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2 벤지 죽기 전에는 개를 키울 수 없을 줄 알았다. 생각이 많았기 때문이다. 마음 기댈 놈 하나 곁에 두기를 항상 바랐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유도 늘 있었다. 아파트에 살았고, 개를 돌보는 데 필요한 하루 몇 시간도 빼기 힘들었고, 결정적으로 아내가 개를 무서워했다. 은퇴 후 시골에 내려오고 나서는 건강과 나이가 걸렸다. 입양할 강아지보다 내가 더 오래 산다는 보장이 없었다. 건강수명을 따지면 더 그랬다. 통원으로 시작하겠지만 결국 집보다 병원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질 때쯤에는 제대로 돌보지 못할 테니까. 나는 이미 30년 넘게 혈압약을 먹어왔고, 콜레스테롤과 당뇨 수치도 경계에서 간당간당했다. 노안이 심했고 해마다 떨어지는 체력을 익히 알고 있었다. 내 개의 마지막을 책임질 자신이 없었다. 서준이 강아지를.. 2024. 8. 7. 안개 아무래도 비가 올 것 같았다. 역 광장에 뜬 그믐달 위로 지나는 구름 빛이 짙었다. 마지막 승객이 빠져나가자 역무원은 서둘러 쇠문을 닫아걸었다. 사람들은 채 깨지 못한 밤 기차의 피곤을 안고 각자의 걸음을 서둘렀다. 신평(新平)에 서는 그날의 막차였다. 고향 이름을 내건 식당들도 하나둘씩 불을 끄고 하루를 마감하고 있었다. 인근 도시 아침 장으로 시골 아낙들을 실어 갈 첫 전철이 새벽을 깨울 때까지 역은 잠들 것이다. 굼뜬 장꾼만 남은 파장 무렵처럼 쓸쓸한, 자정 가까운 시골 역. 처음은 아니지만 초행 보다 낯선 곳. 어중간한 술기운 때문인가? 분명 그 속인데도 녹화된 화면이나 사진을 보는 것처럼, 선우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손을 뻗어 만지려 하면 눈앞의 모든 게 스르르 흩어져버릴 것 같은, 신기루.. 2023. 7. 24. 이전 1 다음