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1 창, 밖에서 눈을 뜰 수가 없다. 아마도 멀지 않은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일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그 거리를 짐작할 수가 없다. 바이올린이 분명하다. 그리 격정적이지 않으면서도 열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바이올린 선율이 팔분음표와 십육분음표를 넘나들며 들려오고 있다. 아니, 들려온다, 는 것보다는 마치 선율이 내 정신을 표적으로 하여 어느 곳으로부터 발사되어 날아오는 것 같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내가 숨어 있던 지하실의 문을 술래가 갑자기 열어젖혀졌을 때, 비밀의 어둠을 일거에 날리며 지하실의 모든 구석구석을 꼼꼼히 더듬던 숨바꼭질 시절의 그 선명한 빛처럼, 그것이 바이올린이라는 것을 감지함과 동시에, 내 온 정신으로 번져 빠르기도 짐작할 수 없는 속도로, 선율은 내 미망(迷妄)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한 방울 떨.. 2023. 7. 9.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