 여러 번 얘기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그래야겠지, 그게 좋겠지.’ 하고 말았다. 말뿐이지 정말 집을 떠날 마음은 없는 것 같았다.
은희는 혼자 있는 엄마가 늘 마음에 걸렸다. 멀리 있으니 더 그랬다. 그래도 엄마는 아직 운전도 했고, 교직에서 정년을 채워서 매달 연금이 나왔고, 은행이나 관공서 일도 문제없었다. 젊은 사람들만큼 능숙하진 않아도 인터넷 쇼핑도 할 수 있으니, 건강만 버텨준다면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은희는 혼자 위안했다.
살림살이만 보면 오히려 은희가 걱정이었다. 서울은 언감생심, 겨우 수도권의 작은 아파트에 들어간 게 십 년도 더 전이었다. 남편이 다니던 회사는 대기업은 아니었어도 건실했고 직원 대우도 좋았다. 은희가 어린이집에 나가서 버는 돈에 생활 규모를 맞추고, 남편 월급은 모두 적금을 넣었다. 그렇게 공들여 집을 샀을 때 금융위기가 닥쳤다. 모기지가 어쩌고, 월가의 도덕성이 어쩌고. 뉴스에 나오는 알아듣지도 못할 분석은 은희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어렵게 장만한 아파트값이 꼬꾸라져, 집값이 오르는 동안 돈을 더 모아 큰 평수로 가려던 꿈은 시작도 못 하고 사라졌다. 결정적으로, 승진도 하고 더 커질 줄 알았던 회사마저 무너졌다. 다 받지도 못한 퇴직금으로 차린 치킨집을 폐업하고 몇 년 방황하던 남편은 직업교육을 받고 어렵게 타일공이 되었다. 성실하고 기술이 좋아서 일은 끊이지 않았지만, 몸 쓰는 일이라 해가 갈수록 힘에 부쳤다. 은희도 도배 자격증이 있었다. 어린이집도 나이를 가렸고, 남편 현장에서 사람이 없다고 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공사판은 남녀 차별이 여전해서 한 사람 몫을 다 하는데도 기술자가 아닌 보조 대우가 전부였다.
그런 벌이로 그럭저럭 헤쳐왔다. 연례행사로 꽃구경, 해외여행 가고, 계절마다 맘에 드는 옷이나 신발을 사고, 무슨 날을 핑계로 거창한 외식을 할 순 없었다. 남들은 어디서 그런 여유가 생기는지 은희는 늘 궁금했다. TV를 봐도 그렇고 주위에도 많이들 그렇게 살고 있었으니까. 한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고는 못해도, 게으름 피지 않고 할 만큼 했는데도 그들처럼은 될 수 없었다. 졸업하고부터 용돈은 스스로 벌겠다고 하면서도 몇 년째 입퇴사를 반복하는 하린이에게도 아직 돈이 들어갔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보험금도 꼬박꼬박 넣어야 했다. 얼마간 모아 둔 돈은 하린이 결혼과 두 사람 노후 대비로는 어림도 없었다. 유일하고도 확실한 방안은 계속 몸으로 때우는 것인데, 갈수록 병원 출입은 늘고 실비보험은 올랐다.
친정에 들어서자 은희는 곧바로 창문을 열었다. 홀아비 집 같진 않아도 노인 특유의 냄새가 가득 붙어 있었다. 꼭꼭 닫아놓는 겨울이라 더 그랬다. 남편을 시켜 이불과 카펫도 털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는 온 집안을 진공청소기로 밀었다. 엄마는 괜한 호들갑이라고, 손녀, 사위 오는데 청소도 안 해 놨겠냐 했지만, 은희는 물걸레질까지 꼼꼼히 하고서야 안방에 펴 놓은 엄마의 요에 누워 뻗었다.
“그러게 와 호들갑을 떨어쌓노.”
엄마가 장롱에서 베개를 꺼내 머리에 괴어주었다.
“엄마, 나도 인제 늙는갑다. 이기 뭐라고, 디네.”
“먼 길 와가 쉬지도 않고 그캤는데, 당연하지. 니도 인제 쩍은 나이 아이다.”
“있다가 저녁은 나가가 묵자. 밥하기 싫다, 엄마.”
“그래, 그라자. 너어 아부지 차례 장은 봐놨는데, 그건 낼 물 끼고, 나가자. 나도 이제 다 귀찮다.”
섣달그믐에도 식당은 성업 중이었다. 대로 양쪽으로 몇 블록에 걸쳐 식당이 늘어선 먹자거리는 가족 단위 손님으로 북적였고 가게 밖까지 대기가 있는 곳도 많았다.
“다들 명절 쇠러 안 가나? 주인도 손님도. 뭔 사람이 이렇게 많아?”
“요즘 시골이 고향인 사람 몇이나 되겠노? 우리만 해도 그렇잖아. 다 도시에서 도시로 가는 기지. 오늘 같은 대목 장사 마다할 데가 있나.”
엄마는 해물칼국수 집에 차를 세웠다. 친구들 모임에서 와봤는데 괜찮았다고 했다. 마침 한 자리가 나서 앉았다.
“와, 여기는 아직도 저런 게 있네!”
구석에 불 꺼진 어린이 놀이방을 보고 남편은 멸종 희귀종을 발견한 듯 호들갑이었다. 하린이 어릴 땐 웬만한 식당마다 있던 시설이었다. 게임기 순서를 다툴 만큼 아이들이 많았지만, 언제부턴가 그런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식당 손님 중에도 중고생으로 보이는 형제를 빼고는 하린이가 제일 어렸다.
홀 직원은 셋인데, 두 명은 동남아 쪽이고 한 명은 조선족이었다. 아무래도 한국말이 능숙한 조선족 여자가 다른 두 사람을 지휘했다. 여기저기서 정신없이 쏟아지는 주문에도 오래 손을 맞춘 듯 일 처리가 안정적이었다. 물을 가져온 동남아 여자가 주문을 받았다. 주방으로 전달하는 카랑한 목소리와 손님을 대하는 재빠른 일솜씨가 억척스러운 한국 아줌마 매한가지였다.
남편과 하린이 등지고 앉은 대형 TV에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화면 아래쪽의 큰 자막 덕에 소리가 없어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하루 종일 그 채널만 트는지, 자세히 보면 자막 부분의 화면 색이 달랐다. 대통령 지지율, 방탄 국회,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패권 대결, 경제 부진. 희망적인 얘기가 없었다. 엄마가 뭐라고 입을 댈까 봐, 은희는 딱히 궁금하지도 않은 뉴스에 자꾸 눈이 갔다. 흘낏 눈치를 살피니, 정작 엄마는 뉴스는 뒷전이고 바삐 움직이는 식당 직원들을 보고 있었다.
“베트남이재? 외국 사람이 이래 많으이 한국 사람들 묵고 살긌나. 나무 나라 와가 애는 묵는다만, 한국에서 돈 벌어가 저거 나라 다 보낼 낀데.”
“어휴 엄마, 저 사람들도 우리 물건 쓰고 우리나라에 세금 내요. 벌써 귀화해가 한국인 됐을지도 모르,” “엄마, 들리겠어!”
하린이 은희의 말을 막았다. 어느새 카트를 밀고 온 동남아 여자가 방금 식사를 마친 옆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었다. 네 사람 모두 돌아가며 그쪽을 살폈으나, 여자는 아무렇지 않게 바삐 그릇을 모아 담더니 카트를 밀고 갔다.
“장모님, 요새는 저 사람들 없으면 일이 안 돼요. 저 사람들이 잘해서 쓰는 게 아니고요, 한국 사람들이 안 와서 그래요. 다들 대학 나와서 번듯한 정규직 가려고 하지, 힘든 일 안 해요. 저도 이러고는 있지만, 하린이가 그런 일 한다면 좋겠어요? 내 돈으로 계속 먹여 살리더라도 다른 번듯한 일 찾으라 하죠.”
남편은 ‘이러고는’ 할 때 일부러 씽긋 웃으며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은희는 일부러 그렇게 눙치는 남편이 고맙고 안쓰러웠다.
뉴스가 대통령의 실언 공방으로 넘어가자 더 지켜보지 못하고 은희가 리모컨을 찾아 채널을 바꿨다. 남편은 ‘굳이?’ 하는 표정으로 보고 말았지만, 하린이는 아까보다 더 콧잔등을 찡그리며 한마디 했다.
“엄마! 왜 그래? 그냥 좀 놔둬.”
하린은 다른 사람들 이목을 끄는 걸 못 견뎌 했다. 특히 남에게 영향을 주거나 조금이라도 피해가 갈 것 같으면 더더욱. 은희가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닌데도, 하린은 그랬다. 하린이만 특별히 숫기가 없어서 그러나 했는데, 친구들도 다 그렇다고 했다. 사람 많은 데서 이름이라도 불리면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한 게 부끄럽고, 일행이 조금이라도 튀게 행동하면 질서에 반하는 것 같아 남인 척한다고. 요즘 애들 특징인가보다 하면서도, 은희는 자기를 부끄러워하는 것 같아 내심 섭섭했다.
이제 텔레비전에는 화려한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연예인들이 나왔다.
“사람은 확실히 전보다 예쁜데, 요즘 노래는 머라카는지 알 수가 없어. 엄마는 저런 노래 가사 들려요?”
은희가 화제를 돌렸다.
“니가 정말로 나이가 들었는갑다. 나도, 니가 하린이만 할 때부터 가수들이 머라카는지 한 개도 모르겠디만. 니도 글나?”
“그래도 요즘은 연예인 아니라도 다들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는 것 같애. 우리 땐 저런 건 특출한 애들 장기였는데.”
하린이 제 아빠를 보고 웃으며 말을 보탰다.
“아빠가 정말 몸치인 거야. 너무 뻣뻣해. 스트레칭이라도 좀 해 봐, 아빠.”
“야! 나도 잘 추는 춤 있어! 전 국민이 다 아는 춤! 어릴 때 잘한다고 칭찬도 얼마나 받았는데.”
“당신이 춤은 뭔 춤?”
“국민 체조 몰라? 나 그거 엄청 잘했어. 박자 맞춰 몸 움직이기는 똑같은데, 그것도 뭐, 춤이지.”
제 아빠의 장난스러운 대답에 하린이 발끈했다.
“뭐래? 아빠! 체조는 운동이지. 예술성이나 감정 표현이 있어야 춤이지. 몸동작이라고 다 춤이야?”
“그때 국민체조 못 했던 아아들이 어딨노? 슨새임이 다 시킸는데. 그거뿌이가? 하라는 거, 에우라는 거 쌨었는데. 지금은 하지도 않는 거를,”
은희가 말을 하다 말고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더니 국민교육헌장을 읊기 시작했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안으로 어쩌고, 밖으로 뭐를 확립하고 어쩌고. 야 이것도 다 까뭈네. 못 에우면 벌도 서고 캤는데.”
구구단처럼 달달 외웠었는데도 머릿속에서만 맴돌 뿐, 은희의 입으로 나와지지 않았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엄마가 사뭇 진지하게, 은희가 잊은 부분을 암송했다.
“와! 장모님, 대단하세요! 그걸 아직!” “할머니, 짱! 역시, 선생님!”
“맞네. 인제 기억나네. 애국가는 4절까지 다 에워지나 몰라. 당신 국기에 대한 맹세는 아나?”
“그럼!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 “아니야 아빠. 이제 그거 아니고, 바뀌었어!”
“국기에 대한 맹세가 어떻게 바뀌냐? 국기가 그대론데!”
“우리는 ‘조국과 민족’ 말고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서’라고 했어.”
그때, 엄마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글타카대. 누가 바깠는지 몰라도 그래가 되긌나? 조국과 민족이 없는데 우에 나라가 있겠노! 쯧쯧.”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할머니, 그래도 이제는 국제결혼도 많고, 우리도 단일민족 아니에요. 민족이 달라도 하나로 뭉쳐서 더 좋은 나라 만들자는 거죠, 뭐.”
“말이사 좋지. 근데, 잘살고 좋은 사람들이 와야지. 못사는 범죄자만 자꾸 들어오믄 우야노? 중국서는 코로나 들어오고, 난민이라 쏙이고 테러 분자 들와뿌고. 다문화 다문화 카믄서 민족 없앨라카이 문제 아이가? 저기 저, 경대 옆에 회교 사원 짓는 것도. 공부하러 와놓고 공부만 하믄 되지. 누가 기도를 하지 마라캤나? 사원 읎다고 기도 모 하는 것도 아이고, 주민들이 싫다카는데 와 저래 모이가 할라카꼬?”
뭐라고 해야 하나 싶었는데 때마침 나온 음식이 대화를 끊었다.
세숫대야만큼 큰 그릇에 가득 담긴 해물 칼국수. 하린이 수저를 꺼냈고, 남편은 마침 자기 앞에 놓인 국자와 앞접시를 들었다. 한 국자 크게 뜨는데, 국수 가닥이 미끄러져 국물이 튀었다. 은희가 얼른 국자를 건네받아 나머지 접시에 익숙하게 칼국수를 덜어 건넸고 엄마는 지저분해진 테이블을 훔쳤다.
“강 서방은 집에서 이런 거 안 하나? 국수 뜨는 거 보이 영 어설프네? 요새는 다들 노나서들 하드만.”
“에이 이 사람도 시키믄 잘해, 엄마. 내가 안 시키가 글치.”
“와 안 시키노? 요새 이런 일에 남자 여자가 어딨다고.”
“엄마는, 남자 그기 뭐 유세라고 남자 할 일, 여자 할 일 따로 가르노? 쪼매라도 더 잘하는 사람이 하는 기 낫지. 내 한 번 했으이 니도 한 번 해라. 그기 공평한 게 아이라카이. 해야 되는데도 안 하이 문제지, 더 잘하는 사람이 하믄 되는데 굳이 못 하는 사람 시킬 필요가 있나?”
“그래도, 하린이는 집안일도 잘하는 사람한테 시집가야 될 낀데.”
“에고, 엄마. 쟈가 결혼은 무슨 결혼! 아직 지 앞가림도 바쁘구만.”
은희는 마지막으로 자기 국수를 뜨며 남편 표정을 살폈다. 안경에 묻은 티끌 하나도 못 참는 사람이 뿌옇게 김이 서린 안경 그대로 접시에 코를 박고 후룩후룩 국수를 삼키고 있었다. 기차에서 때운 늦은 점심을 생각하면 배고플 시간이 아니었지만, 남편은 오래 굶은 사람처럼 젓가락질이 바빴다. 은희는 생각했다. 저걸로 허기가 채워질까. 엄마도 더는 뭐라지 않고 젓가락을 들었다. 하린이는 먼저 국물을 한술 떠서 호호 불더니 맛을 봤다.
“오, 맛있다! 역시 할머니 선택이 좋으셔!”
고맙다. 네가 애쓰는구나, 하린아. 불편해서 너도 그거 소화나 되겠니? 가족들 모여 먹는 밥도 이런데, 밖에 나가서는 오죽할까 싶었다. 애쓴다고 힘들겠다고 따순 밥 한 공기 퍼주는 사람, 가족 말고 있을까. 은희는 엄마도 맘에 걸렸다. 저러고 나면 어색할 거 알면서도 가둬둘 수 없어서 했을 말인데. 그래 놓고 당신은 또 속으로 자식, 손주 눈치를 볼 텐데. 내색은 못 했지만 엄마도 짠했다.
“당신, 안 먹고 뭐 해? 국수 다 불겠다.”
은희는 남편을 돌아봤다. 남편의 콧잔등에는 어느새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먹을만해?” “응, 맛있네!”
그제야 은희도 한 젓가락 입에 넣었다. 파는 음식 특유의 짭짤함에 조미료 맛이 강했다. 물을 조금 탔더니 자극은 줄었는데, 닝닝하니 맛도 없어졌다. 남편이 은희의 마음을 안다는 듯 얘기했다.
“몸에 좋으니 나쁘니 해도, 안 짜고 안 매우면 맛이 없어요. 이런 거 저런 거 다 먹으면서 살 수밖에. 어째? 입에 맞는 것만 먹을 수 있나?”
“갑자기 실없기는.”
“여사님, 그러니 팍팍 드시라고요. 아, 어서 먹고 집에 가자. 가서 윷놀이를 하든, 고스톱을 치든, 오랜만에 장모님 돈 좀 따가야겠다.”
사위의 농담에 엄마가 어이없는 미소를 지었다.
“당신 나중에 딴소리나 마. 엄마가 그거 둘 다 선순 거 몰라?”
거실에서 갸릉갸릉 하는 소리가 넘어와 TV 뉴스 사이사이 섞였다. 먼 길은 왔어도 일한 날과는 달라서, 남편의 코골이는 여느 날보다 차분했다.
아무래도 외풍이 염려되어 은희방에서 하린이와 같이 자라고 했는데도, 남편은 거실 소파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신나게 떠들며 윷을 논 열기가 아직 남아 있긴 했다. 부부와 조손으로 편을 나눠 삼판양승으로 시작한 첫 승부가 싱겁게 끝나자 똑같이 두 번을 더 놀고서야 끝이 났다. 마지막 판, 개만 쳐도 승부를 끝낼 수 있는 은희 부부의 석 동을 엄마가 모를 세 개나 쳐서 잡고 역전했을 때는 네 사람 다 자리를 박찼고 탄식과 함성이 교차했다. 하린이는 할머니 손을 잡고 빙글빙글 춤까지 췄다. 아파트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아무리 명절이라도 그 정도면 항의가 있었을 것이다.
은희는 안방, 엄마 옆에 요를 폈다.
은희가 가족들 이부자리를 다 챙겼는데도 엄마는 굳이 농 아래에서 두꺼운 이불을 하나 더 꺼냈다.
“강서방 덮어 줘라. 마루는 선듯할 끼다.”
에구구. 그래봐야 이불 한 채인데, 안고 일어나며 엄마는 신음을 뱉었다.
불을 끄고 누워서도 은희는 그 소리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올라가기 전에 침대를 넣어드려야 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무릎에는 좌식보다는 입식이 나았다. 문을 연 가구점이 있으려나?
은희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잠자리가 바뀐 탓도 있지만, 소리를 줄였어도 뉴스 소리가 계속 거슬렸다.
“엄마, 안 주무셔?”
“자야지.”
“저건 안 끄고 자?”
“나는 보통 그냥 키고 자. 그기 잠이 잘 와가.”
“타이머 해놓고?” “타이머?”
“시간 맞추믄 지절로 꺼지는데. 엄마, 모르나?”
“그런 기 있으믄 진작 갈키 주지. 쟈도 인제 잠 좀 자긌네.”
“그럼 지금까지 쟈 혼자 애국가 끝나고도 삐이, 하고 있었나? 아침까지?”
“야아가 은제 적 얘기를 하고 있노? 요즘 테레비는 밤새 하그든. 애국가 안 나온다.”
정말? 은희는 엄마를 돌아봤다.
“막 웃는 아아들 뛰오고, 고로에 쇳물 흐르고, 조선손지 정유공장인지에 알록달록 풍선 하늘로 막 날라가는, 애국가가 없어졌다고? 기일이이 보전하아세에, 할 때 붉은악마 위로 크다란 태극기 쫘악 올라가고, 거어다 대고 사람들이 벅차서 가슴에 손 올리는, 그른 거 없다고?”
“글게 말이라. 나라가 자꾸 변해.”
은희는 엄마가 하지도 않은 ‘안 좋게’라는 말을 들은 것 같았다. 코끝이 시려 이불을 당겨 덮었다가 이내 답답해져 내렸다.
“우풍이 씨네.”
“옛날 집인데 우야겠노.”
“내 어릴 때도 이랬나? 그런 기억은 별로 없는데. 그때는 우리 집이 동네서 좋은 집이었는데.”
“너그 아빠가 이 집 짓고 얼마나 좋아했노? 허투루 지었으까. 뭐, 영영 창고로만 쓴다만, 아직 나지도 않은 니 동생 방까지 만든 거 봐라. 그때만 해도 아빠는 꿈이 컸을끼라.”
“그래도 인제 이 집 고마 정리하고 적당한 아파트 드가요. 삐까번쩍한 실버타운 같은 데 가믄 좋겠지만, 딸이 못나가 그랄 능력은 안 되고, 집 팔믄 작은 평수 아파트값은 되니까, 그런 데 찾아보자, 엄마. 주택은 관리도 글코, 더구나 이래 오래돼가꼬는. 연탄 때던 거 기름으로 바꾸고는 손 한 번도 안 봤재?”
“와, 옥상에 방수 도장도 몇 해 걸러 한 번씩 한다.”
“그라믄 뭐 하노? 비도 새고, 담벼락도 금이 쭈욱 갔드만. 이거 누가 사도 이 집 그대로는 안 쓸끼라. 다 뿌사가 새로 지으믄 몰라도. 모르지, 건평 이득 볼라고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 할라칼지. 그래도 거의 다 뿌사가 새로 지아야지, 마루, 천장 같은 것만 고치고 새 싱크대 넣고 도배만 해가꼬는 안 될 거를?”
“그래, 정말 이번에는 함 알아봐야긌다. 마당에 저것들 을마나 된다고, 인자 여름에 물주고, 가을에 낙엽 쓰는 것도 디다.”
은희는 그런데도 광화문은 그렇게 열심히 오갔냐 하려다 말았다.
“실버타운이고 요양원이고, 당장은 엄마가 다 알아서 할 수 있으이까 개안치만, 조금이라도 불편하믄 우리 집에 와요. 하린이도 곧 독립해가 나갈 끼고, 엄마가 그 방 쓰믄 되지 뭐.”
“아서라. 사돈도 있는데 내가 우예 그 집에 가노?”
“엄마, 그 집이 뭐고? 자식 집인데. 아, 어머님이야 아주버님이 모시믄 되고, 요즘 시대에 아들, 딸이 어딨노? 상황 봐가미, 형편에 맞추는 기지. 엄마는 딸 하나밖에 없으이까 딸한테 오는 기 당연하지. 안 그라믄 나나 강서방은 우야라고? 우리도 하린이 하나뿌이구만.”
말하고 보니 마음과 다르게 화를 낸 것 같아 멋쩍어졌다.
“아까 역에 내리가 택시 잡는데, 하린이가 내 보고 웃드라, 엄마.”
“와?”
“여어만 오믄 사투리 쓴다고. 평소에는 나 서울말 완벽하거든.”
“그래, 니 서울 사람 다 됐뿠다.”
아쉬움이 담긴 목소리였다.
“와? 내 서울 사람 되는 거 싫나? 여어 떠난 지 30녀이 다 되는데, 서울 사람 안 될 재주가 있나. 아이네, 아직 서울 사람은 아이구나. 그냥 수도꿔이지, 서울 변두리도 못 드간 수도권.”
“그래도 나는 니가 너무 서울말 쓰는 거 싫다. 서울 가가 살아도 어려서부터 쓰던 말 쓰는 기지. 뭘 서울 깍쟁이들하고 똑같은 말 쓰노?”
“그래도 거어서 살믄서 보믄, 경상도 사람들 말이 제일 안 바끼데. 다른 데서 온 사람들은 말만 들어가꼬는 고향 몰라. 그냥 원래 거어서 태어난 사람이라카이. 근데 경상도 사람들은 뭐가 달라도 달라. 티 안 낼라고 암만 애를 써도 딱 보이. 나는 뭐 반갑고 좋은데, 어쨌든 거어 사람들하고 비슷한 말 쓰게 되는 거야 어쩔 수 없지 않나?”
“그래, 그럼 거어서는 거어 사람들이랑 거어 말 쓰고, 여어 오면 여 말 쓰고 그래라.”
뉴스와 뉴스 사이에 광고가 길게 이어지는데, 엄마가 리모컨을 찾더니 텔레비전을 껐다.
“오늘 밤은 니 있으이 꺼도 되겠다.”
은희와 엄마가 누운 방은 소리도 빛도 없이 고요해졌다.
뉴스가 마지막으로 전한 소식은 설 연휴 끝나면 다시 북극 한파가 내려오니 추위에 대비하라는 예보였다. 그래도 곧, 조금 지나면 날이 눅고 꽃이 필 것이었다. 그때는 뉴스에도 꽃소식이 나오겠지.
은희는 반쯤 잠에 취해 생각했다.
또 봄이 올 거야, 기다리지 않아도.
(2024 『약사문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